2024-03-29 20:25 (금)
[김성희의 역사갈피]튀김과 덴뿌라
[김성희의 역사갈피]튀김과 덴뿌라
  • 이코노텔링 김성희 객원 편집위원
  • jaejae99@hanmail.net
  • 승인 2022.02.07 09: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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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43년 명나라로 향하던 포르투갈 선박, 일본으로 표류
일본은 자국민 출입 막는 인공섬 만들어 서양 문명 도입
그때 선교사들이 육식절제하는 '쿼터 템포라' 전통 목격
일본인들은 생선은 물론 야채, 조개에 튀김옷 입혀 즐겨
일본의 덴뿌라의 역사는 '페이시뉴 다 오르타'라는 포르투갈 음식에서부터 시작되었다/이코노텔링그래픽팀.
일본의 덴뿌라의 역사는 '페이시뉴 다 오르타'라는 포르투갈 요리에서부터 시작되었다/이코노텔링그래픽팀.

일부 지방에는 있긴 하지만 설 차례상에 튀김이 없다는 데 생각이 미쳤다. 튀김용 기름이 마땅찮았을 것, 기름을 적정 온도로 가열할 화력을 마련할 길이 없었을 것 등 혼자 이런저런 추측을 해봤지만 튀김이 우리 전래 음식이 아니기에 '전통'에 오를 길이 없었으리란 것이 정답일 것이다. 아마.

어릴 적엔 그 튀김을 '덴뿌라'라 했다. 어린 마음에도 일본말에서 온 것이려니 짐작했다. 맞다, 바삭하고 고소한 튀김은 일본에서 건너온 먹거리다. 한데 일본의 덴뿌라 역시 서양 음식에서 비롯됐다.

1543년 명나라로 가던 포르투갈 무역선 한 척이 일본 규슈 지방의 다네가시마로 표류해 들어왔다. 일본이 서양 문명과 처음 접한 사건이었다. 이를 계기로 에도 막부는 일반 일본인의 출입을 금한 데지마라는 인공섬을 조성해 이를 창구로 서양 문명 도입에 적극 나섰다. 여기엔 가톨릭국가인 포르투갈의 선교사들이 들어와 포교 활동을 펼쳤다.

그 포르투갈에 매 계절이 시작되는 사흘간 육식을 절제하고 신에게 기도를 올리는 전통이 있었으니 이를 쿼터 템포라(Quatuor Tempora·사계재일)이라 불렀다. 여기서 '쿼터'는 4분의 1, '템포라'는 잠시 또는 임시라는 뜻이다. 아무튼 당시 특권계급으로 평소 육식을 즐겼던 성직자들로선 비록 사흘간이지만 고기를 멀리하는 것이 상당히 부담이 되었던 모양이다.

그래서 육식을 대용할 요리를 개발하기에 이르렀으니 이것이 야채에 튀김옷을 입혀 기름에 튀겨내는 '페이시뉴 다 오르타'이다. 페이시뉴는 작은 물고기들, 오르타는 야채를 키우는 정원을 뜻하는데 이는 야채튀김 모양이 작은 물고기와 비슷하다 해서 붙은 이름이다.

16세기 나가사키에서 활동하던 포르투갈 성직자들 역시 사계재일이면 본국에서와 마찬가지로 야채 튀김을 만들어 먹었는데 일본인들의 눈에는 이 요리가 상당히 신기했던 모양이다. 머지 않아 생선, 조개, 야채에 밀가루, 달걀, 설탕 등으로 만든 튀김옷을 입혀 튀겨 먹기 시작했으니 이것이 '덴뿌라'의 시초라고 한다.

한데 튀김이 덴뿌라가 된 데에는 믿기 힘든 이야기가 있다. 사계재일을 맞아 '페이시뉴 다 오르타'를 먹고 있는 포르투갈 성직자에게 한 일본인이 "지금 먹고 있는 것이 무엇입니까"라고 물었단다. 그런데 문제의 그 성직자는 일본어에 익숙지 않아 "왜 그런 요리를 먹는 겁니까"라고 이해했다나. 그래서 "쿼터 템포라"라 답하면서 그 유래를 설명해주었지만 이번엔 그 일본인이 포르투갈어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해 템포라를 요리 이름으로 오해하는 바람에 튀김이 덴뿌라로 불리게 되었다는 이야기다.

이는 이색 과학교양서 『튀김의 발견』(임두원 지음, 부키)에 실린 내용이다. 서울대학교에서 고분자공학 박사학위를 받은 지은이가 쓴 아주 색다르고 흥미로운 책이어서 일독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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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코노텔링 김성희 객원 편집위원 커리커처.
이코노텔링 김성희 객원 편집위원 커리커처.

고려대학교에서 행정학을 전공하고 한국일보에서 기자생활을 시작했다. 2010년 중앙일보 문화부 기자로 정년퇴직한 후 북 칼럼니스트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2008년엔 고려대학교 언론학부 초빙교수로 강단에 선 이후 2014년까지 7년 간 숙명여자대학교 미디어학부 겸임교수로 미디어 글쓰기를 강의했다. 네이버, 프레시안, 국민은행 인문학사이트, 아시아경제신문, 중앙일보 온라인판 등에 서평, 칼럼을 연재했다. '맛있는 책 읽기' '취재수첩보다 생생한 신문기사 쓰기' '1면으로 보는 근현대사:1884~1945' 등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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