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ㆍ변호사 등 숨지자 거부들의 유언장도 남길 수 없어
살아남은 자들이 유산 독자치 … 부유해진 소시민 등장해
생활여유 생겨 후원 자처 … 예술과 학문의 르네상스 열어
코로나 19가 말 그대로 지구촌을 휩쓸고 있다. 우리나라만 해도 일일 추가 확진자가 1만 명을 훌쩍 넘더니 '10만 명이 마지노선'이라는 둥 온갖 위협적인 이야기가 쏟아진다.
세계사를 보면 이 같은 팬데믹은 여러 차례 인류 문명을 강타했다. 그중 가장 대표적인 것이 14세기 유럽을 강타했던 페스트. 수백만 명의 목숨을 앗아간 것은 물론 정치, 경제, 사회 등 전 분야에 걸쳐 역사를 바꾼 재앙이었다. 재앙에는 혼돈이 따르기 마련이다.
이제는 실크로드를 따라 아시아에서 유럽으로 페스트균이 퍼졌다는 것이 거의 정설이지만 당대에는 원인도 알 수 없고 적절한 치료책도 없는 페스트를 '신의 징벌'로 간주했다. 그랬기에 이 질병을 페스틸렌시아('건강에 좋지 못한 날씨나 대기'란 뜻의 라틴어)라 불렀다. 인력으로 어쩔 수 없다는 뜻이 담긴 이름이었다.
프랑스에서는 필립 6세의 주문으로 파리 대학 의학부 학자들이 조사한 결과 토성과 화성, 목성의 자리 이동이 원인이라고 결론지었다. 14세기 이탈리아에서 가장 명의라고 알려졌던 젠틸레 다 폴리뇨는 "낮에 습관적으로 레몬 씨를 씹어 먹으면 페스트에 효과가 있다"고 조언했다. 정작 폴리뇨 자신은 페루자에서 페스트에 걸려 죽었다. 이른바 전문가들의 행태였다.
페스트는 빈부귀천을 가리지 않고 습격했는데 능력 있는 이들은 기적의 치료제 테리아카를 복용했다. 테리아카는 로마제국의 네로 황제 시의(侍醫)였던 안드로마쿠스가 만들었다는 만병통치약이었다. 독사 고기와 아편 등 식물성 약제, 벌꿀을 넣어 만든 것이었으니 페스트 치료에 효과가 있을 리야!
사회는 격변기를 맞았다. 야비한 범죄가 일상화되었고 잿빛 미래를 앞둔 대학생들은 긍정적 미래상과 가치관이 없다는 평가를 들었다. 이와 함께 뜻밖에도 부유한 소시민 계층이 등장하는 결과를 낳기도 했다. 페스트로 의사들과 공증인, 변호사들도 대거 죽어나가자 거부들의 유언장이 작성될 일도, 또 개봉될 일도 급감한 만큼 운 좋게 살아남은 이들이 많은 사망자들이 남긴 유산을 독차지하는 '부의 쏠림'이 일어난 덕분이었다. 이들이 빠르게 축적된 자본으로 호사스런 생활을 하게 되면서, 즉 생활의 여유가 생기면서 조형 예술과 건축 분야에서 전례 없는 후원 활동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르네상스 시대의 학문과 예술의 부흥에는 페스트의 여파가 작용했다는 것이 역사의 아이러니다.
이런 내용은 『쿠오바디스, 역사는 어디로 가는가』(한스 크리스티안 후프 엮음, 푸른숲)에 실렸지만 실망할 것 없다. 비록 500여 년이 흐른 1894년에야 페스트균을 찾아냈지만 이제 우리는 페스트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한때 위세를 떨치던 천연두며 소아마비도 인류는 극복해냈다. 마찬가지로 코로나 19 또한 언젠가는 역사의 일부가 될 것이라 단언할 수 있다. 이 또한 지나가리란 이야기다. 단지 어떤 문명사적 변화를 가져올지 혼란스러울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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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대학교에서 행정학을 전공하고 한국일보에서 기자생활을 시작했다. 2010년 중앙일보 문화부 기자로 정년퇴직한 후 북 칼럼니스트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2008년엔 고려대학교 언론학부 초빙교수로 강단에 선 이후 2014년까지 7년 간 숙명여자대학교 미디어학부 겸임교수로 미디어 글쓰기를 강의했다. 네이버, 프레시안, 국민은행 인문학사이트, 아시아경제신문, 중앙일보 온라인판 등에 서평, 칼럼을 연재했다. '맛있는 책 읽기' '취재수첩보다 생생한 신문기사 쓰기' '1면으로 보는 근현대사:1884~1945' 등을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