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옷제작 외길 … '품질제일' 강조해 日상사 수입의사에 "이르다"며 거절
독자브랜드 고집해 한때 세계 78개국에 8000만달러 어치 메리야스 수출
평택서 장학사업도 병행…2018년 경영일선 후퇴 3년여만에 100세 영면
국내 내의산업의 증인이었던 내의전문업체 ㈜BYC의 창업주 한영대 전 회장이 16일 별세했다. 향년 100세.
1923년 전북 정읍에서 5남 1녀 중 셋째로 태어난 한영대 전 회장은 포목점 점원으로 일을 시작해 자전거포, 미싱조립 상점 등을 운영하며 일찍이 사업에 뛰어들었다. 광복 이듬해인 1946년 8월 15일 BYC의 전신인 '한흥메리야스'를 설립했다.
광복 직후 물자 부족으로 국내 내의 생산량은 국민 37.6명당 1장 꼴일 정도로 적었다. 한 전 회장은 양말 편직기의 몸통을 키우면 내의도 생산할 수 있겠다는 아이디어로 5개월의 제작 기간을 거쳐 '국산 1호 메리야스 편직기'를 탄생시켰다. 기계에 맞는 바늘이 없어 직접 숫돌에 양말기 바늘을 갈아 끼우는 등 어려움이 있었지만 내의 생산을 위한 의지와 집념, 노력으로 편직기 수를 늘리고 생산성을 높였다.
1950년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전주로 사업장을 옮겼고, 이후 국내 최초로 아염산소다를 활용한 표백 기술을 개발해 '백양'(白羊) 상표를 출시했다. 속옷 사이즈도 세분화해 나갔다. 이전에 대·중·소로만 구분하던 것을 한 전 회장이 4단계(85·90·95·100cm)로 나눠 표준화하는데 앞장섰다.
'속옷 외길' '품질제일주의'를 강조해온 한 전 회장은 과거 미쓰비시상사가 일본 수출을 제안했을 때 "아직 수출할 만큼 우수하지 못하다"며 거절하기도 했다. 1985년 해외에 진출할 때 당장 효과를 낼 수 있는 OEM(주문자 상표 부착) 방식 대신 독자 브랜드 개발을 통한 수출을 선택해 인지도를 높였다.
1996년 사명을 백양에서 BYC로 변경했다. 해외 사업이 한창 잘 될 때는 '세계인은 BYC를 입는다'는 슬로건으로 세계 78개국에 8000만달러 규모의 메리야스를 수출했다.
한 전 회장은 1985년 평택동중학교와 평택동고등학교의 학교법인을 한영학원으로 바꾸고 이사장에 취임해 장학금 7억원을 출연하는 등 장학사업에도 열정을 쏟았다. 한 전 회장은 국가산업 발전에 기여한 공로로 은탑산업훈장, 동탑산업훈장 등을 받았다.
한 전 회장은 2018년 경영 일선에서 물러났다. BYC는 올해부터 차남인 한석범 회장이 이끌고 있다. 손자인 한승우 상무가 경영 수업을 받고 있다.
빈소는 서울 여의도성모병원 장례식장 VIP 2호실이며, 발인은 19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