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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희의 역사갈피]청태조 누르하치 맏아들의 '조선망명'
[김성희의 역사갈피]청태조 누르하치 맏아들의 '조선망명'
  • 이코노텔링 김성희 객원 편집위원
  • jaejae99@hanmail.net
  • 승인 2022.01.17 09: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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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생 홍태시의 호방함을 두려워해 왕좌를 양보한 뒤 처자까지 데리고 조선으로 귀순
조선은 이 '귀영개'를 항복한 포로로 홀대…딸을 첩으로 주는 등 조선의 생활은 곤궁
병자호란이 닥치자 남양 부사 윤계를 죽이고 청나라에 귀복해 동생 홍태시 환대 받아
영정조 때 벼슬을 지낸 성대중의 글에는 조선 조정의 근시안적인 외교안목 쓰여 있어
청나라를 세운 태조 누르하치의 맏아들 귀영개(MBC 드라마 '조선왕조 500년 남한산성'속에서 귀영개役(오른쪽))는 조선으로 '귀순'했었다/이코노텔링그래픽팀.
청나라를 세운 태조 누르하치의 맏아들 귀영개(MBC 드라마 '조선왕조 500년 남한산성'에서 귀영개(왼쪽))는 조선으로 '귀순'했었다/이코노텔링그래픽팀.

영정조 때 벼슬을 지낸 성대중이란 선비가 있다. 서얼 출신이지만 순정한 문장으로 이름이 높았던 그의 문집이 『청성집』이다. 한데 그의 문집을 엮을 때 아들 성해응이 선친의 글 중에서 세속의 자잘한 이야기를 담은 '속된' 글을 빼버렸다.

선친의 문명에 누가 될까 걱정해서였다. 이때 빠진 글들을 모은 것이 『청성잡기』로 남았는데, 2006년 민족문화추진위원회에서 국역해 펴냈고 이 중 우리나라에 관한 내용을 주제별로 간추려 엮어 『궁궐 밖의 역사』(박소동 엮음, 열린터)란 책으로 나왔다.

여기 흥미로운 이야기가 많은데 그중 눈길을 끄는 것이 청나라를 세운 태조 누르하치의 맏아들이 조선으로 '귀순'했다는 이야기다.

성대중의 글에 따르면 누르하치의 맏아들 이름은 귀영개(貴永介)다. 호부 아래 견자가 없다고 귀영개 역시 만만한 인물은 아니었던 모양이다. 명나라 장수 유정을 이기고, 지원 갔던 조선의 장수 강홍립을 항복시켰다니 말이다. 그의 형제 역시 무재가 뛰어났으니 둘째 아들 퉁개불은 정묘호란 때 군을 이끌었고, 섭정왕으로 불린 아홉째 아들 다이곤은 병자호란 때 강화도를 함락시켰다.

누르하치가 죽은 후 귀영개가 뒤를 이어야 하나 여덟째 아들 홍태시의 호방함을 두려워해 왕좌를 양보했다.(그 홍태시가 청나라 2대 황제 숭덕제다.) 그러고는 우울해하다가 마침내 처자를 데리고 조선으로 '망명'했다. 조선은 이용가치가 높은 이 거물 인사를 항복한 포로로 대했으니 굶주리고 곤궁한 나머지 자식 혼사도 마음대로 하지 못할 지경에 이르렀다고 한다. 결국 딸을 무인 박륵에게 첩으로 주어 둘 사이에 아들 둘을 낳았다.

정작 병자호란이 닥치자 홀대를 받던 귀영개는 남양 부사 윤계를 죽이고 청나라에 귀복했으니 홍태시는 형 귀영개를 예전처럼 대우해주고 박륵의 두 아들까지 함께 심양으로 데려갔다.

이를 두고 성대중은 말한다. 조선이 귀영개 대하기를 귀히 하고 충심을 받아들였다면, 그리고 병자호란 초기 북쪽 지방 군사를 맡겨 청나라의 본거지인 만주로 쳐들어가게 했다면 조선에 들이닥쳤던 오랑캐들은 반드시 군대를 돌려 본거지를 구하려 했을 테니 병란의 참상을 피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이는 진기한 보배가 제 발로 왔는데도 쓸 줄을 모른 격으로 애석하다면서 말이다.

역사에 가정은 없지만, 그리고 『청성잡기』의 내용이 과연 정사(正史)에 부합하는지 달리 확인할 수는 없지만 조선 정부가 귀영개를 제대로 대접하고 활용했다면 최소한 '삼전도의 치욕'은 면하지 않았을까 상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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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코노텔링 김성희 객원 편집위원 커리커처.
이코노텔링 김성희 객원 편집위원 커리커처.

고려대학교에서 행정학을 전공하고 한국일보에서 기자생활을 시작했다. 2010년 중앙일보 문화부 기자로 정년퇴직한 후 북 칼럼니스트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2008년엔 고려대학교 언론학부 초빙교수로 강단에 선 이후 2014년까지 7년 간 숙명여자대학교 미디어학부 겸임교수로 미디어 글쓰기를 강의했다. 네이버, 프레시안, 국민은행 인문학사이트, 아시아경제신문, 중앙일보 온라인판 등에 서평, 칼럼을 연재했다. '맛있는 책 읽기' '취재수첩보다 생생한 신문기사 쓰기' '1면으로 보는 근현대사:1884~1945' 등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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