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공의 총애를 받았으나 정작 환공이 죽자 시신 방치한채 권력 싸움 골몰
총애하는 신하보다 '총명한 신하'가 국익에 도움…'윤핵관'논란에 시사점
다소 낯선 '핵관'이 정치판의 중심으로 떠올랐다. '핵심 관계자'의 준말인 '핵관'이 제1 야당에서 벌어지고 있는 내홍의 불씨가 된 탓이다. 대선 후보의 측근이 언론 플레이를 통해 당 대표를 저격하고, 이에 당 대표가 치기 어린 반응을 보이면서 여당에게는 즐거운 모양새가 벌어졌다.
자세한 속사정이야 알 수 없지만 역시 문제는 '핵관'이다. 한데 역사를 뒤져보면 이에 해당할 만한 용어로는 총신(寵臣)이라 하겠는데 이게 간신과 한 끗 차이다.
중국 한나라 때 사마천이 쓴 역사서 『사기』의 백미는 흔히 온갖 다양한 인물을 다룬 열전(列傳)(을유문화사)이 꼽히는데 여기에 간신들을 다룬 영행(佞倖)열전 편이 있다. 영행열전은 이렇게 시작한다. "속담에 이르기를 농사일을 힘쓰는 것이 절로 풍년을 만나는 것만 같지 못하며, 섬기기를 잘하는 것이 임금과 신하가 서로 뜻이 맞는 것과 같지 못하다." 뭐니 뭐니 해도 권력자의 비위를 잘 맞추는 것이 출세의 으뜸이란 이야기다.
중국사가 몇 천 년에 이르는 만큼 숱한 간신이 명멸했는데 가장 엽기적인 인물은 춘추전국시대 제 환공의 요리사였던 역아(易牙)를 꼽을 수 있다. 환공은 관포지교로도 유명한 관중 등 명신을 중용해 춘추시대의 패권을 잡은 명군으로, 오패(五霸) 중 한 사람이다. 이 환공이 하루는 농담처럼 궁중 요리사인 역아에게 말했다.
"세상 모든 음식을 다 먹어보았는데 사람 고기는 먹어보지 못했다. 그 맛이 어떨까?"
이에 역아가 다음날 별난 음식을 바쳤는데 물으니 사람 고기라 했다. 그것도 세 살짜리 자기 아들을 죽여서 만들었다. '나를 위해 자식을 죽일 정도로 충성심이 높은 사람'이라 안일하게 여겨 그를 총애한 것이 환공 사후 비극을 낳았다.
앞서 세상을 떠난 관중은 마지막에 제 환공에게 역아 등 간신 4명을 물리쳐야 한다고 당부했다.
"부모자식 간의 정을 매몰차게 던져버리고 자식을 죽여 폐하에게 음식을 바친다는 것은 인간이 할 짓이 아닙니다. 어떤 순간이 오면 자기 이익을 위해 누구든 이용할 수 있는 인물"이란 것이 그 이유였다.
아니나 다를까, 기원전 643년 환공이 병에 들고 세상을 떠나자 역아와 역시 희대의 간신인 수조, 개방은 환공의 시신을 방치한 채 왕위 다툼을 벌였다. 역아와 수조는 민 공자 무휴가 대권을 잡은 후 67일 만에야 제 환공의 장례를 치렀는데 구더기가 우글거릴 정도였다.
총신(寵臣)의 사전적 의미는 '임금의 총애를 받는 신하'란 뜻이다. 21세기 대통령선거를 위해선 총애를 받는 신하가 아니라 총명한 신하 '총신(聰臣)'이 필요하지 않을까. 후보 개인보다 국가를 위하는 인물이면 더욱 좋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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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대학교에서 행정학을 전공하고 한국일보에서 기자생활을 시작했다. 2010년 중앙일보 문화부 기자로 정년퇴직한 후 북 칼럼니스트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2008년엔 고려대학교 언론학부 초빙교수로 강단에 선 이후 2014년까지 7년 간 숙명여자대학교 미디어학부 겸임교수로 미디어 글쓰기를 강의했다. 네이버, 프레시안, 국민은행 인문학사이트, 아시아경제신문, 중앙일보 온라인판 등에 서평, 칼럼을 연재했다. '맛있는 책 읽기' '취재수첩보다 생생한 신문기사 쓰기' '1면으로 보는 근현대사:1884~1945' 등을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