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7-04 21:52 (월)
[김성희의 역사갈피]공인중개사의 역사
[김성희의 역사갈피]공인중개사의 역사
  • 이코노텔링 김성희 객원 편집위원
  • jaejae99@hanmail.net
  • 승인 2021.12.20 1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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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마다 노인들이 용돈벌이로 집 구경시켜주는 '복덕방' 없어져
수수료 수입 '쏠쏠'해지자 중개사 자격시험에 고학력자들도 몰려
조선 영조의 사위까지 했던 '집주름'은 일제 강점기 초기까지 활동
조선 시대에서 일제강점기인 1920년대까지 집을 사고팔려는 이들 사이에서 매물을 수배하고, 가격을 조정하는 등 주택 거래 관련 각종 일을 하던 사람들을 '집주름'이라 불렀다/이코노텔링그래픽팀.
조선 시대에서 일제강점기인 1920년대까지 집을 사고팔려는 이들 사이에서 매물을 수배하고, 가격을 조정하는 등 주택 거래 관련 각종 일을 하던 사람들을 '집주름'이라 불렀다/이코노텔링그래픽팀.

집값이 너무 뛴다 해서 아우성이지만, 아니 그 탓인지 부동산중개사 인기가 하늘을 찌른다. 중개수수료 수입이 쏠쏠하다는 소문이 돌며 자격증시험 경쟁률도 높아지고, 서울대 출신 아무개도 떨어졌다는 둥 이런저런 이야기가 무성하다.

한데 '복덕방'이란 말은 들어봤는지? 동네 하릴없는 노인 두엇이 용돈 벌이나 하려 차려놓고는 장기나 두다가 손님이 찾아오면 뒷짐 지고 집구경을 시켜주러 나서던 그 한가한 주택알선업체 말이다. 경로당 구실도 겸해 1970년대만 해도 동네마다 한두 곳씩은 눈에 띄었다.

그 복덕방만 해도 이제 떠올리는 이가 많지 않을 터인데 복덕방 이전에 '집주름'이란 직업은 더욱 생소할 터다. 그러니까 조선 시대에서 일제강점기인 1920년대까지 집을 사고팔려는 이들 사이에서 매물을 수배하고, 가격을 조정하는 등 주택 거래 관련 각종 일을 하던 이들을 '집주름'이라 불렀다 한다.

이건 다양한 사료를 뒤져 조선 시대 각종 직업의 세계를 소개한 『조선잡사』(강문종 외, 민음사)에 나오는 이야기다. 책에 따르면 가쾌(家儈) 또는 사쾌(舍儈)라고도 불린 집주름이 직업으로 등장하는 것은 18세기 중반이며 18세기 후반 들어 번성했다.

'영조실록'에 1753년 왕의 사위인 부마도위 윤성동이 집주름으로 전락했다는 기록이 보이는데 그를 무뢰배라 표현한 것을 보면 집주름에 대한 인식이 그리 좋지는 않았던 모양이다. 하기는 눈에 보이지 않는 '서비스'로 돈을 버니 옛사람들의 눈에 그리 탐탁지 않았을 것이긴 하다.

1792년 지어진 신택권의 「성시전도시」에는 이런 구절이 나온다.

"특별히 집주름이 나타나 생업을 꾸리니/ 큰 집인지 게딱지인지를 속으로 따진다/ 천 냥을 매매하고 백 냥을 값으로 받으니/ 동쪽 집 사람에게 서쪽 집을 가리킨다"

집주름이 큰 집, 작은 집 할 것 없이 거래를 성사시키고, 중개수수료가 거래가의 10%란 이야기가 담겼다. 수수료율이 지금보다 훨씬 높아 보이지만, 지은이는 정보 독점이 가능한 시대였고 당시 고리대금 이자가 보통 연 30%를 넘었던 만큼 그렇게 높은 것만은 아니었다고 풀이한다.

수수료율 이야기는 1922년 동아일보 기사에 등장하는데 이때는 가옥중개인조합이란 게 있어, 집주름은 거래가의 0.8%를 조합에 내야 했다. 당시 서울에서 600여 명의 집주름이 영업했는데 이들의 대표인 총대 강성구 등 123명이 조합의 활동에 반대하는 청원서를 냈다는 기사였다.

이 책에는 '집주름'이란 명칭의 유래에 대한 설명은 보이지 않는데, 묘하게 '주름'이란 말에 시선이 간다. 거래를 쥐락펴락 했다는 뜻인가 싶으면서도 집 때문에 이마에 주름이 가시지 않는 21세기 서민들의 형편을 미리 반영했던 게 아닐까 하는 실없는 생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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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코노텔링 김성희 객원 편집위원 커리커처.
이코노텔링 김성희 객원 편집위원 커리커처.

고려대학교에서 행정학을 전공하고 한국일보에서 기자생활을 시작했다. 2010년 중앙일보 문화부 기자로 정년퇴직한 후 북 칼럼니스트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2008년엔 고려대학교 언론학부 초빙교수로 강단에 선 이후 2014년까지 7년 간 숙명여자대학교 미디어학부 겸임교수로 미디어 글쓰기를 강의했다. 네이버, 프레시안, 국민은행 인문학사이트, 아시아경제신문, 중앙일보 온라인판 등에 서평, 칼럼을 연재했다. '맛있는 책 읽기' '취재수첩보다 생생한 신문기사 쓰기' '1면으로 보는 근현대사:1884~1945' 등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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