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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로 쓰는 세계 경제위기사(14) 대공황'모던 타임스'⑧1929년 '암흑의 목요일'
영화로 쓰는 세계 경제위기사(14) 대공황'모던 타임스'⑧1929년 '암흑의 목요일'
  • 이코노텔링 이재광 대기자
  • jkrepo@naver.com
  • 승인 2021.12.16 07: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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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에만 주가 11% 빠져 거래소 폐쇄설 돌아…금융지원으로 -2.08%로 선방
나흘뒤 가격 따지지 않고 투매 폭풍…하루새 11.73% 빠지며 '美대공황' 전조
루즈벨트 대통령의 온갖 대책들도 '백약무효'…GDP반토막에 실업률 25%로

러시아혁명으로 서구는 '반(反)공산주의'를 간판으로 내건 극우 파시스트들의 열정적인 활동무대가 됐다. 1922년 무솔리니, 1933년 히틀러에 이어 <모던 타임스>가 개봉됐던 1936년에는 프랑스도 스페인도 위험했다. 대공황은 당시의 공산주의자와 파시스트 모두에게 위기와 기회의 토양이었다. 대공황이 국내외 정치 측면에서도 그렇게 중요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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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공황'에 대해 얘기하려면 늘 용어가 신경이 쓰인다. 'depression'은 보통 '불황'으로 번역되는데 'Great Depression'은 '대공황'으로 번역된다. 일반적으로 '공황'으로 번역해 쓰는 용어는 'panic'이다. 비슷한 용어로, 통상 '위기'로 번역되는 'crisis'가 있고 '경기침체' 또는 '경기후퇴'로 번역해 쓰는 'recession'도 있다. 'recession'은 그나마 낫다. 정의가 분명하다. '2분기 연속 마이너스 성장'이면 이 용어를 쓴다. 그러나 'depression'에 대한 일반 정의는 없다. 그저 "경제의 회복이나 붕괴와 관련된 뚜렷한 추세 없이 경제활동의 침체가 오랫동안 지속되는 만성적인 상태"로 부른 케인스의 모호한 용법을 쓰는 경우가 많다.

영어 'Great Depression'은 대문자로 쓴다는 점에 주의해야 한다. 그리고 앞에 정관사 'the'가 붙는다. '대공황', 즉 'The Great Depression'은 그냥 일반적인 '심각한 불황'을 뜻하지 않는다는 의미다. 그 정도를 훨씬 뛰어넘는다는 것이다. 일부 전문가들은 1870년대 불황에도 이 용어를 쓰기도 한다. 당시 불황이 심각하기는 했다. 경제가 20년 바닥에서 헤어 나오지 못했다. 하지만 보통은 1929년 10월 24일 미국의 주가 폭락으로 시작해 제2차 세계대전으로 겨우 끝이 난, 인류 역사 상 최대의 불황을 지칭한다. 그만큼 당시 경제적 어려움이 인류에게 큰 상처를 줬다는 얘기일 것이다.

최근 유사 용어가 싸움하듯 난립한다. 2021년 말의 경제위기가 그만큼 심각하다는 방증일 것이다. 경제에 대한 부정적 견해로 유명한 누리엘 루비니(Nouriel Roubini) 뉴욕대 교수는 'the Greater Depression'이란 말을 쓰는데 이는 보통 '대대공황'이라 번역된다. 경제전문가 겸 칼럼니스트인 제임스 리카즈(James Rickards)는 지난해 'the New Great Depression'이란 이름의 책을 내 베스트셀러 대열에 올랐다. 우리나라에서도 『신대공황』(2021, RHK)이란 같은 제목으로 출간됐다. 그밖에 '대공황 2.0'이나 '제2차 대공황'이란 신조어도 쓰인다. 용어가 무엇이든 지금 인류는 거의 100년 만에 찾아온 무서운 불황을 맞고 있다는 뜻일 게다.

미국 경제전문가 제임스 리카즈는 저서 『신대공황』(2021, RHK)에서 팬데믹으로 세계는 새로운 대공황을 맞을 것으로 예측했다.
미국 경제전문가 제임스 리카즈는 저서 『신대공황』(2021, RHK)에서 팬데믹으로 세계는 새로운 대공황을 맞을 것으로 예측했다.

■ 4명 중 1명이 실업자

아닌 게 아니라 팬데믹 이후 경제는 미로(迷路)처럼 어지럽다. 대규모 실업과 불황이 터지자 이를 막자며 엄청난 돈을 뿌렸다. 그러자 부작용이 터졌다. 부동산과 원자재에 이어 소비자 물가가 천정부지로 올랐다. '하이퍼인플레이션'이란 얘기까지 나왔다. "일시적으로 판단한다"던 연준도 한 걸음 물러났다. 전문가들은 조기 금리인상을 점친다. 두렵다. 거품으로 인한 하이퍼인플레이션도, 인플레이션을 줄이는 디스인플레이션 정책도. 둘 모두 엄청난 고통이 수반된다. 모두가 1930년대 대공황에 다시 눈길을 주는 이유다. 당시 위기의 현황과 원인ㆍ과정ㆍ결과를 모르고서는 지금 상황을 얘기할 수 없다고들 한다. 도대체 그때 무슨 일이 벌어졌던 것일까?

"10월 24일은 목요일이었다. 그 중대한 날, 주식시장의 개장은 거래가 다소 많았을 뿐 아주 평범했다. 그러나 개장 직후 곧 케네코트 2만주 매도가 주가표시 테이프에 나타났고 이어 제너럴 모터스도 비슷한 양의 매도가 나왔다. 그와 동시에 매도 주문의 중압은 혼란을 일으킬 만큼 격렬했다. … 거래 후 1시간이 지나기 전에 전례 없이 격심하게 하락하고 있는 것은 명백해졌다. 전국의 브로커 사무소에서 주가 표시 테이프를 보고 있던 사람들은 놀라움과 곤혹한 얼굴로 서로 쳐다보고 있었다. 도대체 이 노도와 같은 매도 주문은 어디서 온 것일까?"

『바로 어제(Only yesterday)』라는 책이 있다. 언론인이자 베스트셀러 작가인 프레드릭 루이스 알렌(Frederick Lewis Allen)이 쓴 대공황 관련 책이다. 이 책에서 알렌은 1929년 10월 24일 '암흑의 목요일(Black Thursday)' 주식시장 상황을 이렇게 묘사했다. 'The Great Depression'이라는 고유명사로 불리는 1930년대 대공황의 기점(起點)이 되는 날이다. 이날 오전 주가는 무려 11%나 빠졌다. 흉흉한 소문까지 떠돌았다. 투자자 여럿이 자살했다거나, 버팔로와 시카고 거래소가 폐쇄됐다거나, 뉴욕거래소는 격앙된 폭도들을 막기 위해 군대가 지키고 있다는 등이었다. 그러나 마감 시 종가는 –2.08%로 비교적 양호했다. 주요 금융권 인사들의 긴급 회동과 재정지원으로 회생의 불씨를 살릴 수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상황은 좋지 않았다. 4일 후인 10월 28일 월요일에 이어 5일 후인 10월 29일 화요일에도 대 폭락이 이어졌다. 특히 29일 화요일 주가폭락은 '재앙'이라 부를 만 했다. 바닥을 모를 만큼 주가가 떨어지고 있었다. 이날은 장 초반부터 매도 주문이 폭풍처럼 밀려들었다. "값이야 얼마든 상관없다, 팔리기만 해라"는 식이었다. 10월 24일의 경우에는 증시안정자금을 투입해 주가하락세에 브레이크를 걸었다. 하지만 이날은 그조차 없었다. 누구도 하락을 멈출 수 없었다. 주가는 260.64p에서 230.07p로 30.57p, 비율로 환산할 경우 무려 11.73%나 빠졌다. 이날을 '암흑의 화요일(Black Tuesday)'로 부르는 이유다.

대공황기 실업자 행렬. 당시 실업률은 25%에 이르렀다.
대공황기 실업자 행렬. 당시 실업률은 25%에 이르렀다.

이처럼 대공황의 포문은 미국 주식시장이 열었다. 그리고 경제는 나락으로 떨어졌다. 1930년대는 물론 1940년대 전쟁이 일어나기 전까지, 미국 경제는 예전으로 돌아가지 못했다.

루즈벨트 대통령의 온갖 혁신적인 정책들도 '백약무효(百藥無效)'였다. 이 길고도 심각한 불황에 대해 역사가들은 '자본주의 역사 이래 최악의 경제적 재앙'이라고 부르는 데 주저하지 않는다. 다음 몇 가지 사항만 봐도 '암흑의 목요일' 이후의 상황을 알 수 있을 것이다. 그야말로 참혹한 상황이었다.

▶'암흑의 목요일' 이후 1932년까지 3년 동안 주가는 90% 가까이 빠졌다.

▶미국의 국민총생산(GNP)은 1929~33년 4년 사이 1044억 달러에서 556억 달러로 46% 하락했다.

▶1929년 3.2%였던 실업률은 1933년 25%로 8배 늘었다.

▶민간 국내 순투자는, 감가상각을 고려했을 때, 1929년 83억 달러에서 1933년 –56억 달러가 됐다.

▶소비자 물가는 1929년 100을 기준으로 1933년 75까지 떨어졌다.

▶임금은 1929년 100.5를 기준으로 1932년과 1933년 각각 41.6과 44.0으로 절반 아래로 떨어졌다.

▶농가 총소득은 1929년 138억 달러에서 1932년 64억 달러로 절반 넘게 줄었다.

▶수출은 1929년 52억 달러에서 16억 달러, 수입은 44억 달러에서 13억 달러로 줄었다.

▶1929~1933년 4년 동안 파산한 은행은 1만4203개로 1921~28년 7년 동안 파산한 은행 4763개보다 3배 이상 많았다.

'암흑의 목요일'에서 시작된 대공황은 미국과 미국인에게 이처럼 끔찍한 경험을 남겼다. 하지만 이 끔찍한 경험이 미국에만 한정됐던 것은 아니다. 대공황은 그 위세도 엄청났다. 불행의 씨앗이 유럽은 물론 멀리 동아시아에까지 퍼졌다. 대공황은, 그야말로, 온 인류를 괴롭힌 모래바람이었다. 빈곤과 실업의 먹구름이 빛을 가려 앞이 보이지 않았다. 도대체 대공황은 왜 일어났던 것일까? 왜 그토록 오래 진행됐던 것일까? 대공황은 과연 인류가 극복할 수 없었던 과제였을까? 이제 이 문제를 검토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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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광 이코노텔링 대기자❙한양대 미래인재교육원 겸임교수❙전 한양대 공공정책대학원 특임교수❙사회학(고려대)ㆍ행정학(경희대)박사❙경기연구원 선임연구위원, 뉴욕주립대 초빙연구위원, 젊은영화비평집단 고문, 중앙일보 기자 역임❙단편소설 '나카마'로 제36회(2013년) 한국소설가협회 신인문학상 수상❙저서 『영화로 쓰는 세계경제사』, 『영화로 쓰는 20세기 세계경제사』, 『식민과 제국의 길』, 『과잉생산, 불황, 그리고 거버넌스』 등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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