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26 15:10 (금)
[김성희의 역사갈피]목욕탕에 걸려 있던 '모나리자'
[김성희의 역사갈피]목욕탕에 걸려 있던 '모나리자'
  • 이코노텔링 김성희 객원 편집위원
  • jaejae99@hanmail.net
  • 승인 2021.11.29 09: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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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19년 다빈치 작고 후 예술품 수집관의 1층 욕실에서 수난 받던 그림
'모나리자'는 프란체스코 지오콘도의 세 번째 부인으로 리자 부인이라 불리던 게라르디니의 초상화다/이코노텔링그래픽팀.
'모나리자'는 프란체스코 지오콘도의 세 번째 부인으로 리자 부인이라 불리던 게라르디니의 초상화다/이코노텔링그래픽팀.

'이발소 그림'이란 게 있다. 나이 지긋한 이들은 알 터다. 예전에 숲에 들어선 뾰족한 빨간 지붕, 호수 위의 몇 마리 백조(?)가 들어간 싸구려 그림을 걸어둔 이발소가 많아서 나온 이야기였다. 당연히 '이발소 그림'이라 하면 상투적인 소재, 조잡한 화법, 강렬한 색채가 범벅이 된 그림 아닌 그림이었다.

그럼, '목욕탕 그림'하면 어떤 느낌일까. 이런 표현은 없지만 있다 치면 '이발소 그림'에서 크게 벗어날 듯하지 않은가. 한데 단순한 명화가 아니라 '전설'의 경지에 든 다빈치의 '모나리자'가 한때 '목욕탕 그림'이었다. 뭐, 문자 그대로 목욕탕에, 그것도 백 년 가까이 걸려 있었다는 이야기다.

'모나리자'는 프란체스코 지오콘도의 세 번째 부인으로 리자 부인이라 불리던 게라르디니의 초상화다. 이 명화를 둘러싼 이야기는 지금까지도 신비에 싸인 것이 적지 않은데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1503년 이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것으로 알려졌다. 다빈치는 77×53센티미터의 튼튼한 포플러 나무판 두 개를 덧대어 그 위에 이 걸작을 그렸다.

이 걸작의 최초 소유자는 다빈치의 후원자였던 프랑스의 프랑수아 1세(재위 1511~1574)였다. 그러나 이 프랑스 국왕은 4천 에퀴에 사들인 '모나리자'를 다빈치에게 돌려주었다. 1519년 다빈치가 세상을 떠난 뒤 약간의 우여곡절 끝에 프랑수아 1세가 1534년 야심만만하고 독창적인 형태로 건설한 퐁텐블로성의 욕실에 이 그림을 걸어놓았다.

물론 예술품 수집관의 1층에 있던 그 욕실은 요즘 우리가 생각하는 욕실과는 수준이 다르긴했다. 무려 7개의 방으로 된 욕실 중 3곳은 욕탕, 3곳은 휴게실인 호화판으로, 몸을 씻는 데 그치지 않고, 독서, 남녀 간의 흥겨운 '놀이' 등 다양한 유흥을 즐길 수 있을 뿐 아니라 심지어 왕과 신하들이 국사를 논의하고 철학적 토론을 벌이던 곳이라 한다.

아무튼 모나리자는 이후 17세기 내내 퐁텐블로성에서 프랑스 귀족들의 못 볼꼴을 지켜보다가 1695년 베르사유의 태양왕 루이 14세의 갤러리로 옮겨졌다. 비로소 '국보'다운 대접을 받게 된 셈이었지만 '모나리자'의 수난은 이에 그치지 않았다. 1797년 프랑스 혁명 세력은 베르사유 예술품을 '정리'하면서 모나리자를 튈르리 궁전으로 옮겼다. 결국 1800년 혁명정부를 와해시키고 스스로 제1집정관이 된 나폴레옹이 튈르리 궁전의 주인이 되면서 모나리자는 이제 미래의 황제의 침실을 장식하게 되었다.

이는 세계적 예술품에 얽힌 기막힌 사연을 모은 『'모나리자'는 원래 목욕탕에 걸려 있었다』(니콜라스 포웰 지음, 동아일보사)에 실렸다. '팔만대장경도 모르면 빨래판이다'이란 책도 있지만 이제는 전설이 된 인류의 걸작도 이처럼 '이발소 그림' 대접을 받기도 했으니 역시 세상사는 알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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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코노텔링 김성희 객원 편집위원 커리커처.
이코노텔링 김성희 객원 편집위원 커리커처.

고려대학교에서 행정학을 전공하고 한국일보에서 기자생활을 시작했다. 2010년 중앙일보 문화부 기자로 정년퇴직한 후 북 칼럼니스트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2008년엔 고려대학교 언론학부 초빙교수로 강단에 선 이후 2014년까지 7년 간 숙명여자대학교 미디어학부 겸임교수로 미디어 글쓰기를 강의했다. 네이버, 프레시안, 국민은행 인문학사이트, 아시아경제신문, 중앙일보 온라인판 등에 서평, 칼럼을 연재했다. '맛있는 책 읽기' '취재수첩보다 생생한 신문기사 쓰기' '1면으로 보는 근현대사:1884~1945' 등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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