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12-02 00:25 (목)
영화로 쓰는 세계 경제위기사(14) 대공황'모던 타임스' ④실업은 경제발전 신호?
영화로 쓰는 세계 경제위기사(14) 대공황'모던 타임스' ④실업은 경제발전 신호?
  • 이코노텔링 이재광 대기자
  • jkrepo@naver.com
  • 승인 2021.11.17 22:5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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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글러스의 '사회신용론'은 기술의 진보가 문명 발전의 필연이라 해석
뿌리 없는 ' 채플린의 경제지식 '도 그의 자산 관리에 도움 줘 아이러니

'사회신용론'에 감동 받은 채플린이 가장 먼저 한 일은, 놀랍게도, 자신의 자산관리였다. "기업의 이윤은 임금에서 나온다"는 '노동가치론'을 '사회신용론'의 핵심 주장으로 받아들인 그는 실업이 심각하다는 인식 아래 대공황 직전 주식과 채권을 모두 팔아치웠다. 훌륭한 선택이었다. 하지만 그는 더글러스를 잘못 이해하고 있었다. 기막힌 아이러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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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신용론'의 창시자 더글러스는 과연 채플린이 이해했듯 노동가치론을 받아들이고 이를 설파했던 것일까? 마르크스주의자였을까? 아담 스미스나 리카도를 따랐을까? 아니다.

모호한 측면이 있기는 해도, 그는 정통 경제학에서 말하는 노동가치론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가 생각하는 '노동'이라는 개념 자체가 일반 경제학자들과 아예 달랐다. 그가 문과가 아닌 이과, 경제학자가 아닌 엔지니어였다는 점을 상기해 보자. 그리고 그가 1934년 1월 22일 호주 멜버른시청에서 했다는 연설문을 살펴보자.

"노동이 모든 부(wealth)를 생산한다는 것이 정통 노동당의 주장입니다. 만약 그것이 사실이라면, 제 생각에, 모든 돈(money)이 노동자의 것이라고 말하는 것은 완벽하게 옳고 적절할 것입니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그것은 사실이 아닙니다. ··· 오늘날 생산은 거의 전적으로 힘의 문제입니다. 즉, 수력이나 석유력, 석탄력, 전력기관에서 나오는 전력 등을 말하는 것입니다. 만일 노동이 근력 등의 방법으로 모든 힘을 공급한다면 노동이, 손이나 뇌 등을 통해 부(富)를 생산한다는 말이 공정하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 (기술이나 기계 등) 대부분을 이전의 발명가나 엔지니어나 기획자 등으로부터 물려받은 위대한 문화의 계승자입니다. 우리는 그 문화유산의 관리자일 뿐입니다. 따라서 문화유산은 예외 없이 우리 모두의 재산이 되는 것입니다."

더글러스가 엔지니어 출신이라서 그럴 것이다. 그는, 생각의 방식에서, 경제학자나 사회학자와 확실히 다르다. 연설문에서 보듯, 그는 '노동가치론'에서의 '노동'을 주로 상품을 생산하는 '근력'으로 간주한다. '생산의 문제'를 '힘(power)의 문제'로 보는 것이다. 하지만 생각해 보자. '힘'이라면 태양력이나 수력, 화력, 전력 등이 근력을 압도한다. 그리고 태양이나 물, 불, 전기 등 자연물을 생산에 필요한 '힘'으로 바꾸는 것은 '기술'이다. 또한 이 '기술'은 하루 이틀 사이 만들어지는 게 아니다. 수백, 수천, 수 만년 동안 누적된 것이 오늘날의 기술이다. 그러니 '기술'은 인류의 '문화유산'이 된다.

미국 위스콘신주 애플턴의 폭스리버 댐. 1882년 설립된 세계 최초의 수력발전소다. 더글러스는 모든 기술, 특히 에너지 관련 기술은 인류 모두의 문화유산이라 주장한다. 따라서 그 소유권은 국가ㆍ사회가 돼야 한다는 것이다.
미국 위스콘신주 애플턴의 폭스리버 댐. 1882년 설립된 세계 최초의 수력발전소다. 더글러스는 모든 기술, 특히 에너지 관련 기술은 인류 모두의 문화유산이라 주장한다. 따라서 그 소유권은 국가ㆍ사회가 돼야 한다는 것이다.

그에게 이 '문화유산'은 매우 중요하다. 토지, 노동, 자본 등 전통적인 '생산의 3요소'보다 더 중요하다. 그래서 네 번째, 즉 '4대 생산요소'라 부른다. 그렇다면 이 문화유산은 누구의 소유여야 할까? 지금 그 기술을 운영하는 기업의 것이어야 할까? 아니면, 노동당이 주장하는 '부의 원초적 창출자'로서의 노동자여야 할까? 아니다. 둘 다 아니다. 그 소유권은 인류 전체에 있다. 인류 모두의 선조가 이뤄놓은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인류의 문화유산으로서의 기술을 활용한 생산, 그리고 거기서 얻어진 부(富)는 다시 인류 모두에게 돌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 더글러스, "실업은 경제발전의 신호"

더글러스가 받아들이는 '실업'도 매우 특이하다. 기술의 진보는 문명의 발전이요 필연이다. 그러니 실업의 증가도 필연이다. 그에게 "실업은 경제 붕괴가 아닌 발전의 신호"가 된다. 따라서 그가 보기에 기업의 이윤이 주는 이유는 기술발전과 그에 따른 노동력의 상실 때문이 아니다. 문제는 사회 전체의 구매력이다. 실업은 이 구매력을 떨어뜨리고 기업은 결국 물건을 팔 대상이 준다. 이 상황은 점점 더 심해지고 기업도 노동자도 결국 빚으로 살 수밖에 없다. 케인스가 그의 이론에 '과소소비론'이라는 이름을 붙여준 이유다. 해결책? 사회신용이다. 사회가 또는 국가가 나서서 국민에게 또는 기업에게 거저 돈을 주거나 이자 없이 돈을 대출해 줘야 한다. 그래야 경제가 살아날 수 있다.

이처럼 채플린이 갖는 경제지식의 수준은 좋게 평가하기 어렵다. 하지만, 따지고 보면, 이는 한편으로 당연한 일이다. 그가 경제학자인가? 경제전문가인가? 그는 그저 영화배우요 감독일 뿐이다. 그에게 경제에 대한 정책이나 철학을 기대한다는 것은 애시 당초 무리다. 당연히 그도 무리했다. 그가 미국이나 유럽경제의 활성화 방안이나 독일의 배상금 해결방안 등을 제시한 것 또한 과분한 일이다. 그의 정치ㆍ경제ㆍ사회적 지식은 종합적이거나 다면적이지 않음이 분명하다.

이 같은 해석은 채플린의 주변에서도 나온다. 초기 미국 영화사에서 또 한 명의 주역으로 활동했던 채플린의 친구 버스터 키튼(Buster Keaton)의 말을 들어 보자. 그는 자서전 『나의 놀라운 슬랩스틱의 세상(My wonderful world of slapstick)』에서 채플린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나 자신은 정치에 대해 거의 모르는 삶을 살아왔다. ··· 찰리가 나보다 정치, 역사, 경제에 대해 더 많이 알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기저귀를 떼기 전부터 메이크업 타올에 맞아가며 자란 것은 그나 나나 마찬가지였다. 우리 둘은 모두 쇼 비즈니스 말고는 공부할 시간이 없었다."

그럼에도 그는 더글러스를 공부한 뒤 자기 자산을 지켰다. 한 마디로 "운이 좋았다"고 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돈에 대한 그의 감각도 무시하기 어렵다. 그는 사업가였다. 돈에 매우 예민했다. 젊은 시절 형 시드니에게 쓴 편지를 보라. 온통 돈 얘기다. 얼마나 벌었고 모았고 모으는지, 그리고 얼마나 벌고 싶은지···. 형 시드니가 벌 수 있는 돈의 액수도 담겨 있다. 돈에 대한 애착은 나이가 들어서도 계속됐다. 1929년 10월 주가폭락 직전 시장은 이미 흔들리고 있었다. 주가 하락에 대한 우려도 싹트고 있었다. 그가 알고 있던 더글러스의 이론은, 비록 잘못 알고 있었지만, 이 같은 불안을 키웠을 테고 그가 주식과 채권을 파는 계기를 줬을 것이다.

채플린과 그의 라이벌이자 절친한 친구 키튼이 말년에 함께 출연한 영화 '라임라이트'(1952년). 키튼은 후일 자서전에서 채플린은 정치나 경제를 공부할 시간이 없었다고 말한다.
채플린과 그의 라이벌이자 절친한 친구 키튼이 말년에 함께 출연한 영화 '라임라이트'(1952년). 키튼은 후일 자서전에서 채플린은 정치나 경제를 공부할 시간이 없었다고 말한다.

하지만 돈이야 그렇다 치자. 잘못된 정보로 베팅했는데 운 좋게 돈을 버는 일도 있다. 하지만 진짜 놀라운 일이 있다. '사회신용론'에 대한 이해도 부족한 그가, 그람시 수준의 통찰력으로 자본주의의 모순을 담은 영화를 남기지 않았나. 역사에 길이 남을 영화 <모던 타임스>를. 그리고 바로 이 점에서 우리는 채플린의 천재성을 본다. 도대체 그에게는 어떤 특별한 재능이 있었던 것일까? 어떻게 이런 일을 가능하게 만들었던 것일까? 그의 전기를 쓴 로빈슨이 힌트를 준다.

"그는 이성적이고 책을 좋아하고 생각이 깊은 인간이었다. 그는 실제로 자신이 어떤 문제에 대해서든 피상적이나마 순식간에 이해할 수 있는 능력이 있음을 알고 있었다. 막대한 부를 누리고 있던 인간으로서 그는 특히 경제 문제에 마음이 끌렸다."

특정 주제에 대한 순간적인 포착능력과 빠른 이해력! 로빈슨은 채플린의 바로 이 점을 강조한다. 로빈슨은, 자산가였던 채플린이었기에, 이 같은 능력이 자연스럽게 경제와 연계됐을 것으로 본다. 그러나 순간 이해력이 뛰어나면 깊이가 부족하기 쉽다. 채플린이 더글러스의 '사회경제론'을 잘못 알게 된 것도 이런 측면에서 이해가 된다. 결국 그는 잘못 알고 있던 지식으로 자기 나름의 논리를 만들었다. 그리고 이를, 한편으로는 자산 관리에, 다른 한편으로는 경제 문제 해결을 위한 제안에 썼던 것이다. 또한 그의 자산관리는 성공했고 정책제언은 박수를 받았다. 정말 신기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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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광 이코노텔링 대기자❙한양대 미래인재교육원 겸임교수❙전 한양대 공공정책대학원 특임교수❙사회학(고려대)ㆍ행정학(경희대)박사❙경기연구원 선임연구위원, 뉴욕주립대 초빙연구위원, 젊은영화비평집단 고문, 중앙일보 기자 역임❙단편소설 '나카마'로 제36회(2013년) 한국소설가협회 신인문학상 수상❙저서 『영화로 쓰는 세계경제사』, 『영화로 쓰는 20세기 세계경제사』, 『식민과 제국의 길』, 『과잉생산, 불황, 그리고 거버넌스』 등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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