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12-02 01:40 (목)
영화로 쓰는 세계 경제위기사(14) 대공황 '모던 타임즈' ➀채플린과 그람시
영화로 쓰는 세계 경제위기사(14) 대공황 '모던 타임즈' ➀채플린과 그람시
  • 이코노텔링 이재광 대기자
  • jkrepo@naver.com
  • 승인 2021.11.08 09: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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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모던 타임즈'가 근면ㆍ성실ㆍ절약의 청교도적 삶 그렸지만
기계 속으로 빨려 들어간 장면 하나로 자본주의의 어두운 면 표현"
이태리 공산당 창시자인 그람시의 사회비평과 영화비평 너무 닮아

불멸의 고전, 채플린을 대표하는 최고의 영화, 자본주의 사회 모순에 대한 적나라한 풍자극, 로튼 토마토 신선도 지수 98점인 1등급 영화···. 찰리 채플린의 1936년 작 <모던 타임즈>에 대한 평가는 누가 뭐래도 '최상'이다.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불행을 가져다 준 영화이기도 하다. 영화는 그가 공산주의자로 낙인 찍혀 추방당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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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0~30년대의) 미국적 현상은, 새로운 유형의 노동자와 인간을 창출하고자 한 지금까지의 가장 거대한 노력이며 이는 역사상 유례가 없는 속도와 목적의식을 갖는다. ··· 그 목적이란 노동자의 자동적ㆍ기계적 태도를 극대화시키는 동시에, 기능적ㆍ전문적 작업(이 작업은 일정 정도의 지성ㆍ상상력ㆍ창의력의 적극적 참여를 요구한다)이 오랫동안 유지해 왔던 노동자와의 심리적ㆍ신체적 연관을 파괴해 생산 활동을 오직 기계적이고 신체적인 측면으로만 환원시키려는 것이다."

찰리 채플린(Charles Chaplin)의 1936년 작 <모던 타임즈(Modern Times)>는 당시의 이 같은 '미국적 현상'을 너무나 잘 그려냈다. '작은 떠돌이(Little Tramp)' 찰리가 기계 속으로 빨려 들어가 기계와 하나가 되는 장면을 상기해 보라. "생산 활동을 오직 기계적이고 신체적 측면으로만 환원시키려는" 당대의 '미국적 현상'을 여과 없이 드러내는 명장면이다. 우리는 이 장면 하나에서도 자본주의 체제에 감춰진 비인간적 측면을 읽을 수 있다. 영화사 전체를 통해서도 길이 남을 압권이라는 평가가 아깝지 않다.

"새로운 형태의 문명ㆍ생산ㆍ작업에 적합한 사람들을 선별 또는 교육하는 일은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잔인한 방식으로 이뤄졌으며 그 과정에서 허약하거나 순응하지 않는 자들은 부랑계급들의 감옥에 보내지거나 전적으로 제거되거나 했다."

<모던 타임즈>는 이 사실 또한 직접적ㆍ노골적으로 드러낸다. 반복되는 기계적 노동에 적응하지 못한 떠돌이는 결국 신경쇠약(nervous breakdown)에 걸려 강제로 정신병원에 보내진다. 퇴원 후 직장도 없이 떠돌아다니다 이번에는 예상치 못한 참사가 벌어진다. 길거리에서 우연치 않게 노동운동의 리더로 오해받아 감옥까지 가게 되는 것이다. 영화는 이처럼 새로운 노동ㆍ산업 문명에 적응하지 못하는 부적응자에 대한 제도적 잔인함을 고발한다. 대부분의 경우가 그랬듯 채플린은 소시민이 당할 수밖에 없는 이 고통을 눈물과 웃음으로 버무려낸다. 이것이 채플린 영화가 갖는 최대 강점일 것이다.

■ 새로운 노동계급 창출 도구된 미국 청교도주의

"고임금은 양날의 칼과 같은 무기이다. 고임금의 목적이 실현되자면 곧 노동자들이 그 돈을 자신의 근육적ㆍ신경적 효율성을 유지ㆍ갱생, 그리고 가능하다면 증대시키는데 사용해야 한다. 반대로 그 효율성을 부식시키거나 파괴하는데 써서는 안 된다. ··· '청교도적인' 투쟁들은 또한 국가의 기능이 될 수도 있다. (청교도적인 도덕의 확장이) ➀기업의 사적인 노력만으로 불충분하다는 것이 입증되거나 ➁장기적이고 폭넓은 실업위기의 결과 노동대중들 사이에서의 심각하고도 폭넓은 도덕적 위기가 발생할 경우라면 말이다."

<모던 타임즈>가 보여주는 근면ㆍ성실ㆍ절약은 분명 청교도적이다. 노동자들은 상급자의 지시에 따라 열심히 일하고 각자 싸온 도시락을 먹으며 돈과 시간을 아낀다. 게다가 경건한 부부애의 가치를 추구한다. 떠돌이와 집 없는 소녀가 꿈꾸는 것을 보라. 사랑하는 부부가 즐기는 저녁 식사와 행복한 가정이다. 그리고 그 식탁에는 청교도적 도덕이 깔려 있다. 와인 대신 경건한 부부애를 상징하는, 막 짜낸 따뜻한 생우유가 있지 않나. 이를 위해서는 좋은 일자리와 고임금이 필요하다. 그러니 떠돌이는 일터로 돌아가 하기 싫은 일이라도 하겠다고 외친다. "좋아 할 거야! 내가 (하기 싫은) 일을 해야 한다고 해도 우리는 집을 구할 거야(I'll do it! We'll get a home even if I have to work for it.)"

가난한 떠돌이와 소녀가 꿈꾸는 행복한 저녁 식탁. 와인 대신 갓 짠 우유가 곁들인 식탁은 ‘경건한 부부애’를 강조하는 청교도 윤리를 보여준다.
가난한 떠돌이와 소녀가 꿈꾸는 행복한 저녁 식탁. 와인 대신 갓 짠 우유가 곁들어진 식탁은 '경건한 부부애'를 강조하는 청교도 윤리를 보여준다.

지금까지 열거한 것처럼 특정 사회비평과 그 논리를 바탕으로 한 영화비평은 보기 좋은 '한 짝'을 이룬다. '찰떡궁합'이라 할만하다.

인용 부호를 빼고 조금만 손을 보면 한 사람이 쓴 사회학적 영화비평으로도 손색이 없을 것이다. 어쩌면 아주 빼어다는 평가를 받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바로 느끼셨겠지만, 인용과 영화비평은 완전 별개다. 인용한 글은 1920~30년대 정치ㆍ사회운동가가 쓴 사회비평이며 영화비평은 이를 기반으로 하여 필자가 쓴 것이다. 인용과 영화를 하나로 묶어 쓰면서 그 어울림과 싱크로율에 필자도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인용한 글의 주인이 누구냐고? 놀라지 마시라. 이탈리아 공산당의 창시자이자 전후 마르크스주의 연구를 이끈 안토니오 그람시(Antonio Gramsci)다. 1891년 생으로 채플린보다 두 살 어린 그람시는 1921년 서른의 나이에 이탈리아 공산당을 창당한다. 채플린이 '무성 영화 시대 최대 걸작'으로 칭송받는 영화 <키드(The Kid)>를 개봉한 그해였다. 그람시는 스물 두 살이었던 1913년 사회당에 입당했다가 당을 뛰쳐나와 공산주의 운동을 시작한다. 사회당을 탈당한 이유가 당의 보수적 성향 때문이라고 할 만큼 그는 과격ㆍ급진주의자였다.

그러나 1922년 사회주의나 공산주의를 적으로 여긴 극우 파시스트 정당과 그 당수였던 베니토 무솔리니(Benito Mussolini)의 정권 장악으로 당은 위기에 몰린다. 첫 수 년은 온갖 탄압에 저항하고 버텼으나 결국 투옥된다. 공산당 창당 5년 뒤인 1926년의 일이었다. 주변인들은 그에게 망명을 권했으나 이를 거부하고 끝까지 당을 지키다 체포됐던 것이다. 그리고 20년 형을 받는다.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던 과도한 처벌이었다. 1928년 5월 28일 재판에서 검사는 "우리는 이 뇌가 20년 동안 기능하지 않고 멈춰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한 것은 유명하다. 무솔리니에게 그람시는 그만큼 위험인물이었다.

이탈리아 공산당의 창시자 안토니오 그람시
이탈리아 공산당의 창시자 안토니오 그람시

검사의 의도는 일단 성공하는 듯 보였다. 감옥에서 20년을 있게 했으니 말이다. 그러나 절반의 성공에 불과했다. 그람시의 뇌를 멈추게 하는 데에는 실패했기 때문이다. 오히려 반대였다. 모든 정치ㆍ사회활동이 멈추자 그의 뇌는 더욱 활성화돼 엄청난 양의 글을 쏟아냈다. '그람시의 옥중수고'로 불리는 이 글은 노트 30여권의 3000쪽에 이르는 방대한 분량이다. 1929년부터 1935년까지 약 6년 간 쓴 이 글은 1948년 『옥중수고(Quaderni del carcere)』라는 제목으로 출간돼 큰 반향을 일으킨다. 이 책을 통해 그람시는 20세기 사회에 대한 새로운 분석으로 마르크스주의를 한층 발전시킨 마르크스주의자로 평가받는다.

위 인용문은 그람시의 『옥중수고』 중 제1권 3장 '미국주의와 포디즘(Americanism and Fordism)'에 수록된 내용이다.

1948년 이탈리아에서 첫 출간된 안토니오 그람시의 ‘옥중수고’
1948년 이탈리아에서 첫 출간된 안토니오 그람시의 '옥중수고'

이 글은 1920~30년대 미국에서 본격 가동 중이던 테일러주의와 포디즘이 무엇이며, 어떻게 그리고 왜 출현했는지, 향후 미국은 물론 유럽에 어떤 영향을 줄 지에 대해 개략적으로 쓴 것이다. '자본주의 타도'를 외친 그람시에게는 이 목적 달성을 위한 이론인 '헤게모니론'이 결정적으로 중요하다. "자본주의 지배계급은 물리적 힘뿐 아니라 피지배계급에 대한 동의와 합의를 이끌어낸다"는 게 이 이론의 핵심이다. '미국주의와 포디즘'은 자신의 헤게모니 이론을 구체화시킨 좋은 사례일 수 있다.

급진적이고 과격한 공산주의자이자 극단적인 마르크스 추종자 그람시. 그의 이론이 채플린의 영화 <모던 타임즈>와 무척이나 잘 어울린다는 사실은 누가 봐도 놀랍다. 우리는 이 사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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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광 이코노텔링대기자❙한양대 미래인재교육원 겸임교수❙전 한양대 공공정책대학원 특임교수❙사회학(고려대)ㆍ행정학(경희대)박사❙경기연구원 선임연구위원, 뉴욕주립대 초빙연구위원, 젊은영화비평집단 고문, 중앙일보 기자 역임❙단편소설 '나카마'로 제36회(2013년) 한국소설가협회 신인문학상 수상❙저서 『영화로 쓰는 세계경제사』, 『영화로 쓰는 20세기 세계경제사』, 『식민과 제국의 길』, 『과잉생산, 불황, 그리고 거버넌스』 등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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