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선을 고려해 세 평짜리 '주부실'은 물론 '소아방'과 '노인실'도 선보여
장차 어머니 역할할 진명여학교 여학생, 덕수궁 궁녀등 단체 관람 열기
"…솥과 나무도 이곳에 두고 두주찬상을 모두 이곳에 두어도 조금도 좁지 않고 또한 극히 정결하며 이것저것 집으로 다니느라고 딴 걸음을 칠 까닭도 없이 아주 편하게 일을 할 수가 있으니 밥 한끼를 지어먹으려면 모든 대청을 차지하고 찬장 두주락자가 안대청의 주인 노릇을 하는 조선 가정에서는 장래 주방을 개량하는 데 참고를 할지니…"
일제가 한반도를 온전히 지배한 지 그리 오래되지 않았던 1915년 9월 17일 자 『매일신보』의 기사 한 토막이다.
'가정박람회'는 일본에서 개최됐던 것을 들여온 것으로 신식 모형주택에 재봉틀이며 가정의약 치료기계 등 각종 '첨단' 가구를 차려놓고 관람객들이 보고 만지고 체험하게 만든 행사였다.
매일신보사는 그해 9월 11일 '가정박람회'를 개최하고는 관람객을 모으기 위해 다양한 기사로 '군불'을 때고 있었는데 이는 그런 기사 중 하나였다. 장차 아내며 어머니가 될 진명여학교의 여학생들과 덕수궁 궁녀들이 단체로 관람하는가 하면 조선에 파견된 일본 귀족의 부인들과 이완용의 부인 등도 찾을 정도로 인기를 끌었다.
어느 정도였느냐 하면 개장 일주일 만에 "집안 살림에 분주하여 나올 틈이 없는 고로 저녁에 나와서 구경하실" 부인들을 위해 '야간 개장'을 했을 만큼 성황을 이뤘단다.
일본 중류 가정을 모델로 '모던'한 삶을 소개한 이 가정박람회는 단순히 가정용품 눈요기만 시키는 것이 아니라 집안에서 아이들 기르는 방식까지 소개하는, 주부들을 위한 '꿈의 궁전'이었다. 동선을 고려한 세 평짜리 '주부실'을 설치하는 것은 물론 '소아방'과 '노인실'도 선보였다. 소아방은 "아이들이 규모 있게 놀고 공부하며 절도 있게 생활하는 법을 자연히 깨닫게 하기 위해" 세 칸으로 나눠야 한다는 주장이 기사화되었으며 노인실은 왕래에 편하도록 뒷간을 방의 곁에 지었다는 점도 강조되었다.
이런 사실은 『스위트홈의 기원』(백지혜 지음, 살림)에 소개되었다. 지은이는 가정박람회는 모델하우스의 효시라며 1915년은 조선의 주거의 전환점이자 가정에 관한 인식이 최초로 싹튼 해라고 지적한다. 당시 조선의 주택 대부분이 작고, 비위생적인 초가집이 태반이었다는 사실과는 무관하게 말이다.
평당 1억 원을 호가하는 고급 주택에 관한 기사가 나오는 요즘이다. 더불어 집값이 하루가 다르게 뛰는 바람에 '영끌(영혼을 끌어모으다)'을 해도 집 없는 설움에서 탈출하기 힘들다는 비명이 나오는 판이다. 어쩌면 집에 대한 열망은 100여 년 전 '가정박람회'가 그 뿌리인 것 같아 입맛이 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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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대학교에서 행정학을 전공하고 한국일보에서 기자생활을 시작했다. 2010년 중앙일보 문화부 기자로 정년퇴직한 후 북 칼럼니스트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2008년엔 고려대학교 언론학부 초빙교수로 강단에 선 이후 2014년까지 7년 간 숙명여자대학교 미디어학부 겸임교수로 미디어 글쓰기를 강의했다. 네이버, 프레시안, 국민은행 인문학사이트, 아시아경제신문, 중앙일보 온라인판 등에 서평, 칼럼을 연재했다. '맛있는 책 읽기' '취재수첩보다 생생한 신문기사 쓰기' '1면으로 보는 근현대사:1884~1945' 등을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