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7-01 21:20 (화)
영화로 쓰는 세계 경제위기사(13) 마부제박사⑭ '오징어 게임'과 유사성
영화로 쓰는 세계 경제위기사(13) 마부제박사⑭ '오징어 게임'과 유사성
  • 이코노텔링 이재광 대기자
  • jkrepo@naver.com
  • 승인 2021.11.03 09: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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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부격차가 심화되는' 인플레이션 시대의 진입기 '에 만들어져 비슷
돈에 대한 심리와 제도를 꿰뚫어 보는 부자들의 대중의 삶 파괴 고발

러닝 타임 3시간 15분. 그럼에도 변화무쌍한 변신술로 집중하고 봐야 누가 마부제 박사인지 겨우 알 수 있는 구성. 꼬리에 꼬리를 물고 터지는 사건들. 범죄ㆍ스릴러 영화의 특성상 어쩔 수 없이 드러나는 무섭고 무거운 분위기. 여기에 소리도 없는 무성영화. <도박사, 마부제 박사>는 접근하기 쉽지 않은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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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내용도 해석도 복잡하다. 평가도 남다르다. 그중 '다큐 특성을 갖는 표현주의 영화'라는 평가가 압권이다.

'표현주의'는 '사실주의'의 반대편에 서 있고 다큐는 사실주의의 극단에 서 있다. 이 정도로 이율적인 평가도 없을 것이다. 그래서 이해하기 힘들다. 랑 감독은 이 영화에 대해 '표현주의'란 평가를 싫어한다지만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누가 봐도 표현주의 기법이 쓰였다 할 만하다. 경찰에 쫓긴 마부제 박사는 자신의 위조지폐 공장으로 도망친다. 그곳에서 공포에 떨던 그는 자신이 살해한 사람들의 유령을 본다. 공포는 또한 정신을 망친다. 벽시계와 위조지폐 제조기는 괴물이 되어 그를 덮친다. 경찰이 도착했을 때 그는 이미 미치광이가 돼 있었다.

그럼에도 랑 감독은 자신의 영화가 '표현주의'보다는 '사실주의'로 불리기를 원한다. 당대의 독일 현실을 다큐처럼 만들었다고 주장할 정도다. 이와 관련해 1968년 인터뷰를 귀담아 들을 필요가 있다. 그는 인터뷰에서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나자 독일은 거대한 절망의 시기를 맞았다"며 "그 시기는 히스테리와 냉소의 시기였고 또한 억제되지 않은 악(unrestrained vices)의 시기이기도 했다"고 말한다. 결국 <도박사, 마부제 박사>에 1920년을 전후한 독일의 절망과 히스테리와 냉소와 억제되지 않은 악을 담았다는 얘기가 된다. 그렇다면 <도박사, 마부제 박사>는, 그의 말대로, 당대의 사회상과 정신을 담은 다큐영화가 되는 것이다.

'도박사, 마부제 박사'의 마지막 장면. 표현주의 색채가 농후하다.
'도박사, 마부제 박사'의 마지막 장면. 표현주의 색채가 농후하다.

그러나 생각해 볼 게 있다. <도박사, 마부제 박사>가 그린 '당대'가 언제인가 하는 점이다. 영화 개봉 시기는 1922년 4월과 5월이다. 영화 속 일정상으로는 1922년 11월도 나온다. 앞서 말했듯 독일의 인플레이션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때는 1921년 하반기였다. 그해 말 실질적으로 첫 배상금을 갚아야 했던 독일은 달러를 사기 위해 그때부터 돈을 찍어내기 시작했다.

따라서 영화는 당연히 독일의 하이퍼인플레이션을 반영한다고 생각하기 쉽다. 대부분의 영화 평론가들도 그렇게 말한다. 하지만 이상하다. 영화 속 물가 수준은 이상하리만큼 높지 않다. 주가는 수백에서 수천 마르크 수준이고 '갚아야 할 큰 빚'도 15만 마르크 정도다. '미스터리'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

■ 원작 소설, 1919~21년 배경

당시 현실은 영화와 천지차이다. 1922년 여름이면 물가는 이미 상상을 초월하는 수준에 이른다. 전쟁 전 10마르크였던 신발은 1000마르크가 됐고 0.4마르크였던 밀빵 하나는 30마르크가 됐다. 3마르크도 안 됐던 T셔츠 한 벌이 500마르크나 했다(샤피로, p.215). 이렇게만 본다면 영화 <도박사, 마부제 박사>가 '독일 하이퍼인플레이션의 현실을 반영한 영화'라는 일반적 평은 틀려 보인다.

영화를 자세히 보지 않고 개봉 시기나 영화 속 일정만 보고 그 당시 경제 상황을 지레짐작한 탓이라 생각된다. 엄격하게 말하면 영화가 반영하는 현실은 하이퍼인플레이션 시대가 아닌 그 이전 시점이 된다.

영화의 배경을 조금 더 들여다보면 미스터리가 풀린다. 우선 이 영화가 소설을 근간으로 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원작은 독일 작가 노베르크 자크(Nobert Jacques)가 쓴 같은 이름의 소설이다. 당시 한 신문에 연재됐던 이 소설은, 당연히 영화 제작 및 개봉 시기보다 이르다. 1921년 9월 25일 첫 회가 시작됐으며 연재된 내용을 모아 1922년 2월 같은 이름으로 단행본을 출간했다. 영화 한 편을 3~4개월에 뚝딱 만들던 당시 관행에 비춰보면 단행본 출간 전후 영화제작이 시작됐을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왜 영화 속 시기적 배경이 개봉된 해인 1922년 11월까지 갔는지는 알 수 없으나, 그 실질적 배경은, 1919년부터 1921년 사이로 봐야 할 것이다. 본격적으로 하이퍼인플레이션이 시작되기 전 시점인 것이다.

1932년 만든 '도박사, 마부제 박사'의 후속작 '마부제 박사의 유언'. 이 영화에서 랑 감독은 “마부제 박사는 히틀러의 우화”라 말했다.
1932년에 만든 '도박사, 마부제 박사'의 후속작 '마부제 박사의 유언'. 이 영화에서 랑 감독은 "마부제 박사는 히틀러의 우화"라고 말했다.

자 이제 영화의 마지막 미스터리도 풀렸으니 이 길고 복잡한 영화 <도박사, 마부제 박사>가 갖는 의의와 평가를 간략하게 정리해 보자.

➀영화는 러닝 타임 3시간 15분의 흑백 무성영화이며 장르 상 범죄ㆍ스릴러물에 해당된다. 1부와 2부로 나뉘어 1922년 4월과 5월에 각각 개봉됐으며 상업 및 작품성 측면 모두에서 성공한 작품으로 꼽힌다. 영화의 내용은 마부제 박사의 변신과 최면술을 기반으로 한 범죄에 대한 것이다. 그가 저지른 죄는 주가조작과 이를 위한 서류 강도, 위조지폐 제조, 불법도박, 살인 등으로 그 죄질이 무겁다.

➁표현주의적 기법이 사용됐으나 당대의 현실을 반영한다는 점에서, 영화는 '표현주의적 사실주의' 또는 '사실주의적 표현주의'라는 이율배반적 평가를 받는다. 이 영화로 상업적ㆍ예술적 성공을 거둔 랑 감독은 '거장'의 반열에 올라섰으며 영화는 1927년 작 <메트로폴리스(Metropolis)> 및 1931년 작 <M>과 함께 그의 대표작으로 꼽힌다. 또한 이 영화에 대한 애정이 지대했던 랑 감독은 이후 1932년과 1960년 제2, 제3의 후속작을 낸다. 특히 세 번째 후속작 <마부제 박사의 1000개의 눈>은 그의 마지막 작품이 된다.

➂영화는 보통 독일 하이퍼인플레이션 시대를 반영한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는 영화의 개봉 시기(1922년 4월과 5월)나 영화 속 배경 시기(1922년 11월)가 하이퍼인플레이션이 본격적으로 개시된 1921년 이후라는 점에서 비롯된 것이나 실상은 그렇지 않다. 영화 속 가격 단위는 그다지 크지 않다. 주가는 고작 수 백, 수 천 마르크 수준이며 15만 마르크를 '큰 빚'으로 표현한다. 이는 영화의 원작인 동명의 소설이 대략 1919~1921년 사이를 그리고 있기 때문인 것으로 해석된다.

➃영화 개봉 이후 오랜 동안 영화계는 마부제 박사에 대한 다양한 해석을 내놓았다. 마부제 박사가 히틀러나 니체의 초인, 독재자, 돈 자체 등을 의미한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랑 감독은 이 모두를 부인한다. 마부제 박사는 당대의 신흥졸부의 원형이라는 것이다. 이때의 신흥졸부란 모두가 어려운 상황에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돈을 버는 혐오스러운 캐릭터를 뜻한다.

➄그러나 랑 감독은 이후 1932년 개봉된 <도박사, 마부제 박사>의 후속작 <마부제 박사의 유언>에서는 마부제 박사를 히틀러와 대비시키며 영화 자체를 히틀러와 나치의 우화로 만든다. 이를 근거로 우리는, 비록 감독은 이를 부정했지만, <도박사, 마부제 박사> 속 마부제 박사가 히틀러와 같은 독재자를 예언적으로 암시했다는 해석 또한 유효하다 할 수 있다.

여러 차례 말했듯 영화 <도박사, 마부제 박사>는 요즘의 대중이 접근하기 쉽지 않다. 길고 복잡하고 어렵다. 그러나 이제 이 작품에 대한 재해석과 재평가가 필요하지 않나 싶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 <오징어 게임>의 빅 히트를 보라. '돈'에 대한 심리와 제도를 꿰뚫어 보는 부자들이 인간의 삶과 죽음을 갖고 논다는 점에서 <도박사, 마부제 박사>와 맥을 같이 하지 않나. 등장 시점도 '빈부격차가 심화된 인플레이션 시대의 진입기'라는 점에서 유사점을 찾을 수 있다. 시즌1이 '게임 참여자 중심'인데 반해 시즌2에서는 '게임 주최자'에 대한 얘기가 나올 것으로 기대된다. '사람 목숨을 갖고 노는' <오징어 게임>의 주최자는 누구일까? 마부제 박사와 닮은꼴일까, 다른 꼴일까? <오징어 게임> 시즌2를 상상하며 <도박사, 마부제 박사>를 감상해 보기 바란다. 흥미진진한 비교점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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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광 이코노텔링 대기자❙한양대 미래인재교육원 겸임교수❙전 한양대 공공정책대학원 특임교수❙사회학(고려대)ㆍ행정학(경희대)박사❙경기연구원 선임연구위원, 뉴욕주립대 초빙연구위원, 젊은영화비평집단 고문, 중앙일보 기자 역임❙단편소설 '나카마'로 제36회(2013년) 한국소설가협회 신인문학상 수상❙저서 『영화로 쓰는 세계경제사』, 『영화로 쓰는 20세기 세계경제사』, 『식민과 제국의 길』, 『과잉생산, 불황, 그리고 거버넌스』 등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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