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7-02 02:35 (수)
영화로 쓰는 세계 경제위기사(13) 마부제박사⑬전쟁과 신흥졸부
영화로 쓰는 세계 경제위기사(13) 마부제박사⑬전쟁과 신흥졸부
  • 이코노텔링 이재광 대기자
  • jkrepo@naver.com
  • 승인 2021.11.01 09: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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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가 어려운 상황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돈을 쫓는 탐욕 그려
감독의 의도와 달리 독재자 히틀러를 '정치적 신흥졸부' 유사성 암시해

<Dr. Mabuse, Der Spieler>라는 독일 영화의 독일어 제목이 영어 <Dr. Mabuse, the Gambler>로, 그리고 우리말 <도박사, 마부제 박사>로 전환된 것에는 아쉬움이 남는다. 독일어'Spieler'에는 분명 '도박사'라는 의미도 있고 실제로 영화 속 마부제 박사는 도박사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게 다가 아니다. 독일어 'Spieler'에는 그 이상의 의미가 담겨 있다. 영화 속 마부제 박사도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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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부제 박사가 갖는 제일의 특성은 '변신(變身)'이다. 감독은 영화 첫 번째 씬에서부터 그 사실을 알려준다. 그는 사무실 책상 위 수 십장의 사진이 담겨 있는 작은 상자 안에서 사진 여러 장을 꺼낸다.

그리고 뽑은 사진을 카드처럼 섞어 다시 한 장을 뽑는다. 그리고 그 사진을 비서에게 건넨다. 그러자 비서가 익숙한 듯 분장 도구를 가져와 마부제 박사를 사진 속 인물로 바꿔 놓는다. 그는 어느새 사진 속 인물 A가 된다. 여러 사진 속 인물은 낯설다. 하지만 영화를 보며 우리는 곧 그들에게 익숙해 진다. 모두 마부제 박사가 변신하는 인물들인 것이다.

'도박사, 마부제 박사'의 첫 번째 씬. 랑 감독은 시작부터 마부제 박사가 ‘변신의 귀재’임을 알려준다.
'도박사, 마부제 박사'의 첫 번째 신. 랑 감독은 시작부터 마부제 박사가 '변신의 귀재'임을 알려준다.

A로 변신한 마부제 박사는 부하들이 훔쳐 온 비밀 계약서를 손에 넣는다. 그리고 B로 변신한다. 가난한 중년 남성인 B는 위조지폐범. 그는 위조지폐 공장에서 돈을 빼 증권거래소로 향한다. 거래소에서의 그는 이미 펠트 탑 모자를 쓴 부유한 신사로 변해 있다.

그때 장내에 충격적인 방송이 들려온다. "네덜란드 특사가 강도를 당해 네덜란드와 스위스 간 중요한 내용을 담은 계약서를 분실했으며 그 결과 몇몇 기업이 손해를 볼 것"이라는 내용이다.

그러자 네덜란드 관련 기업인 H사 주가가 폭락한다. 813마르크에서 30분 사이 175마르크까지 떨어진다. 그러자 마부제 박사가 기다렸다는 듯 이 주식을 매입한다. 곧 이어 계약서를 찾았다는 방송이 시작한다. 주가는 다시 원상으로 돌아간다. 그 사이 마부제 박사는 4.5배의 수익을 챙긴다.

그의 변신과 범죄는 여기서 끝이 아니다. 다음 대상은 백만장자 기업인의 아들 헐(Hull). 마부제 박사는 한 사교클럽에서 만난 그에게 최면을 걸어 돈을 잃게 만든다. 이 무렵 그를 좇는 인물이 등장한다. 검사 폰 벵크(Von Wenk)다. 헐은 자신이 마부제 박사에게 속았다며 검사를 돕는다. 신변의 위협을 느낀 마부제 박사는 헐의 연인 카로자에게 최면을 건다. 그리고 그가 헐을 불법 도박장으로 데려오게 만든다. 하지만 마부제 박사의 계획은 실패로 끝난다. 폰 벵크 검사가 마부제 박사의 범죄를 눈치 채고 불법 도박장을 급습한 것이다. 그러나 마바제 박사는 도망가고 카로자만 체포된다.

■ 마부제는 혼란기 신흥졸부 상징

1부만 해도 영화의 스토리는 길고 복잡하다. 하지만 이 정도에서 그치지 않는다. 여기까지의 이야기로도 1부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1부 막바지에는 마부제 박사와 톨트(Told) 백작의 부인 이야기가 등장한다. 톨트 백작 부인의 미모에 반한 마부제 박사는 백작에게 최면을 걸어 포커를 치게 만든 뒤 부인을 유괴한다.

이들이 제2부 '지옥: 우리 시대 사람들을 위한 게임'의 주역들이다. 2부에서는 톨트 백작 부부를 둘러싸고 마부제 박사와 폰 벵크 검사가 최후의 일전을 치르기 위해 내달음 친다. 이야기는 빠르게 전개된다. 여러 사건들이 폭죽처럼 연쇄적으로 폭발한다. 그리고 영화가 대미를 장식한다.

이 영화에 관객이 얼마나 들었는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개봉 시점부터 평론계와 대중의 관심을 끌었던 게 있다. 이 주제는 이후에도 오랜 동안 평론가들의 관심을 모았다. '마부제 박사는 과연 누구를 상징하는가'이다. 의견도 다양하다. 누군가는 히틀러를, 누군가는 니체의 '초인'을 의미한다고 했다. 또 누군가는 1920년대 독일 혼란기를 살아가던 다양한 인간 군상의 집합체로 여겼다. 나아가 마부제 박사는 '인물'이 아닌 '돈' 그 자체를 의미한다는 해석도 있다. 하지만 랑 감독은 이 모든 얘기를 부정한다. 1968년 인터뷰를 들어 보자.

"당시 참담한 빈곤과 함께 거대한 새로운 부(富)가 있었습니다. 베를린에서는 '라프케(Raffeke)'란 신조어까지 만들어졌지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자신이 가질 수 있는 최대한의 돈을 소유한 사람, 즉 신흥 졸부를 이르는 말이었습니다. 마부제 박사는 이들을 대변하는 원형(protype)이었습니다. 그는 도박사였고 카드와 룰렛을 플레이(play) 했지요. 또한 그는 주변 사람들의 삶과 죽음을 갖고 놀기(play)도 했습니다."

'도박사, 마부제 박사'의 영화 속 신흥졸부
'도박사, 마부제 박사' 영화 속 신흥졸부

결국 마부제 박사를 통해 랑 감독이 그리고 싶었던 대상은 '라프케' 즉 제1차 세계대전 종전 후 돈을 번 신흥부자였다. 모두가 어려웠던 상황에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돈을 번 졸부들이었다. 그의 말을 통해 우리가 알게 되는 또 다른 것은, 당시 돈을 번 신흥졸부들에게 사기와 범죄는 당연했다는 사실이다.

그렇다면 히틀러나 니체의 초인 등과는 관계가 없었던 것일까? 그는 인터뷰에서 이에 대해서도 얘기한다.

"일부 사람은 제가 마부제 박사를 독재자의 원형으로 고안했다거나 우회적으로 히틀러의 등장을 예언했다고 했지요. 마부제 박사가 부정적인 의미에서 니체가 말하는 초인의 캐릭터로 만들었다고 하는데요, 모두 그렇지 않습니다. 사실이 아닙니다."

랑 감독의 의도는 오직 '마부제=라프케'였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영화계에서는 마부제 박사와 히틀러의 유사성이 지속적으로 거론됐다. 둘에게는 그만큼 유사성이 있다는 사실을 부인하기 어려울 것이다. 그래서였을까. 랑 감독은 <도박사, 마부제 박사>의 속편으로 1932년 개봉한 <마부제 박사의 유언>에서 둘 관계를 아예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영화 자체가 히틀러에 대한 우화"라는 얘기도 했다. 20세기 초ㆍ중반 활동했던 독일의 사회학자이자 영화이론가인 지그프리트 크라카우어(Siegfried Kracauer)는 자신의 책 『칼리가리에서 히틀러까지』에서 1943년 랑 감독이 자신의 영화를 직접 소개한 글을 다음처럼 인용하고 있다.

"이 영화는 히틀러의 테러 과정을 보여주기 위한 우화로 만들어졌다. 영화에서는 제3제국의 구호와 교리가 범죄자들의 입을 통해 나온다. 그래서 나는, 나치의 가면 안에 숨어 있는, 우리의 소중한 것들을 교묘하게 파괴하려는 교리를 폭로하고 싶었다."

결국 랑 감독 자신도, 첫 영화에서는 전혀 의도하지 않았지만, 마부제 박사와 독재자 히틀러와 유사성을 인정한 셈이다. 이를 통해 본다면, 어쩌면, 제1차 세계대전 직후 독일의 혼란 속에서 태어난 '경제적 신흥졸부'들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는 점에서, '정치적 신흥졸부'와 같은 것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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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광 이코노텔링 대기자❙한양대 미래인재교육원 겸임교수❙전 한양대 공공정책대학원 특임교수❙사회학(고려대)ㆍ행정학(경희대)박사❙경기연구원 선임연구위원, 뉴욕주립대 초빙연구위원, 젊은영화비평집단 고문, 중앙일보 기자 역임❙단편소설 '나카마'로 제36회(2013년) 한국소설가협회 신인문학상 수상❙저서 『영화로 쓰는 세계경제사』, 『영화로 쓰는 20세기 세계경제사』, 『식민과 제국의 길』, 『과잉생산, 불황, 그리고 거버넌스』 등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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