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26 19:50 (금)
영화로 쓰는 세계 경제위기사(13) 마부제박사⑫감독 프리츠 랑의 극적 인생
영화로 쓰는 세계 경제위기사(13) 마부제박사⑫감독 프리츠 랑의 극적 인생
  • 이코노텔링 이재광 대기자
  • jkrepo@naver.com
  • 승인 2021.10.27 09: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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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학도ㆍ화가 거쳐 전쟁 참여해 부상입고 병원치료 신세
한쪽 눈 영구 실명한 후 베를린서 당대 최고의 감독과 만나
시나리오 두 세편 쓴 뒤 감독 찬스 … 1922년 '마부제' 탄생
독일이 낼 지나친 전쟁 배상금의 '삶의 근원' 파괴 과정 고발

건축학도, 화가, 만화가, 전쟁, 입대, 부상, 한쪽 눈 영구 실명, 병원치료, 영화ㆍ연극클럽 참여, 시나리오 작가 데뷔, 감독 데뷔. 20대를 이렇게 극적으로 살았던 사람이 또 있을까. <도박사, 마부제 박사>의 감독 프리츠 랑이 그랬다. 그러나 그가 겪었던 20대의 이 극적 경험은 그를 영화계 거장으로 만든, 무엇보다 중요한 밑거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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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9년. 전쟁도 끝났고 몸도 어느 정도 완쾌됐다. 한 쪽 눈을 잃은 것이야 어쩔 수 없었다. 그래도 나머지 한 쪽 눈과 사지가 멀쩡하니 다행이었다.

병원에서 나온 그는 베를린으로 간다. 그곳에는 제작자 에리히 포머(Erich Pommer)가 있었다. 그리고 그곳에서 '당대 최고' 소리를 듣던 조 메이(Joe May) 감독도 만난다. 그리고 그와 일하게 된다. 그의 밑에서 시나리오를 쓰며 본격적으로 작가로서의 삶을 살게 된다. 하지만 오래 못 간다. 시리즈물 두 세 편의 시나리오를 쓴 뒤 다른 일을 하게 된다. 그에게 감독으로서의 첫 영화를 만들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주어졌던 것이다.

영화 <도박사, 마부제 박사>의 감독 프리츠 랑은 1919년 시나리오 작가로 데뷔한 뒤 수 개 월 만에 감독으로 데뷔하는 행운을 잡는다. 그의 나이 스물아홉이었다. 그러나 그의 '행운'은, 일단은, 거기까지였다. 그의 첫 감독 데뷔작은 <혼혈인(Das Halbblut)>. 멕시코 산타페에서 유럽으로 건너 온 혼혈 여성 후아니타(Juanitta)의 사랑과 복수를 그린 영화다. 하지만 실패. 그저 그런 범작(凡作)으로 끝나고 만다. 몇 달 뒤 헝가리 귀족의 사랑을 그린 두 번째 영화 <사랑의 주인(Der Herr der Liebe)>도 실패. 상업적으로도 성공하지 못했고 작품성 측면에서도 좋은 평가를 받지 못했다.

그러나 세 번째 영화만큼은 달랐다. 1919년 10월, <사랑의 주인>이 개봉된 지 한 달 만에 선을 보인 <거미: 황금연못(Die Spinnen: Der goldene See)>은 상업적으로 성공했고 평가도 좋았다. 미국 샌프란시스코의 유명 스포츠맨이자 모험가이자 여행가인 케이 후그(Kay Hoog)가 잉카의 보물을 찾아 나선다는 이야기는 이후 '모험 영화'의 전형(典刑)을 창출해 낸다. 스티븐 스필버그(Steven Spielberg)의 대 히트작 <인디애나 존스(Indiana Jones)> 시리즈물의 '원조'이기도 하다. 이후 그는 푸치니의 오페라 <나비부인(Madam Butterfly)>을 영화 버전으로 만든 <하라키리(Harakiri)>, <거미: 황금연못>의 후속편 <거미: 다이아몬드 배(Die Spinnen: Das Brillantenschiff)>, 그리고 죽음을 주제로 한 또 하나의 표현주의 걸작 <운명(Der müde Tod)> 등을 발표하며 명성을 쌓아간다.

1919년 개봉된 랑 감독의 세 번째 작품이자 첫 성공작 거미' 황금연못'.
1919년 개봉된 랑 감독의 세 번째 작품이자 첫 성공작 거미 '황금연못'.

그리고 1922년 4월 드디어 그는 이번 시리즈에서 우리가 다루는 <도박사, 마부제 박사>를 대중에게 선뵌다. 1922년 4월과 5월 한 달 사이 개봉된 영화는 1부와 2부 두 편으로 제작됐다. 1부 <위대한 도박사: 우리 시대의 초상(Der große Spieler=Ein Bild der Zeit)과 2부 <지옥: 우리 시대 사람들의 게임(Inferno: Ein Spiel von Menschen unserer Zeit)이 그것이다. 영화는 그 동안 그가 쓰고 만들었던 10편 가까운 영화들의 집대성이었다. 모험, 범죄, 스릴러, 표현주의. 영화에 입문한 뒤 그가 추구했던 모든 것이 이 영화 한 편에 녹아 있었다. 이전 영화는 그저 이 영화를 위한 토대였다 말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 법도 생명도 마부제의 손 안에?

영화에 대한 반응은 뜨거웠다. 상업적으로 성공했을 뿐 아니라 영화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할 정도로 평도 좋았다. '위대한 감독의 탄생 축가'가 된 이 영화로 이제 그는 '거장'의 반열에 올라선다. 그는 이후에도 이 영화에 대한 애정을 감추지 않았다. 수 십 년이 지난 뒤에도 두 편의 후속 작을 내놨다. 10년이 지난 1933에 유성 영화 시대를 반영한 첫 번째 후속 작 <마부제 박사의 유언(Das Testament des Dr. Mabuse)을, 약 40년이 지난 1960년에는 그동안의 발전된 영화 기술을 종합해 두 번째이자 마지막 후속 작 <마부제 박사의 1000개의 눈(Die 1000 Augen des Dr. Mabuse)>을 내놨다. 나이 70에 만든 <~1000개의 눈>은 그의 마지막 작품이기도 하다.

<도박사, 마부제 박사>. 이 영화, 제대로 알려면 제목부터 짚고 나가야 한다. 대부분의 영화에서 제목은 '모든 것'이라 할 만하다. 제대로 알면 재미와 이해가 배가(倍加)되는 경우가 많다. 이 영화 또한 그렇다. 찬찬히 훑어볼 필요가 있다. 제목의 독일어 원제는 <Dr. Mabuse, Der Spieler>이다. 'Dr. Mabuse'는 번역 상 문제될 게 없다. '마부제'는 주인공의 이름이고 그를 박사라 여기면 된다. 하지만 'Der Spieler'는 번역 상 문제의 소지가 다분하다. 미국에서는 이를 'gambler'로 번역했다. 우리말로는 '도박사'다. 그러니 틀린 것은 아니다. 그리고 실제로 영화 속 마부제 박사가 도박사이기도 하다. 영화 내용과도 다르지 않다.

그러나 그게 다는 아니다. 'Der Spieler'에는 다른 의미도 있다. 우선 독일어 'Spieler'의 영어 뜻을 보자. ➀선수(player), ➁배우(actor), ➂도박사(gambler) 등 세 가지다. 또 독일어 'Spieler'는 그대로 영어로도 쓰인다. 이때는 ➀달변(達辯)ㆍ떠버리(A glib or voluble speaker), ➁도박사ㆍ사기꾼(A gambler or swindler)의 뜻이다. 의미로만 따진다면 독일어 'Spieler'는 영어 'player'와 더 맞는 것 같다. 영어 'player'에도 독일어 'Spieler'처럼 ➀선수, ➁악기 연주자 ➂배우(actor/actress) 등의 뜻이 있기 때문이다. 또한 영어 'player'는 카드 게임에 참여하는 '선수'일 수도 있으며 이때는 '도박사(gambler)'와 같은 의미로 쓰이기도 한다. 하나 더. 영어 'player'에는 '배우'라는 뜻에서 파생된 '역할 수행자'라는 뜻도 있다.

'마부제 박사'시리즈 마지막 작품인 '마부제 박사의 1000개의 눈'은 나이 70에 만든 랑 감독의 마지막 작품이기도 하다.
'마부제 박사'시리즈 마지막 작품인 '마부제 박사의 1000개의 눈'은 나이 70에 만든 랑 감독의 마지막 작품이기도 하다.

독일어 'Spieler'와 영어 'Spieler', 그리고 영어 'Player'를 이렇게 장황하게 설명하는 데에는 이유가 있다. 이 세 단어의 뜻 대부분이 영화 제목 'Der Spieler'에 담겨 있으며 이는 또한 '마부제 박사'의 캐릭터이기도 하다는 것이다. 숙달된 변장을 통해 여러 인물이 되어 범죄 행위를 펼치는 마부제 박사는 제목 그대로 'Spieler'로서, 특정 게임의 선수이자 참여자이고 어떤 역할도 맡아 하는 배우 겸 특정 역할 수행자이고 도박을 일삼는 도박사요 달변의 사기꾼인 것이다. 이 모든 듯이 영화의 제목 <Dr. Mabuse, Der Spieler>에 함축돼 있다. 독일어 'Spieler'와 영어 'Player'의 뜻을 의미 있게 쓴 글이 있다. 미국의 최대 전자상거래 기업 아마존의 영화 담당 편집자 리처드 J. 제임슨(Richard T. Jameson)의 리뷰다.

"독일어로 된 이 영화의 제목은 <Doktor Mabuse, der Spieler>다. 그리고 우리의 슈퍼 악당은 도박사(그의 게임 확률은 사전에 이미 다 조작된 것이다)라기보다는 연기자(player)다. 그는 중첩된 역할을 연기(playing)한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그가 다른 사람들의 생명을, 그리고 당대 현실의 구조를 갖고 논다(playing)는 것이다."

"The film's title in German is <Doktor Mabuse, der Spieler>, and our supervillain is really less a gambler(all his games of chance are rigged) than a player: playing multiple roles, but even more importantly, playing with others' lives, playing with the very fabric of modern reality."

말장난 같은 리뷰다. 그러나 우리는, 영화 제목과 관련된 이 리뷰에서 핵심을 찾아야 한다. '당대 현실의 구조'와 '다른 사람들의 생명'을 '갖고 논다'는 것이다. '당대'란 어느 곳의 언제인가?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난 직후 독일이다. 이때의 '현실'이란 무엇인가? 패전의 굴욕과 국가적 자존심의 손상, 현실에서 맞닥뜨려야 하는 과중한 배상금, 무엇보다 삶을 근원적으로 파괴하는 엄청난 인플레이션. 마부제 박사는 이 현실의 '구조'를, 갖고 놀 정도로 너무나 잘 파악하고 있으며, 이를 활용해 다른 사람들의 생명마저 좌지우지한다는 것이다. 영화의 핵심을 찌르는 비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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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광 이코노텔링 대기자❙한양대 미래인재교육원 겸임교수❙전 한양대 공공정책대학원 특임교수❙사회학(고려대)ㆍ행정학(경희대)박사❙경기연구원 선임연구위원, 뉴욕주립대 초빙연구위원, 젊은영화비평집단 고문, 중앙일보 기자 역임❙단편소설 '나카마'로 제36회(2013년) 한국소설가협회 신인문학상 수상❙저서 『영화로 쓰는 세계경제사』, 『영화로 쓰는 20세기 세계경제사』, 『식민과 제국의 길』, 『과잉생산, 불황, 그리고 거버넌스』 등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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