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을 만든 사람들⑬ 말콤엑스와 할렘
뉴욕을 만든 사람들⑬ 말콤엑스와 할렘
  • 뉴욕= 곽용석 이코노텔링 기자
  • 승인 2019.05.16 18:3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400년간 백인의 고급 주택가였던 할렘은 대공황때 값 대폭 내린 임대주택에 흑인들 몰려 들어
이슬람 흑인 자주운동 주도했다가 암살 당한 말콤엑스는 지금도 뉴욕 할렘의 거리명에 살아 남아

 뉴욕의 할렘은 흑인들의 동네다. 그러나 19세기 초반까지만해도 이탈리아 유대인과 독일 유대인들이 살았던 부유한 전원주택단지였다. 그 당시 흑인은 찾아 보기 어려운 고급 동네였다. 특히 할렘 중에서 가운데 위치한 슈거 힐(sugar hill)은 최고 고급주택인 브라운하우스가 자리잡고 있다. 지금도 그 화려한 자태를 뽐내고 있다. 뉴욕시가 역사 보전 주택으로 지정할 정도의 랜드마크 건물들이 곳곳에 있다. '슈거'라는 의미가 '돈'이라는 뜻이다. 돈이 많은 언덕일 정도로 거부들이 살았던 점을 반증한다.

1964년도 말콤 엑스의 모습. 그는 원래 변호사가 꿈이라고 선생님에게 이야기했다가'흑인 주제에'라는  모멸을 받고 학교를 그만둔다. 이후 이슬람에 심취했고 흑인의 차별과 싸우는 사회 운동가로 활동한다.  ⓒ미의회 보관
1964년도 말콤 엑스의 모습. 그는 원래 변호사가 꿈이라고 선생님에게 이야기했다가'흑인 주제에'라는 모멸을 받고 학교를 그만둔다. 이후 이슬람에 심취했고 흑인의 차별과 싸우는 사회 운동가로 활동한다. ⓒ미의회 보관

더 거슬러 올라가서 1600년대 중반에는 더욱 그랬다. 네델란드인들이 맨해튼을 장악하면서 백인들의 정착촌으로 조성됐다. 네델란드 총독은 당시 숲, 계곡과 늪지대였던 이 곳에 개간사업을 벌인다. 맨해튼 북쪽지역이기에 위로부터 인디언들의 공격에 대비한 방어진지도 구축할 겸 사람들을 이주시켜 농사도 짓게 한 것이다.

인디언이 살지 않았기 때문에 처음부터 백인 마을인 것이다. 마을 이름도 처음엔 뉴 할렘이라 불렀다. 네델란드인들이 이 곳 이름을 네델란드에 있는 할렘이라는 지역명을 고스란히 옮겨 놓았다. 정확히 네델란드 암스테르담에서 10마일(약 16km) 떨어진 곳에 할렘이 있듯이 정확이 맨해튼 맨 끝 남부 항구인 뉴암스테르담에서 10마일 떨어진 이 곳에 뉴할렘이라는 이름을 붙여 놓은 것이다. 뉴암스트레담, 뉴할렘, 뉴욕 등 '뉴'가 당시에는 도시이름을 짓는데 유행처럼 번졌던 것이다.

최소한 1910년대까지 이 지역은 줄곧 백인거주 마을이었다. 유럽인들이 뉴욕지역에 들어온 기간동안 약 400년중 근 300년을 백인들이 살았던 셈이다.

1900년 까지만해도 뉴욕시의 흑인 인구는 전체 중 2% 남짓였다. 할렘은 거의 100%에 가까운 백인 마을였다. 그것도 일반 백인들이 선망의 대상인 고급 동네였다. 그랬던 할렘이 최근 100년사이에 흑인 마을로 변해버렸다.

백인마을이 흑인 마을로 왜 변해버린 것일까. 지하철 개통에 따른 부동산 개발 붐과 경기불황이 ‘할렘의 생태계’를 송두리째 바꿔 버렸다.

뉴욕시는 1900년도에 맨해튼 동북부와 할렘지역을 잇는 지하철 개발계획을 발표한다. 이에 뒤질세라 부동산개발업체들이 너도나도 이 지역에 임대아파트를 우후죽순으로 건설하기 시작한다. 그것도 고급동네에 걸맞게 호화스런 럭셔리 임대주택으로 짓기 시작했다. 세상은 한치 앞도 내다보기 어렵다. 지하철 개통과 함께 불어닥친 경기불황으로 고급임대아파트 분양은 얼어붙었다. 번지르르한 호화임대아파트는 텅텅 비었다. 분양개발업자들은 울며겨자먹기로 값싸게라도 임대아파트는 세를 놓기 시작한다. 일반 시세였다면 말도 안되는 가격에 임대를 놓았다. 그러자 돈없는 흑인들이 들어오기 시작한 것이다. 이 것이 오늘날 흑인동네란 이미지를 띠기 시작한 단초다. 방 하나 둘 씩에 세들어온 흑인들이 점차 늘어나자 기존에 거주했던 백인들은 뿔뿔이 다른 곳으로 빠져나갔다.

여기에 가세한 바람이 1차세계대전이다. 전쟁 와중에 유럽의 흩어져 갈 곳 없던 흑인들이 신세계인 이 곳 뉴욕으로 들어오면서 흑인 행렬이 줄을 잇기 시작했다. 불과 20여년만에 백인마을에서 흑인 마을로 완전히 변해버린 것이다.

지금 할렘의 정중앙을 남북으로 관통하는 거리인 애비뉴 몇 개가 있다. 300년을 살았던 백인들의 이름을 딴 거리명은 없다. 그러나 할렘의 대부분 거리 이름은 흑인 유명인사들로 명명되어 있다.

맨해튼 중남부지역은 그저 1번 애비뉴 2번 애비뉴 이렇게 부르지만, 이 곳 할렘지역은 말콤엑스 애비뉴, 애덤 클레이턴 파월 애비뉴, 프레드릭 더글러스 애비뉴 그리고 가장 번화가인 할렘의 브로드웨이 격인 125번 스트리트는 마틴 루터 킹 주니어 대로, 이렇게 부르고 있다.

할렘 거리명에 오른 말콤 엑스의 인생을 한 번 돌아 보고 싶다. 그의 인생은 마틴 루터 킹 처럼 극적이다. 아버지는 어릴적 사망하고 어머니는 정신병원 생활로 그는 쉽지않은 인생을 시작한다. 잠깐 학교에 다니기도 했다. 중학교때 장래희망이 뭐냐는 질문에 '변호사'라고 이야기 했다가 선생님으로부터 멸시 당한다 '흑인 주제에 변호사?'라는 말에 충격을 받고 학교를 그만둔다. 이후 그가 할수 있는 일은 마약거래, 강도, 절도 및 사창가 호객군으로 전전했고 레스토랑 웨이터는 오히려 고상한 직업일 정도였다. 감옥을 몇차례 드나들면서 그 곳에서 이슬람에 대한 관심을 갖는다. 출옥후 아프리카와 이슬람국가를 방문 후 본격적인 이슬람 흑인 운동가로 활동한다. '검은 것이 아름답다'라는 거창한 말로 캐시어스 클레이(무하마드 알리)와 함께 흑인 저항운동을 본격화한다.

달변가인 그는 성격도 뜨거웠고 뾰쪽했다. 흑인은 저주받은 인간이다. 제아무리 백인들의 평화와 자유 그리고 인종차별 철폐라는 구호는 한낮 사탕 발림이라고 외쳤다. 미국남부의 노예시절보다 못한 가혹한 할렘가 흑인의 현실은 어차피 피할수 없는 운명이라고 외롭게 외쳤다.

백인과의 차별은 엄연한 사실이고 그들과 절대로 하나가 될 수 없다고 믿었다. 칼날 같았다. 현실은 척박했지만 그래도 희망을 가져야 했다. 그는 너무 비관적인 기운이 셌다. 39세에 암살당한다. 짧은 인생을 하루하루가 치열하게 살았다. 흑인의 가혹하고 비관적인 현실을 너무 강조한 예언자였다. 그래도 희망을 품고 살아갔던 마틴 루터 킹도 결국은 비슷한 나이에 총탄에 쓰러졌지만, 하루를 살아도 긍정속에서 몸무림치는 모습이 후세들에게 남겨졌었다면 하는 마음으로 그의 거리를 거닐어 본다.

할렘 한복판 말콤 애비뉴 거리는 다시금 개발붐으로 건물과 콘도 가격이 하루가 다르게 치솟고 있다. 1950년대 할렘에는 98%가 흑인였다. 최근에는 60%대로 현격하게 줄어가고 있다. 언제 다시 이 할렘이 백인이나 동양인 마을로 변할지도 모른다. 아마 50년후엔 할렘의 번화가 거리이름도 동양인이나 백인이름으로 바뀔지도 모른다. 세월은 그렇게 흘러가고 역사는 그렇게 꿈틀거리며 소리없이 변화해 간다. 그 변화의 기폭제는 예나 지금이나 부동산개발이다. 흑인이 들어오게 된 것도 그것이고 지금 흑인이 내몰리는 것도 그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