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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점 연재] 김학렬 일대기(84) 청와대서 '부총리 역할'
[독점 연재] 김학렬 일대기(84) 청와대서 '부총리 역할'
  • 김정수 전 중앙일보 경제 대기자
  • econopal@hotmail.com
  • 승인 2022.02.22 09: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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朴대통령 국가 경영에 자신감 갖자 주요 정책 진행 보고하는 '경제수석실' 득세
기획원 관료의 불만 무릅쓰고 박충훈 부총리, 기획원의 '총괄 조정권' 내려 놓아
쓰루는 부처별 예산 관료들까지 청와대로 불러 직접 작업을 지시했으나 모른척
기획원의 위상하락 걱정하는 옛 부하들에겐 "내가 곧 (부총리로)간다" 기세등등
김학렬 부총리의 22년 관료 생활의 여정은 오로지 '5천년 가난'에 경제성장의 씨앗을 뿌리는 역정이었다. 평소 김 부총리는 주변의 권유에도 불구하고 기록 하기를 꺼려한 까닭에 그의 육필 자료는 거의 없다. 칠순이 된 그의 장남 김정수 경제 대기자는 지난 수년간 그의 발자취를 더듬고 국가기록원 등 정부 자료집과 한국개발연구원(KDI)이 보관중인 사진 등을 뒤져 그의 일대기를 정리했다.
김학렬 부총리의 22년 관료 생활의 여정은 오로지 '5천년 가난'에 경제성장의 씨앗을 뿌리는 역정이었다. 평소 김 부총리는 주변의 권유에도 불구하고 기록 하기를 꺼려한 까닭에 그의 육필 자료는 거의 없다. 칠순이 된 그의 장남 김정수 경제 대기자는 지난 수년간 그의 발자취를 더듬고 국가기록원 등 정부 자료집과 한국개발연구원(KDI)이 보관중인 사진 등을 뒤져 그의 일대기를 정리했다.

청와대 수석 자리는 쓰루에게 사실상 첫 보좌역이었다. 하위직에 있을 때도 관료로서는 뭔가 자신의 이름으로 결정하는 자리에만 있어온 그였다. 정무(경제)수석이 된 그는 수석의 역할과 그 한계를 스스로 만들어갔다.

청와대에 들어가기 전의 그는 기획원이라는 상하조직 속에서 경제정책을 상의하달식으로 밀어붙이는 것에 익숙해 있었다. 청와대에 들어가 박통 옆에서 주요 국가과제가 어떻게 구체적인 정책으로 추진되는지를 지켜보면서 그는 정책 결정 메커니즘의 핵심적 요소를 파악하게 되었다. 즉, 주요 국가과제가 어떻게 (대통령 등에 의해) 발상되고, 이를 위한 정책이 어떤 과정을 거쳐 다양한 주체들 간에 조정되고 수립되며, 그 집행 과정을 어떻게 감독 내지 통제해야 하는지 등을 일상적으로 관찰하며 머리와 몸으로 배우게 된 것이다.

물론 그가 가장 관심을 두었던 것은 박통이라는 최고 통치자의 역할이었다. 통치권의 성공적이고 순탄한 행사를 위해 경제수석실이 어떤 역할을 해내야 하는지를 파악하기 위해서였다. 그가 수석으로 청와대에 들어갔을 때는 마침 박통이 국가 경영에 자신감을 갖고 주요 국가과제를 직접 발상하고 그 관련 정책 수행을 직접 챙기려 할 때였다. 경제부처에서 수행하고 있는 주요 정책의 진행 상황을 정리하여 대통령에게 보고하는 것이 주(主) 임무였던 경제수석실이 바빠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그때까지 쓰루는 40평 남짓한, 골목길 모서리에 자리 잡은 일제강점기에 지어진 집에 살고 있었다. 청와대 수석 자리에 어느 정도 안착하자 그의 부인은 바로 옆의 60평 넘는 한옥을 사들였다. 그리고 1년여 지났을 즈음에 두 집을 헐어 양옥 한 채를 짓기 시작했다. 그 집은 '폭탄이 떨어져도 끄떡없다'고 할 정도로 레미콘 시멘트를 두껍게 부어서 지어 올린 2층 저택이었다. 당시는 1967년 양대 선거를 앞두고 박통이 부패 척결에 날을 세우고 대통령 자신부터 검약을 실천하고 있던 때였다. 그런 정권에서 녹을 먹는 사람이, 그것도 청와대에서 일하는 자가 만인의 비난을 받을 수도 있는 '호화 주택'을 짓는다는 것은 둘 중 하나였다. 정신줄을 놓았거나 아니면 만용을 부렸거나. 그런데도 박통의 코앞에서 그런 일을 벌인다는 것은 아마도 자신의 청렴함과 관료로서의 능력을 박통이 알아주고 있다는 그의 자신감을 반영하는 것이 아니었을까 짐작해볼 수 있다.)

박충훈 부총리 시절 사실상 부총리 역할을 한 것은 쓰루였다. 기획원 일에 대한 그의 간섭과 개입은 지나칠 정도였다. 기획원 관료들을 청와대 수석실로 불러들여 주요 정책 추진을 다그치기 일쑤였고, 자기가 특별히 관심을 두고 있는 경부고속도로, 가족계획 등 주요 정책과제와 관련해 예산 증액 배정과 그 조속한 집행을 독려하곤 했다. 사진은 1980년 박충훈 국무총리 서리가 일부 차관들에게 임명장을 수여하는 모습.<br>
박충훈 부총리 시절 사실상 부총리 역할을 한 것은 쓰루였다. 기획원 일에 대한 그의 간섭과 개입은 지나칠 정도였다. 기획원 관료들을 청와대 수석실로 불러들여 주요 정책 추진을 다그치기 일쑤였고, 자기가 특별히 관심을 두고 있는 경부고속도로, 가족계획 등 주요 정책과제와 관련해 예산 증액 배정과 그 조속한 집행을 독려하곤 했다. 사진은 1980년 박충훈 국무총리 서리(왼쪽)가 일부 차관들에게 임명장을 수여하는 모습.

청와대 안에서 쓰루의 역할에 변화가 일어나는 동안, 청와대 밖에서는 경제기획원과 그 장관의 위상이 달라지고 있었다. 왕초에 이어 부임한 박충훈 부총리는 '기획원은 경제부처 위에 군림하는 부처가 아니다', '경제정책은 순리에 따라 추진되어야 한다'는 소신을 갖고 있었다. 이 때문에 부총리와 경제기획원의 위상이나 경제정책 전반에 대한 영향력은 급격히 감소할 수밖에 없었다. "일부에서는 지금까지도 박충훈 씨를 자기 철학이 없는 부총리였다고 혹평하는 사람들이 있다.(신성순 중앙일보 기자) 

부총리가 되기 전에 상공부 장관이었던 박 부총리는 종합제철소 건설사업을 제외한 석유화학단지 조성 등 중공업 육성 업무를 상공부로 넘겨주었고, 정치자금과 관련한 종래의 4인방 협의체로부터 스스로 물러났다. 또 왕초 부총리 때부터 있던 B미팅(은행장회의)도 폐지하는 등 민간 부문에 대한 정부 개입의 폭도 대폭 줄여갔다. 좋게 보면 부처와 민간 부문의 자율권이 강화된 것이고, 나쁘게 보면 기획원의 총괄 조정권을 스스로 놓아버린 것이라서 기획원 관료들의 불만은 고조되고 있었다. 박 부총리의 '선진적' 조직 운영은 경제정책 결정 권한의 빈 공간을 남겼다. 그 공간은 곧 쓰루의 수석 역할 확대로 채워져갔다.

일부 인사의 관찰로는, 박 부총리 시절 사실상 부총리 역할을 한 것은 쓰루였다. 기획원 일에 대한 그의 간섭과 개입은 지나칠 정도였다. 기획원 관료들을 청와대 수석실로 불러들여 주요 정책 추진을 다그치기 일쑤였고, 자기가 특별히 관심을 두고 있는 경부고속도로, 가족계획 등 주요 정책과제와 관련해 예산 증액 배정과 그 조속한 집행을 독려하곤 했다. 대통령의 신임이 있었기에 (또는 그와 주변 인물들이 그가 대통령의 신임을 받고 있다고 믿고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김학렬 씨는 스케줄까지 짜놓고 오늘은 내무부 예산, 내일은 재무부 예산 하는 식으로 기획원 예산국 관계자들을 청와대로 불러들여 직접 작업을 지시했으며 사무관, 주사까지도 불려 다녔다. 이런 사태에 기획원 관리들이 불평을 터뜨리고 반발했으나, 박 부총리는 '신사답게' 모른 체하고 지냈다."(신성순외 『한국의 경제관료』) 

경제수석실에 대한 박통의 기대는 높아지고, 경제기획원의 정책 총괄 기능은 약화되는 가운데, 쓰루의 경제정책 추진에 대한 의욕은 날로 강해지고 그에 대한 대통령의 신임은 달로 깊어져갔다. 경제수석실의 위상은 한껏 올라갔고, 경제수석의 '권력'은 전무후무하게 강해졌다.

수석 말년에 즈음하여서는 박통의 신임을 확신하게 된 그는, 박 부총리 아래서 기획원의 위상이 떨어지는 것을 걱정하는 옛 부하 관료들에게 "내가 곧 (부총리로) 갈 테니, 기획원 일 잘 챙기고 있어라"는 말까지 서슴지 않게 되었다. (신성순외 『한국의 경제관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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