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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희의 역사갈피] 히틀러는 왜 디카페인 커피를 선택했나
[김성희의 역사갈피] 히틀러는 왜 디카페인 커피를 선택했나
  • 이코노텔링 김성희 객원 편집위원
  • jaejae99@hanmail.net
  • 승인 2021.10.18 09: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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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아리안 인종의 우수성 약화시키는 주범으로 카페인 지목
나치 청소년 조직인 유겐트의 생활 매뉴얼엔 아예 독으로 규정
히틀러는 루트비히 로젤리우스라는 독일의 커피회사 사장이 만든 산카(Sanka·카페인이 없다는 불어식 표현의 준말) 커피에 관심이 있었다/이코노텔링그래픽팀.
히틀러는 루트비히 로젤리우스라는 독일의 커피회사 사장이 만든 산카(Sanka·카페인이 없다는 불어식 표현의 준말) 커피에 관심이 있었다/이코노텔링그래픽팀.

커피가 생각나는 계절이다. 커피의 유해 여부에 관해서는 오래전부터 이런저런 이야기가 많았지만 이번에는 그 논란의 중심인 카페인이 들지 않은 디카페인 커피에 얽힌 일화를 소개할까 한다.

디카페인 커피는 1903년 루트비히 로젤리우스라는 독일의 커피회사 사장이 특허를 냈다. 1902년 커피업을 하던 그의 아버지가 커피 과다 복용으로 사망-로젤리우스의 생각이다-한 것이 개발 동기라지만 실은 우연한 사고가 계기가 됐다.

바닷물에 젖은 커피콩 화물이 들어오자 로젤리우스는 이를 반송하는 대신 한번 볶아보았다. 그러자 짠 맛이 사라지면서 카페인도 함께 사라진 것을 발견하고는 여기에 착안해 디카페인 제법을 연구해 상품화에 성공했다는 이야기다.

그가 만들어 판 산카(Sanka·카페인이 없다는 불어식 표현의 준말) 커피는 마침 일기 시작한 건강 붐에 힘입어 미국에 지사를 낼 정도로 번성했는데 여기에 주목한 것이 히틀러였다. 아리안 인종의 우수성을 지키는 데 몰두했던 나치는 카페인을 독일 민족을 약화시키는 주범의 하나로 꼽았으니 나치 청소년 조직인 유겐트의 생활 매뉴얼에는 카페인을 일종의 '독'으로 규정했을 정도였다.

그런 만큼 히틀러와 그 일당이 독일 기업인이 발명해 독일 기업이 판매하는 디카페인 커피를 환영할 수밖에. 로젤리우스는 나치 치하에서 승승장구해 1936년 뉘른베르크 나치 전당대회에서 유겐트 대원 4만 2,000명에게 초콜릿 드링크를 제공하는 조달 계약을 따내는가 하면 포겔불프라는 비행기 제조사의 지분을 얻기도 했다. 나중에는 반나치로 돌아섰다지만 말이다.

이 이야기는 『남의 나라 흑역사』(위민복 지음, 글항아리)에 실린 것이다. 이 책은 스포츠를 제외한 모든 것에 관심이 있다는 외교관 출신이 썼다. '흑역사'라기보다는 '시시콜콜 유럽' 혹은 '만물박사 유럽'이 적당해 보일 정도로 신기하달까 상식의 틈새를 메우는 에피소드가 풍부하다.

디카페인 커피와 히틀러의 사연을 소개한 글에는 흥미로운 주석이 붙었다. 미군 육군연구소가 전투 등 악조건하에서 집중력을 발휘하려면 하루에 몇 잔의 커피가 필요한지 다양한 상황을 설정해 조사했단다. 그 결과 하루 200밀리그램의 카페인을 적절히 시간대별로 나눠 마시면 된다며 여러 '처방'을 제시했다. 지은이는 이를 해석하기를 아침에 스타벅스 톨 사이즈 한 잔, 점심 먹고 스타벅스 또 한 잔이면 딱 맞는 듯하다면서 서울의 사무직 노동자들은 이미 적당한 양의 카페인을 섭취하고 있다고 풀이했다.

이는 카페인이 필요한 사회라는 뜻이니 어쩌면 우리 사회에서 디카페인 커피의 인기가 시들한 것은 이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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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코노텔링 김성희 객원 편집위원 커리커처.
이코노텔링 김성희 객원 편집위원 커리커처.

고려대학교에서 행정학을 전공하고 한국일보에서 기자생활을 시작했다. 2010년 중앙일보 문화부 기자로 정년퇴직한 후 북 칼럼니스트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2008년엔 고려대학교 언론학부 초빙교수로 강단에 선 이후 2014년까지 7년 간 숙명여자대학교 미디어학부 겸임교수로 미디어 글쓰기를 강의했다. 네이버, 프레시안, 국민은행 인문학사이트, 아시아경제신문, 중앙일보 온라인판 등에 서평, 칼럼을 연재했다. '맛있는 책 읽기' '취재수첩보다 생생한 신문기사 쓰기' '1면으로 보는 근현대사:1884~1945' 등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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