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10-19 21:30 (화)
[김성희의 역사갈피] 유행 1번지 '이화학당'
[김성희의 역사갈피] 유행 1번지 '이화학당'
  • 이코노텔링 김성희 객원 편집위원
  • jaejae99@hanmail.net
  • 승인 2021.09.27 09: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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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제 붉은 목면으로된 교복 '치마저고리' 입히자 기생들까지 흉내
순종황제 인산일 상복 따라 입자『 신여성 』 1926년 6월호서 꼬집어
이화학당은 기숙학교였기 때문에 학생이 들어오면 침모가 새 옷을 지어 입혀야 했다. 10명이 넘게 들어오자 러시아제 붉은 목면으로 치마저고리를 똑같이 만들어 입히는 일이 생겼다. 이러자 사람들이 이화학당 소녀들을 '홍둥이'라고 불렀다. 사진(이화학당),자료=국가보훈처,경기도교육청/이코노텔링그래픽팀.
이화학당은 기숙학교였기 때문에 학생이 들어오면 침모가 새 옷을 지어 입혀야 했다. 10명이 넘게 들어오자 러시아제 붉은 목면으로 치마저고리를 똑같이 만들어 입히는 일이 생겼다. 이러자 사람들이 이화학당 소녀들을 '홍둥이'라고 불렀다. 사진(이화학당),자료=국가보훈처,경기도교육청/이코노텔링그래픽팀.

개화기나 그에 이은 일제강점기 역사는 뜻밖에 재미있다. 언뜻 눈물겹거나 남루한 몸부림이나 치열하지만 고된 독립운동만 있는 듯하지만 그렇지 않다.

역시 사람 사는 세상이었던지라 사회상이며 문화도 흥미롭고, '아, 이때도 그랬던가' 싶은 사실도 알게 되는 덕분이다.

'유행'도 그중 하나다. 1920년대 말부터 이 땅에 유행의 물결이 들이닥쳐 1930년대 들어 본격적으로 위세를 발휘하기 시작했다. 이때나 저때나 유행은 역시 '패션' 중심이니 이를 주도한 것은 개화에 적극적인 여학생들이었다.

1900년대 초 한국 최초의 여성교육기관이었던 이화학당의 '교복'이 그 좋은 예다. 이화학당은 기숙학교였기 때문에 학생이 들어오면 침모가 새 옷을 지어 입혀야 했다. 한데 10명이 넘게 들어오자 러시아제 붉은 목면으로 치마저고리를 똑같이 만들어 입히는 일이 생겼다. 이러자 사람들이 이화학당 소녀들을 '홍둥이'라고 불렀다는데 어쨌든 이들을 본떠 개화 여성들 사이에 치마와 저고리를 같은 색으로 지은 한복을 입는 것이 널리 퍼졌단다.

원래 한복은 치마와 저고리를 다른 색으로 입는 것이 원칙이요 전통이었으니 한복에 새로운 유행을 일으켰던 셈이다.

이렇게 옷이며 머리 모양을 포함한 '여학생 스타일'이 대중적으로 주목을 받자 역시 첨단을 추구하던 기생들이 이를 흉내 내기에 이르렀다. 그러자 『신여성』 창간호에 여학생의 교복과 교표를 지정해야 한다는 글이 실렸다. 기생들이 여학생을 사칭해서 학생들의 명예를 실추시키는 일이 많지만 기생을 벌 주기는 어려우니 아예 교복을 입히고 교표를 달게 해서 구별하도록 하자는 이유에서였다.

그 정도로 여학생들이 유행을 리드하는 파워를 가진 바람에 웃지 못할 일도 벌어졌다.

1926년 5월 5일 순종황제 인산일을 즈음해서 서울은 물론 조선 각지에서 흰옷을 입고 검은 댕기를 드린 여학생들이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곡을 하는 풍경이 빚어졌다. 한일합방 후 16년이 지났으니 대단한 애국심이오, 충(忠)인 듯 보였지만 실상은 아니었다. 『신여성』 1926년 6월호에는 "…깃옷이라는 것이 부모가 돌아가도 성복날이나 입는 것인데 조의만 표하면 되는 국상 때 성복 전날부터 깃옷을 해 입는 것은 유사 이래 처음이다…어떤 여학생은 깃옷을 입고 오색찬란한 파라솔을 들었으니…말세다. 아마도…일부 사람들은 상복도 유행인 줄 알고 이에 뒤떨어질까 봐 그랬던 것 같다"란 글이 실렸다.

문학작품을 통해 근대 우리 민족의 심성을 분석한 『대중적 감수성의 탄생-도박, 백화점, 유행』(강심호 지음, 살림)에 실린 에피소드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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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코노텔링 김성희 객원 편집위원 커리커처.
이코노텔링 김성희 객원 편집위원 커리커처.

고려대학교에서 행정학을 전공하고 한국일보에서 기자생활을 시작했다. 2010년 중앙일보 문화부 기자로 정년퇴직한 후 북 칼럼니스트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2008년엔 고려대학교 언론학부 초빙교수로 강단에 선 이후 2014년까지 7년 간 숙명여자대학교 미디어학부 겸임교수로 미디어 글쓰기를 강의했다. 네이버, 프레시안, 국민은행 인문학사이트, 아시아경제신문, 중앙일보 온라인판 등에 서평, 칼럼을 연재했다. '맛있는 책 읽기' '취재수첩보다 생생한 신문기사 쓰기' '1면으로 보는 근현대사:1884~1945' 등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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