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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장환의 스포츠史說] '침대 축구'는 과학이다
[손장환의 스포츠史說] '침대 축구'는 과학이다
  • 이코노텔링 손장환 편집위원
  • inheri2012@gmail.com
  • 승인 2021.09.08 23:2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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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팀이 쓸 수 있는 전략 중 하나 … 특효약은 '선취골'
중동 5국 '모래바람' 넘을려면 지연축구 대비책 절실
'침대 축구'는 훌륭한 작전 중 하나다. 객관적인 전력에서 뒤지는 언더 독이라면 누구나 생각할 수 있는 지연 작전이다. 수비수들끼리 볼을 돌리거나 수시로 골키퍼에게 백패스를 하는 것과 비슷하다. 사진=대한축구협회/이코노텔링그래픽팀.
'침대 축구'는 훌륭한 작전 중 하나다. 객관적인 전력에서 뒤지는 언더 독이라면 누구나 생각할 수 있는 지연 작전이다. 수비수들끼리 볼을 돌리거나 수시로 골키퍼에게 백패스를 하는 것과 비슷하다. 사진=대한축구협회/이코노텔링그래픽팀.

9월 7일 수원월드컵경기장에서 벌어진 한국과 레바논의 카타르 월드컵 아시아 최종예선 2차전. 이라크와 홈 1차전에서 0-0으로 비긴 한국으로서는 반드시 이겨야 하는 경기였다. 더구나 주축 손흥민이 부상으로 빠지고, 황의조도 컨디션 문제로 선발로 뛰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우려하던 상황이 전반전 내내 펼쳐졌다. 빨리 선취골을 넣어야 하는 한국 선수들이 공격의 강도를 높일 때마다 레바논 선수들은 드러누웠다.

'침대 축구'로 악명이 높은 중동팀 중에서도 레바논은 더 심했다. 특히 골키퍼는 누구와 부딪치지도 않았는데 혼자 어깨를 부여잡고 뒹굴었다. 공격의 템포가 끊긴 한국 선수들의 부아가 치밀 만했다.

하지만 반대로 생각하면 '침대 축구'는 훌륭한 작전 중 하나다. 객관적인 전력에서 뒤지는 언더 독이라면 누구나 생각할 수 있는 지연 작전이다. 수비수들끼리 볼을 돌리거나 수시로 골키퍼에게 백패스를 하는 것과 비슷하다. 격투기나 복싱에서 위기에 몰렸을 때 상대방을 껴안는 클린치가 훌륭한 작전이듯이. 물론 침대 축구가 페어플레이는 아니고, 모양이 좀 빠지는 것도 사실이다.

우리 편에서 볼 때는 분통 터지는 더티 플레이라고 해도 상대방은 결코 나쁜 작전이 아니다. 한국 선수들이 화를 참지 못해 집중력이 떨어지고, 조직력이 무너진다면 레바논의 침대 축구는 성공한 것이다. 전반전이 그랬다.

그런데, 후반전은 어땠나. 후반 14분 권창훈의 선취골이 터진 이후부터 레바논 선수들은 미친 듯이 뛰었다. 전반전과 완전히 다른 양상이었다.

당연하다. 침대 축구는 약팀이 이기거나 비기고 있을 때 쓸 수 있는 작전이다. 지고 있을 때 일부러 쓰러지는 선수는 없다. (0-10으로 지는 걸 막기 위해 그럴 수는 있겠다)

침대 축구를 무너뜨리는 비결은 간단하다. 빨리 선취골을 넣는 것이다. 그러면 침대 축구 하라고 해도 못 한다.

레바논은 A조에서 최약체로 분류된다. 더구나 원정 경기다. 당연히 침대 축구로 나올 것이 예상됐다. 거기에 맞는 작전과 대응책을 갖고 임했어야 한다. 화를 내거나 페이스가 흔들렸다면 그게 잘못된 것이다.

한국은 첫 두 경기에서 1승 1무로 승점 4점을 얻었다. 외견상 크게 나쁘지 않지만 여전히 많은 숙제를 남겼다. 레바논 경기 선취골 상황을 보자. 황희찬이 왼쪽 사이드를 돌파할 때 권창훈과 황의조가 빠르게 문전으로 쇄도해서 골을 넣었다. 여기까지는 좋았다. 그러나 2선 공격수들의 위치가 문제였다. 거의 20m나 떨어져 있었다. 함께 공격에 가담하는 게 아니라 역습에 대비하는 모습이었다. 마치 1998년 프랑스 월드컵 때 네덜란드를 상대하는 한국 대표팀을 보는 것 같았다.

이라크와 홈 경기에서 0-0으로 비기고, 최약체 레바논을 상대로 후반 10분이 넘도록 골을 넣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공격 숫자를 늘려서 상대 수비를 압박하면서 많은 득점 기회를 만들어야 했다. 만일 1선과 2선의 거리를 두는 게 벤투 감독의 의중이었다면 근본적인 의문이 생긴다.

한국이 최종예선에서 상대할 팀들은 5개 팀 모두 중동 팀이다. 남은 8경기 중 5경기가 원정 경기다. 상대가 선취골을 넣으면 '잠그기'에 나설 것은 거의 확실하다. '침대 축구 때문에 미치겠다'라든지 '상대가 침대 축구를 하는 바람에 졌다'는 핑계는 통하지 않는다.

벤투 감독은 어떤 비책이 있을까. 플랜 B나 플랜 C는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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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코노텔링 손장환 편집위원
이코노텔링 손장환 편집위원

연세대 신문방송학과 졸업. 1986년 중앙일보 입사. 사회부-경제부 거쳐 93년 3월부터 체육부 기자 시작. 축구-야구-농구-배구 등 주요 종목 취재를 했으며 93년 미국월드컵 아시아 최종예선, 96년 애틀랜타 올림픽, 98년 프랑스 월드컵, 2000년 시드니 올림픽, 2002년 부산 아시안게임과 한일 월드컵, 2008년 베이징 올림픽 등을 현장 취재했다. 중앙일보 체육부장 시절 '이길용 체육기자상'을 수상했으며Jtbc 초대 문화스포츠부장을 거쳐 2013년 중앙북스 상무로 퇴직했다. 현재 1인 출판사 'LiSa' 대표이며 저서로 부부에세이 '느림보 토끼와 함께 살기'와 소설 '파랑'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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