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28 19:55 (일)
영화로 쓰는 세계경제위기史(12)더 본드⑬ 황태자 암살의 '우연'
영화로 쓰는 세계경제위기史(12)더 본드⑬ 황태자 암살의 '우연'
  • 이코노텔링 이재광 대기자
  • jkrepo@naver.com
  • 승인 2021.07.26 07: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첫 암살시도 모면해 이동경로 바꿨지만 운전기사 착각으로 기존경로 주행
막판에 알아채고 후진하는데 그곳에 암살자 서 있어 황태자 부부 피격당해
타이밍이 전부 (Timing is everything) 라는 말처럼 민족사도 ' 때 '가 중요
연방준비제도 출범과 1차 세계대전,러시아혁명 간에도 '기막힌 우연' 존재

역사를 과학으로 접근하려는 연구자를 곤혹스럽게 만드는 게 있다. 역사 속에서 불거지는 수많은 '우연'의 문제가 그것이다.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작은 '역사 속 우연'이 역사의 흐름을 송두리째 바꿔버리는 일이 심심치 않게 벌어진다. 이를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우연도 필연이다? 그렇게 설명하는 연구자는 없다.

철학자 헤겔은 역사의 사건 배후에 존재하는 역사의 본질, 즉 신의 섭리라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런 식의 접근도 곤란하다. 헤겔은 철학자이지 역사학자는 아니지 않은가? 보통의 역사학자라면 이 '역사의 우연'에 애써 눈을 감는다. 별 게 아니라는 것이다. 그래서 일반인, 아니 전문 역사가라 해도 잘 알지 못하는 '우연의 역사'는 밤하늘 은하수처럼 무수하게 많다.

제1차 세계대전을 촉발시킨 '사라예보 사건'도 그중 하나다. 사실 1914년 6월 28일의 오스트리아 황태자 암살 사건에는 잘 알려지지 않은 여러 '우연'이 끼어 있다. 당일 암살 참여자는 8명. 1차 저격이 실패하면 다음 팀이 2차 저격을, 그마저 실패하면 다음 팀이 3차 저격을 노리는 형식이었다. 1차는 그냥 지나쳤다. 첫 번째 암살팀은 기회를 잡지 못했다. 두 번째 팀은 기회를 잡았지만 실패. 암살자 한 명이 황태자를 향해 제대로 수류탄을 던졌지만 운전수가 급브레이크를 밟는 바람에 황태자 몸이 앞으로 쏠리며 자기도 모르게 수류탄을 손으로 쳐냈던 것이다. 차 뒤 몇몇 대중이 다치기는 했어도 황태자는 무사했다.

■ 사라예보 사건과 우연

우연한 계기로 오스트리아 황태자 저격에 성공한 사라예보 사건
우연한 계기로 오스트리아 황태자 저격에 성공한 사라예보 사건.

당시 황태자 부부는 묵고 있던 호텔에서 나와 시청을 향하던 중이었다. 그곳에서 거행될 예정이었던 환영행사를 끝내고 박물관을 방문하기로 돼 있었다. 하지만 막 수류탄을 맞았던 참이었다.

황태자와 수행원들이 회의를 했다. 일정을 무시하고 호텔로 돌아갈 것인가, 아니면 일정대로 할 것인가. 황태자는 일정을 모두 소화하기를 원했다. 자신의 강인함과 굳은 의지를 대내외에 알리고 싶었던 것이다. 그러자 수행원들은 노선을 바꾸자고 제안했다. 기왕의 노선은 이미 노출됐을 것이므로 위험하다고 판단됐기 때문이다. 모두가 그 말에 동의했다. 길을 바꿔 간다면 위험을 줄일 수 있을 것으로 봤다.

그런데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 벌어졌다. 운전기사가 본래 예정됐던 길로 차를 몰고 가지 않는가. 아뿔싸! '우연하게도' 그에게 노선 변경을 알려준 사람이 아무도 없었던 것이다. 깜짝 놀란 수행원이 차를 돌리라고 지시했다. 이 말에 기사는 차를 멈춘 뒤 후진을 시작했다. 차는 천천히 뒤로 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앞에는 '너무나 우연하게도' 또 다른 암살자가 서 있었다. 그의 눈앞에 그토록 죽이고 싶었던 오스트리아 황태자가 다가오고 있었던 것이다. 그것도 아주 천천히. 그렇게 '우연히' 암살범은 저격을 위한 '최적의 타이밍'을 잡을 수 있었다.

"타이밍이 모든 것(Timing is everything)"이라는 말이 있다. 그만큼 '타이밍' 즉, '때'나 '시기', '시점'이 중요하다는 의미다. 개인사에도 민족사에도 예외는 없다. '우연'은 늘 '때'와 엮인다. '때'와 관련 없는 '우연'이란 있을 수 없다. 또한 이 역사 속 '때'와 '우연'은 인간의 영역을 넘어선다. 이에 대한 해석에 종교성이 강한 이유다. 기독교나 유대교라면 "모든 것에는 때가 있고 하나님께서 그 '때' 안에서 모든 것을 아름답게 지으셨다"는 전도서 3장을 인용할 테고 불교라면 전생(前生)ㆍ현생(現生)ㆍ내생(來生)을 아우르는 '인연법(因緣法)'을 제시할 것이다. 종교의 힘을 빌리지 않는 사람이라면 ,'운 좋게' 또는 '운 나쁘게'라는 말로 모든 것을 설명할 수밖에 없다.

데이비드 핀처 감독의 2009년 작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에서 여주인공 데이지의 교통사고 장면. 핀처 감독은 이 장면에서 절묘하게 일어나는 사건-우연-역사의 내러티브를 보여주고 있다.
데이비드 핀처 감독의 2009년 작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에서 여주인공 데이지의 교통사고 장면. 핀처 감독은 이 장면에서 절묘하게 일어나는 사건-우연-역사의 내러티브를 보여주고 있다.

데이비드 핀처(David Fincher) 감독은 2009년 작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에서 이 '타이밍'이라는 주제를 통해 사건-우연-역사의 내러티브를 기가 막히게 보여준다.

주인공 벤자민 버튼이 교통사고를 당한 연인 데이지(케이트 블란쳇, Cate Blanchett 분)의 병실 앞에 앉아 사고를 회상하는 장면을 보라.

외출하던 한 여자가 '우연히' 외투를 깜빡해 다시 방으로 돌아가고, 그때 '우연히' 전화가 와 전화를 받고, 그녀가 탄 택시는 '우연히' 앞을 가로 막은 차 때문에 시간을 버리고, 때마침 데이지는 집에 가기 위해 연습실을 나서고······. 이 모든 '우연' 중 하나만 없었어도 데이지나 벤자민에게 결정적으로 중요했던 '교통사고'라는 '역사'는 없었을 것이란 얘기다.

■ '우연'에 대한 음모론, 역사철학, 실증사학의 해석은?

필자가 보기에, 이 '역사 속 우연'을 보는 세 가지 시각이 있다. 첫째는 '철저한 무시'다. 앞서 말했듯 '과학으로서의 역사'를 추구하는 역사가, 또는 역사 과학자들의 얘기다. 이들에게는 인과성이 중요하다. 따라서 일상의 무수한 사건 중 일부의 사건을 선택해 인과 관계를 만든다. 이것이 '플롯'과 '스토리'로 꾸며진 '내러티브'다.

이 방식에서 인과성을 설명할 수 없는 '우연'이라는 요소는 끼어들 여지가 별로 없다. 두 번째, 세 번째 방식은 이 '우연'을 누군가의 '고의(故意)'로 해석하는 것이다. 만일 그 주체가 '신(神)'이라면 '헤겔의 역사철학' 또는 '역사신학'으로 불릴 것이요, '인간'이라면 '음모론'으로 불릴 것이다.

연방준비제도(FRS)와 제1차 세계대전, 그리고 러시아혁명 간에도 기막힌 '우연'이 있다. 그리고 이 '우연'은, 당연히, '타이밍' 또는 '때'와 연관돼 있다. 그들은, 처음에는, 아무런 연관 없이 진행되다, 특정 '때'에 이르러 서로에게 영향을 주며 엄청난 폭발성을 과시한다. 우선 사건의 순서를 시간별로 보도록 하자. FRS 설립과정과 제1차 세계대전에 대한 교차 타임 테이블이다. FRS 관련 사안은 '◇'로 전쟁 관련 사안은 '▶'으로, 러시아 혁명은 '◎'로 표기했다. 다음 연표를 보라.

①1913년 12월 연방준비법이 통과됐음을 알리는 신문기사
①1913년 12월 연방준비법이 통과됐음을 알리는 신문기사.

◇1910년 11월 23일 J. P. 모건(John Pierpont Morgan) 주도로 금융인들이 지킬아일랜드에 모여 FRS(연방준비제도) 설립을 위한 비밀회의를 개최하다.◇1913년 3월 31일 J. P. 모건이 사망하다.◇1913년 12월 23일 윌슨 대통령이 연방준비법(Federal Reserve Act)를 비준하고, 당일 재무장관 윌리엄 깁스 매커두(Willian Gibbs McAdoo)가 FRS 설립 준비를 위해 당연직으로 FRB(연방준비제도이사회) 의장이 되다.▶1914년 6월 28일 세르비아에서 오스트리아의 페르디난트 황태자가 피살되다.▶1914년 7월 28일 오스트리아ㆍ헝가리제국이 세르비아에게 전쟁을 선포하며 제1차 세계대전이 시작되다.◇1914년 7월 31일 미국 증권거래소가 폐쇄되다.▶1914년 8월 4일 미국이 중립을 선언하다.◇1914년 8월 10일 FRB가 출범하며 찰스 S. 햄린(Charles S. Hamlin)이 초대 FRB의장에 오르다.◇1914년 11월 14일 연방준비은행(FR-Bank)이 영업을 개시하다.▶1914년 11월 28일 미국 증권거래소가 다시 개소되다.◇1916년 8월 10일 윌리엄 PG 하딩(William PG Harding)이 FRB 2대 의장이 되다.

②제1차 세계대전의 참호전
②제1차 세계대전의 참호전.

▶1917년 2월 1일 독일이 무제한 잠수함전을 개시하다.▶1917년 2월 3일 미국이 독일에 단교를 선언하다.◎1917년 3월 8일 러시아에서 혁명(2월혁명)이 발생하다.▶1917년 4월 6일 정부의 참전안이 상원을 통과하다.◎1917년 4월 16일 레닌이 귀국하다.◇1917년 4월 24일 제1차 전쟁채권 '리버티본드'를 발행하다.◇1917년 10월 1일 제2차 '리버티본드'를 발행하다.◎1917년 11월 7일 러시아에서 혁명(10월혁명)이 발생하다.

③러시아혁명과 레닌.①②③이들은 서로 다른 추동력으로 진행되다 전쟁의 소용돌이에서 하나로 얽힌다.
③러시아혁명과 레닌. ①②③이들은 서로 다른 추동력으로 진행되다 전쟁의 소용돌이에서 하나로 얽힌다.

◇1918년 4월 5일 제3차 '리버티본드'를 발행하다.▶1918년 11월 11일 독일의 항복으로 전쟁이 종결되다.◇1918년 12월 15일 매커두가 재무장관을 그만 두다.

이 글을 쓰며 여러 차례 강조했던 말이 있다. '전쟁은 돈'이란 말이었다. '전쟁의 승패는 결국 돈이 가른다'는 의미다. 사실 모든 게 돈이다. 무기도 돈, 식비도 돈, 군복도 돈이다. 고상한 말로 '전비(戰費)'다. 전쟁을 치르려면 어떻게든 전쟁에 들어가야 할 이 '돈'을 마련해야 한다. 그것도 엄청난 규모로. 이 돈은 누가 마련하나? 정부? 아니다. 정부는 결코 혼자 힘으로 이 '돈'을 모을 수 없다. '기획'에도 '실행'에도 파트너가 필요하니, 곧 은행이다. 그것도 중앙은행이라는 파트너가 필요하다. 최초의 중앙은행인 잉글랜드은행의 설립과정을 보라. 설립 목적 자체가 '전비마련'에 있었다. <계속>

 

------------------------------------------------------------------------------------

이재광 이코노텔링 대기자❙한양대 미래인재교육원 겸임교수❙전 한양대 공공정책대학원 특임교수❙사회학(고려대)박사ㆍ행정학(경희대)박사❙경기연구원 선임연구위원, 뉴욕주립대 초빙연구위원, 젊은영화비평집단 고문, 중앙일보 기자 역임❙단편소설 '나카마'로 제36회(2013년) 한국소설가협회 신인문학상 수상❙저서 『영화로 쓰는 세계경제사』, 『영화로 쓰는 20세기 세계경제사』, 『식민과 제국의 길』, 『과잉생산, 불황, 그리고 거버넌스』 등 다수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 서울특별시 서초구 효령로 229번지 (서울빌딩)
  • 대표전화 : 02-501-6388
  • 청소년보호책임자 : 장재열
  • 발행처 법인명 : 한국社史전략연구소
  • 제호 : 이코노텔링(econotelling)
  • 등록번호 : 서울 아 05334
  • 등록일 : 2018-07-31
  • 발행·편집인 : 김승희
  • 발행일 : 2018-10-15
  • 이코노텔링(econotelling)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이코노텔링(econotelling). All rights reserved. mail to yunheelife2@naver.com
  • 「열린보도원칙」 당 매체는 독자와 취재원 등 뉴스이용자의 권리 보장을 위해 반론이나 정정보도, 추후보도를 요청할 수 있는 창구를 열어두고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고충처리인: 장재열 02-501-6388 kpb11@hanmail.net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