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차가 출발했다. 잠시 내몽골의 초원풍광에 대한 감상은 접어두고 노트북을 켰다. 이번 여행을 나오기 전 이미 넘겼던 중국민족에 관한 책의 머리말을 오늘 써서 가급적 빨리 서울의 출판사로 보내야겠다. 서울에서 딱 한줄 쓰고 미뤄놨던 것을 조용하고 쾌적한 기차 속에서 쓰는 게 효율적이다 싶었다.
1시간 반이 채 안 되는 시간에 A4용지 4장 분량의 초고를 완성했다. 그러나 한두 차례 교정을 해야 하기 때문에 시간은 좀 더 걸릴 듯하다. 원고가 작성된 후 차창 밖의 풍광을 보니 이곳이 내몽골 땅임을 실감하게 된다. 기본적으로 평원과 야트막한 구릉이 서로 혼재된 가운데 주로 풀들이 자라고 있고 수목은 그다지 눈에 띄지 않는다. 약 2시간 반여의 여정 끝에 동차는 우리를 지닝 남역에 내려놓는다. 우란차푸시 역시 어얼두스와 마찬가지로 중심지역의 하위행정구역명칭을 역명으로 사용하였다. 어얼두스는 동셩구와 여러 개의 진과 기로 구성되어 있어 어얼두스행 버스나 기차는 동셩으로 차표에 표시된 것과 같은 이치이다. 그러나 모든 도시가 그런가 하면 그렇지는 않다. 빠오토우는 그냥 빠오토우로 표시된다. 우란차푸시는 어얼두스와 마찬가지로 지닝으로 표시되었고 지닝에는 남역 북역 두곳이 있는데 필자는 지닝남역에서 내렸다. 이곳 우란차푸는 수도 북경에서 가장 가까운 내몽골 땅이자 동시에 몽골공화국이나 시베리아로 이어지는 교통 요충이기도 하고 특히 한여름에도 시원하여 북경, 천진 등의 도시인이 피서하기에 좋은 곳이란 팸플릿 관광자료를 많이 볼 수 있었다.
기차에서 내린 후 여행가방을 끌고 역주변을 구경하면서 호텔을 탐색했다. 거리는 아름다운 것 같은데 역 주변의 호텔은 모두 수준이 낮아 보였다. 고급스런 호텔- 이 경우 필자는 3성급 호텔을 염두에 두고 있다- 은 보이지 않는다. 한참을 걸어 멀리서 한팅호텔체인을 발견하고 그곳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한팅호텔은 중국최대의 호텔체인으로 고급스럽진 않지만 적어도 지저분하다는 느낌을 주지 않는 그리고 어느 호텔체인이라도 무선인터넷이 연결된다는 장점을 갖고 있다. 그러나 문제도 있다. 대도시나 유명 관광지에서 외국인 숙박이 별 문제없지만 규모가 작은 도시에서는 외국인 숙박면허를 받지 않아 투숙이 거절되는 경우도 적잖이 있다. 바로 수일 전 위린에서 외국인 숙박면허를 받지 못한 한팅호텔로부터 숙박거절을 당한바 있는데 오늘도 그랬다. 직원은 자신들은 외국인 숙박면허를 받지 못했다면서 자신이 무슨 잘못이라도 한 듯 안절부절 못한다. 참 착한 직원인 것 같다. 고급호텔 - 3성급 호텔-을 소개해달라고 했더니 부근의 영산호텔을 소개해준다. 택시비가 겨우 5위안 나왔다. 숙박비는 268위안이었고 방은 깨끗하고 깔끔하여 만족스러웠다. 하나 이상한 것은 비교적 괜찮은 숙박시설인데 에어컨이 보이지 않았다. 방에 비치된 관광팸플릿에도 북경이나 천진 등에서 피서여행을 오는 최적지라고 선전하고 있다. 에어컨이 필요없는 여름날씨라 생각됐다.
오늘은 점심을 걸렀음에도 그다지 배가 고프지 않다. 다시 걸어서 기차역을 가보니 호텔에서 5분 정도 거리밖에 안되고 기차역에서 대각선 건너편에 버스터미널이 있다. 내일은 이곳에서 버스로 산서성 따퉁으로 이동할 생각이다. 매표창구에서 따퉁행 버스표 예매를 하려고 하니 역시 당일매표 당일승차이다.
버스터미널을 뒤로 하고 오던 길을 되돌아 길 건너편의 한 음식점으로 갔다. 이 음식점은 닭고기 조림집으로 전국적으로 유명한 황먼지(黃燜鷄)이다. 이를 중국어로 발음하면 황먼지이다. 닭계자를 지로 읽는 것이다. 지를 발음할 때 약간 길게 뒷부분을 높여 발음해야 하는데 순간 그동안 학습했던 것은 증발해버리고 우리의‘먼지’란 단어가 떠오르면서 먼지를 우리말 먼지로 지를 아주 짧게 발음하고 나니 아주 이상한 중국어가 되었다. 아니 말이 되지 않는다. 중국에서는 발음이 좀 서툴러도 발음의 높낮이를 나타내는 사성이 정확해야 되는데 이것이 헝클어져 버린 것이다. 말을 뱉어내고 잘못을 알아차렸지만 이미 엎어져버린 물이었다. 주인인지 주방장인지 모르겠지만 약간 다운신드롬 증후군이 있어 보이는 이 요리사는 어느 깡촌에서 촌놈이 왔나라는 표정으로 필자를 쳐다보며 어디서 왔느냐고 묻는다. 이때는 입을 다물고 있는 게 상책이라 싶어 못 들은 척 그냥 무시했다. 국제도시 서울에서 온 사람이 몽골 소도시의 좀 모자라 보이는 순박한 주인에게 순간 멸시를 당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다행한 것은 음식메뉴가 닭고기 조림 뿐으로 혼동할만한 메뉴는 없어 주문에는 별 문제가 없었다.
이전 하얼빈 ‘황먼지’체인점에서 이 음식을 먹었을 때는 닭고기와 채소를 넣어 약간 걸쭉하게 졸인 것과 밥 한그릇을 내놓은 것이 전부였으나 이집에서는 돼지뼈로 만든 것, 쇠고기로 만든 것 등이 추가되어 있다. 어쨌건 내 발음이 이상했지만 주인이 알아들어 더 이상의 문제는 없었다. 가격이 20위안인데 자신이 좋아하는 채소를 추가할 수 있다. 채소를 한 가지 추가하는데 1위안이다. 기본에다 팽이버섯과 피망 그리고 작은 고추를 추가하니 25위안을 내라고 한다. 23위안 아니냐고 했더니 밥값이 2위안이라고 한다. 다시 맥주 한병 ( 5위안 )을 추가하여 먹은 점심 겸 저녁 식사는 30위안이 들었다. 맛은 아주 좋았다.
밥을 먹고 나와도 약간 부족한 듯하여 바로 옆의 면가게에 다시 들러 메밀냉국수를 주문하다. 나온 음식을 보니 메밀국수에 토마토와 다른 채소를 좀 넣고 볶은 것이었다. 맛은 좋은데 많이 짜다. 메밀은 중국에서도 비싼 편인데 국수값이 12위안이었다.
식사를 마치고 호텔 부근의 라오후( 老虎 )공원을 갔다. 야트막한 동산인데 입구에 거대한 암석효과를 낸 인공조형물이 있고 야산 위에는 거대한 두 마리의 호랑이상 조형물이 서 있다. 이곳 지형이 편평해서 조금만 올라가면 산꼭대기이고 이곳에 혁명기념비가 서 있다. 내용이 자세히 기록되어 있지 않은데 항일투쟁이란 말이 없는 것을 보니 국공내전에서 희생된 열사를 기념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공원을 내려와 사과 2알 ( 8위안 )을 사들고 호텔로 돌아가 새로 출간할 책의 머리말을 다시 읽고 고치면서 오늘 일을 마감하다. 내일 내몽골을 떠나 산서성으로 들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