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주의 모범국가서 퇴보 …젊은 정치 엘리트 등장하면서 몰락
나이와 생각이 비슷한 '꼰대'들이 주도하는 정치체제를 제론토크라시(Gerontocracy)라 한다. 그리스 노정치가 제론에서 유래된 말인데 폐쇄적이고 경직된 사고, 소통 장애를 비판하는 개념이다. 호네커의 동독이 제론토크라시의 대표적 사례로 꼽힌다.
1990년 서독과의 재통일이 이뤄지기 전까지 동독은 사회주의 모범국가였다. 사회주의권에서 체코슬로바키아와 더불어 1인당 GNP 선두를 다퉜으며 정치적 자유도 허용되는 등 1955년 독립국가가 된 이후 성공 사례로 꼽혔다.
그랬던 동독이 1989년 베를린 장벽 붕괴 이후 허무하게 무너진 것을 두고 여러 가지 설명이 나온 것은 당연하다. 그중 눈길을 끄는 것이 당시 동독의 최고권력자였던 에리히 호네커를 중심으로 한 '노인 정치'와 '주방 내각'의 폐해다.
호네커는 60세이던 1971년 동독 국가원수가 되어 18년간 권좌를 지켰다. 그동안 그를 중심으로 한 극소수 '동년배' 그룹이 동독을 좌지우지했다. 이를테면 외교정책조차 정치국 회의나 공산당 전당대회 같은 공식 기구에서 결정되는 게 아니라 호네커와 측근 밀케의 사적인 사냥모임이나 산책 중에 정해지는 식이었다.
호네커 무리는 2차 대전 전부터 나치와 히틀러에 맞서 공산주의 운동을 가열차게 전개한 '화려한' 이력이 든든한 정치적 자산이었다. 정권을 잡은 그들은 '볼보그라드'라 불린 집단 거주지역에서 살았다. 이는 당시 동독에서 드물었던 스웨덴제 고급 차 볼보를 몰고 다닌다 해서 비롯된 이름이다. 이렇게 자신들만의 특별구에서 오랜 기간 황제 같은 삶을 살았으니 당연히 대중의 고민, 평균적 사고방식과 거리가 있을 수밖에 없었다. 여기에 이들이 생물학적으로 나이가 들수록 '바른 말'을 싫어하는 독선과 옹고집은 강화되는 것이 당연했다.
결과는 우리가 아는 대로다. 전후 세대로서 좋은 교육을 받아 능력이 있으면서, 과거 정파나 역사적 경험에 얽매이지 않는 중간층 젊은 정치 엘리트들이 등장하면서 호네커 체제는 파열음을 내기 시작했고 이는 동독의 붕괴로 이어졌다.
호네커의 실각, 동독의 붕괴 이유에 관한 상당히 설득력 있는 이 설명은 『독사』(김동욱 지음, 글항아리)의 한 대목이다. 참고로, 책 제목은 '뱀'을 가리키는 게 아니라 '역사를 읽다'란 뜻의 독사(讀史)로, 동서양의 역사에서 흥미로운 생각거리를 길어낸 것이다.
우리 사회의 화두인 '세대교체'와 관련해 골라봤는데, '듣기 싫은 소리'는 거부하고 '나와 생각이 비슷한' 사람만 찾는다면 어느 조직, 어느 세대든 비슷한 결과를 낳지 않을까. 그럴 확률은 '꼰대'들이 더 크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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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대학교에서 행정학을 전공하고 한국일보에서 기자생활을 시작했다. 2010년 중앙일보 문화부 기자로 정년퇴직한 후 북 칼럼니스트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2008년엔 고려대학교 언론학부 초빙교수로 강단에 선 이후 2014년까지 7년 간 숙명여자대학교 미디어학부 겸임교수로 미디어 글쓰기를 강의했다. 네이버, 프레시안, 국민은행 인문학사이트, 아시아경제신문, 중앙일보 온라인판 등에 서평, 칼럼을 연재했다. '맛있는 책 읽기' '취재수첩보다 생생한 신문기사 쓰기' '1면으로 보는 근현대사:1884~1945' 등을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