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세기 마녀사냥에 지식인들도 가담…신의 이름으로 사욕 채워
맹목적인 믿음과 탐욕이 손잡으면 어떤 비극을 가져오는지 교훈
얼마 전 작은 기사 하나가 눈길을 끌었다. 벤츠의 얌체 주차를 온라인에 고발했던 이가 실은 대중의 관심을 끌려고 과장, 허위 글을 올렸다고 고백했다는 소식이었다.
해프닝으로 끝나긴 했지만 며칠 동안 벤츠 차주가 익명의 네티즌들에게 얼마나 시달렸을지는 상상이 가지 않는다.
이는 '정의'라는 이름으로, 혹은 '진영논리'란 이름으로 자행되는 우리 시대의 '마녀사냥'이란 생각이 들어 관련 책을 뒤져 보았다.
마침 비교종교학자가 쓴 『중세의 잔혹사 마녀사냥』(양태자 지음, 이랑)이 눈에 띄었다.
책에 따르면 마녀사냥이 15세기 말 프랑스 남쪽과 이탈리아 북쪽에서 처음 시작되어 1500년경에 절정해 달했는데 유럽 국가별로 수백 명에서 수천 명이 희생되었다고 한다. "신이 아닌 것과 그리스도교 교리를 따르지 않는 것은 모두 마귀"라는 논리에 따라 약초를 다루는 사람까지 처형한 마녀사냥은 광신도들의 집단 히스테리로 간주되지만 당대의 지식인들도 여기에 가담했다.
대표적인 것이 독일의 철학자이자 의사인 빌헬름 아돌프 스크리보니우스로, 그는 '물 시험'이라는 마녀 감별법을 전파했다. '물 시험'이란 마녀로 의심되는 사람의 손발을 묶고 깊은 물속에 던져 가라앉으면 죄가 없다 해서 건져 살려주고, 물에 뜨면 마귀가 도와 가라앉지 않았다고 해서 마녀로 판정하는 방법이었다.
이게 사실 구실에 불과한 것이 건지기도 전에 익사한 사람이 대부분이었으니 일단 마녀로 의심 받으면 헤어날 길이 없었다고 보면 된다.
그러니 마녀사냥은 정치적 목적이나 개인적 복수를 위해서도 자주 동원됐다. 책에 실린 독일의 소도시 이드슈타인 사례가 대표적이다. 한 남자아이가 자기 방에서 발견된 뱀과 쥐를 본인이 만들었다면서 도시 전역에 흉흉한 기운이 돌자 영주 요하네스가 자기 아이들 중 절반 이상이 사망한 것은 마녀의 저주 때문이라며 마녀사냥의 불을 붙였다. 당시엔 영유아 사망률이 매우 높았음에도 말이다.
명망 높은 두 목사가 바람잡이 역할을 하면서 이드슈타인에는 마녀사냥 바람이 일었는데 마녀로 몰린 사람들의 집안은 재산을 몰수당하고 시민권을 박탈당해 풍비박산이 났다. 당시는 30년 전쟁 직후라 도시 재정이 많이 부족했는데 요하네스는 마녀 혐의자의 재산 정도에 따라 재판비를 차등 청구하는 등 마녀사냥을 정치적 목적에 한껏 이용했다.
더 웃기는 것은 마녀 혐의로 잡혀온 사람들 중 40세 이하의 가임기 여성은 무조건 풀어주었다는 사실이다. 전쟁 여파로 인구 감소가 극심하자 이를 벌충하기 위한 목적에서였다. 그러니 맹목적 믿음과 탐욕이 손잡으면 어떤 비극을 가져오는지 마녀사냥보다 더 생생한 사례는 없을 것이다. 정의와 이성을 내세우지만 피아 구분과 손익계산이 판치는 '마녀사냥'이 재연되지는 않는지 늘상 경계해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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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대학교에서 행정학을 전공하고 한국일보에서 기자생활을 시작했다. 2010년 중앙일보 문화부 기자로 정년퇴직한 후 북 칼럼니스트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2008년엔 고려대학교 언론학부 초빙교수로 강단에 선 이후 2014년까지 7년 간 숙명여자대학교 미디어학부 겸임교수로 미디어 글쓰기를 강의했다. 네이버, 프레시안, 국민은행 인문학사이트, 아시아경제신문, 중앙일보 온라인판 등에 서평, 칼럼을 연재했다. '맛있는 책 읽기' '취재수첩보다 생생한 신문기사 쓰기' '1면으로 보는 근현대사:1884~1945' 등을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