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26 13:30 (금)
[김성희의 역사갈피]청빈과 거리가 있던 공자와 맹자
[김성희의 역사갈피]청빈과 거리가 있던 공자와 맹자
  • 이코노텔링 김성희 객원 편집위원
  • jaejae99@hanmail.net
  • 승인 2021.05.11 11:00
  • 댓글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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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관 청문회 때마다 '관사테크' 등 추문…옛 선비는 모두 안빈낙도 했을까
공자는 일반 가구의 6배 넘는 집서 거주…적어도 무주택자나 쪽방관 딴판
맹자 연봉은 요즘 돈으로 따지면 몇 백억…임금 하사 36kg의 金 받아 챙겨
공자 동상. ⓒ이코노텔링그래픽팀
공자 동상. ⓒ이코노텔링그래픽팀

혹시나 했지만 역시나였다. 인사청문회가 열리니 장관 후보라는 이들을 둘러싼 온갖 구설이 터져 나온다. '논문 내조'니 '관사테크'니 하는 신조어까지 등장하는 판이다.

이를 보며 눈살을 찌푸릴 이들에게 위로가 될 만한 옛이야기가 있다. '청빈'을 으뜸 미덕으로 치던 조선의 선비들이 떠받들던 공자 맹자도 맑았는지(淸) 모르나 없이 살지는(貧) 않았다.

외려 청부(淸富)라면 모를까. 이건 중국의 칼럼니스트가 쓴 『공자는 가난하지 않았다』(리카이저우 지음, 에쎄)에 나오는 이야기다.

공자의 집은 33묘, 지금으로 치면 2만여 평방미터에 달했다. 집은 비록 방 3칸짜리 15평방미터에 불과했지만 담장은 몇 킬로미터에 달했다는 말이다. 공자가 살았던 춘추전국시대에는 채소와 나무를 심고 가축을 기르는 땅까지 포함해 집의 담장을 둘렀다지만 당시 일반 가구는 대부분 5묘 정도의 크기였다니 공자는 적어도 무주택자거나 쪽방 신세는 아니었던 셈이다.

더 놀라운 것은 공자의 연봉이다. 노나라 출신인 공자는 한때 위나라에 가서 귀족 자제들에게 시서예의를 가르쳤는데 이때 1년에 좁쌀 6만 말, 90톤을 받았다. 이걸 현대 중국의 베이징 슈퍼마켓에서 사려면 약 50만 위안, 우리 돈으로 8,700만 원에 달한다. 당시 물가가 어땠는지 몰라도 요즘 월급쟁이 입장에서 보면 적지 않은 연봉이다.

공자가 31세 때 열국을 주유하기 시작했는데 허난 성 뤄양으로 갈 때, 개인적 방문이었음에도 국고의 지원을 받았다는 이야기는 제쳐 두고 맹자의 행적을 따라가 보자.

맹자가 가장 잘 나갈 때는 제나라에서 경(卿)의 지위에 있을 때였는데 연봉이 좁쌀 10만 종, 역시 지금 단위로 환산하면 1만 5,000톤에 이르는 엄청난 고액이었다. 우리 돈으로 따지자면 몇 백억 원이 넘으니 상상하기 힘든 지경이다.

그 맹자가 제나라에서 2~3년 근무한 뒤 고향인 추나라로 돌아갈 때 송나라, 설나라 임금이 각각 황금 70일(鎰), 50일을 선사했다. 맹자는 이를 거절하지 않고 받았는데 당시 쓰이던 중량 단위 일(鎰)은 약 300그램이니, 맹자가 받은 금은 모두 3만 6,000그램이다. 36킬로그램의 금덩이! 순도가 문제가 되긴 하겠지만 보통 현대인은 평생에 한 번도 보기 힘든 '보물' 아닌가.

이랬으니 중국사에서 희대의 간신으로 꼽히는 명나라 가정제 때 탐관오리 엄숭은 장시성에만 6,600채가 넘는 부동산을 보유했고, 그중엔 손자 엄홍, 엄소경 명의의 별장도 있었다는 구절을 읽어도 그리 놀랍지 않다. 한 줌의 권력이 있으면 한 주먹의 특혜를, 한 뼘의 지위가 있으면 한아름의 눈먼 돈을 챙기는 게 권력의 생리라 여겨져서다. 그나마 엄숭의 말로가 비참했다는 게 작은 위안이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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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코노텔링 김성희 객원 편집위원 커리커처.
이코노텔링 김성희 객원 편집위원 커리커처.

고려대학교에서 행정학을 전공하고 한국일보에서 기자생활을 시작했다. 2010년 중앙일보 문화부 기자로 정년퇴직한 후 북 칼럼니스트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2008년엔 고려대학교 언론학부 초빙교수로 강단에 선 이후 2014년까지 7년 간 숙명여자대학교 미디어학부 겸임교수로 미디어 글쓰기를 강의했다. 네이버, 프레시안, 국민은행 인문학사이트, 아시아경제신문, 중앙일보 온라인판 등에 서평, 칼럼을 연재했다. '맛있는 책 읽기' '취재수첩보다 생생한 신문기사 쓰기' '1면으로 보는 근현대사:1884~1945' 등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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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진한 2021-05-11 16:18:48
시장경제가 현대처럼 발전한 건, 문자로 기록하는 역사로 볼 때, 근대 서유럽이 발원지임. 이를 볼 때, 자본주의 시장경제체제인 현대 한국 유교사회에서, 하느님과 공자님의 禮를 배우는 동아시아 유교도들은, 공자님의 禮는 돈도 포함하는 현실적인 자기진단임을 분명하게 염두에 두고, 현실을 망각하는 어리석음을 범하지 말아야 합니다. 자본가들에 대해 왜곡하려는 사람들이 가끔 보여서 고민해왔습니다. 국가가 정한 충분한 세금을 내는 그 자체로 국가와 민족을 위하는 것입니다.@기독교도 “얼굴에 땀을 흘려야 먹을 것을 먹으리니”(창 3:19)"가 있다고 합니다. 또한 일하지 않는자는 먹지도 말라"는 가르침이 있다고 합니다.

윤진한 2021-05-11 16:17:01
습니다. 군자의 길을 추구하는분은 그에 맞게 제자를 가르치는 생업이 자연스럽게 형성됩니다. 맹자님의 無恒産 無恒心도 그런 판단에서 나온것입니다. @ 공자님. 수업료 받고 제자 교육.생계를 유지하시기 위해 일정한 제자의 禮(제자의 禮라는 공식적인 절차를 거치는게 중요했음)를 거치면 신분은 안 따지고 가르치심.
子曰 自行束脩以上 吾未賞無誨焉. 공자왈, 束脩의 禮 이상을 行한 사람이면 내 일찌기 가르치지 않은 바 없다.
.출처: 論語 述而.
. 필자 주: 공자님은 제자들의 신분을 따지지는 않고, 생계유지를 위해, 기본적인 수업료는 반드시 받고 교육시키셨다는 경험과 원칙을 밝히신 내용임. 자본주의 시장경제가 현대처럼 발전한 건, 문자로 기록하는 역사로 볼 때, 근대 서유럽이 발원지임. 이를 볼 때, 자본주의 시장경

윤진한 2021-05-11 16:16:18
가 수천년 여러 종교들에 비해, 종교와 별개로 파생된 경제형태일 뿐입니다. 산업자본주의는 산업혁명을 거치면서 지배적인 형태로 등장하며, 유럽대륙에서는 1840년대에 와서 그 시대의 지배적인 형태로 형성, 발전되었다고 하는게 정설입니다. 현대 자본주의 사회는 더욱 발전하여, 세계의 지배적인 체제로 자리잡았습니다.그러므로 종교와 자본주의는 분명히 별개 영역임을 인식하시고, 합법적인 틀 내에서, 자본주의체제에 순응하며, 자신과 가족의 생활, 미래의 위험대비, 노후와 질병대비, 유산상속등에 집중하시며 풍요한 삶을 도모하며 사시기를 한국인들에게 부탁드립니다.
유교는 하느님(天)께서 인간에게 부여하신 의무인, 생업종사를 반드시 이행해야 합니다. 성인군자의 도를 가르치신 공자님도 교육자의 길을 통해 생업에 종사하셨습니

윤진한 2021-05-11 16:15:10
자본주의와 어떠한 종교도 일부러 꿰맞추어 이론적으로 결부시키면 않된다는 결론에 도달했습니다.다만, 수천년 전에도 지식산업의 선구적인 교육자.지식인.독서가.선비.학자로 생계를 이어가셔야 했던 공자님께서도 공짜로 제자를 가르치지는 않으셨던 걸, 현대 자본주의 사회와 결부시키는것은 제한적으로, 중요한 개념으로 정립시킬 필요는 있습니다. 대학교수나 교사.학원강사가 공짜로 가르치다가는 생계가 막막해지는 이치입니다. 수천년 역사의 종교와 체계적인 근대 자본주의는 종교와 경제라는 개별영역입니다. 현대 자본주의 사회가 세계적인 흐름으로 자리잡은 글로벌시대에, 기업이나 개인이나 돈을 죄악시하면 않됩니다. 자본주의란 간단하게 생산 수단의 사유제 아래에서 이윤획득을 위한 상품생산이 행해지는 경제체제입니다. 자본주의는 그 역사가

윤진한 2021-05-11 16:13:45
공자님께서는 젊은시절, 갖은 고난과 가난을 겪으시고, 하느님(天).神明을 숭배하며, 요순우탕문무주공같은 先代의 성인들을 귀감으로 삼아, 제자들을 가르치시다가, 늘그막에 하느님(天)이 복을 주셔서 그렇게 자기도 모르게 약간의 재산을 얻으신 것입니다. 맹자님도 마찬가지입니다. 요즘 학원강사들중에 수백억 수입버는분 자주 보지 않습니까? 그게 처음부터 그리된건 아닙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공자님.맹자님 같은 분이 고난끝에 그런 재산 얻으신건 긍정적 사례입니다.하느님이 선택하시고 그런 가르침을 따르는경우, 예수님도 죽어서 만왕의 왕이라는 보상을 받으셨습니다.@성균관대 출신 유생입니다. 현대사회에서 본인의 노력으로 돈을 모으는 일은 아주 중요하며, 신성한 영역이라고 판단합니다. 오랜 고민끝에 내린 결론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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