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5-16 09:20 (일)
영화로 쓰는 세계경제위기史(12)더 본드⑧세계판도 바꾼 '러일전쟁'
영화로 쓰는 세계경제위기史(12)더 본드⑧세계판도 바꾼 '러일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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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1.05.03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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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일전쟁서 패배한 러시아가 독일과 손잡을까 두려워 영국, 러시아에 유화책
열강의 이합집산 촉발 … 독일에 수모당한 프랑스는 일본과 제휴해 와신상담
美, 동아시아에 교두보 확보 … 러시아, 유럽에 대한 영향력 유지하려 獨 견제

1904년 러시아와 일본의 전쟁은 다시 한 번 세계의 권력 구도를 재편시켰다. 전쟁에서 승리한 일본은 당연히 동아시아 맹주로 거듭났다.

또한 동아시아 무대에서 미국이 부상했다는 것도 중요하다. 미국은 러일전쟁의 강화를 제안하고 주도함으로써 향후 미국이 태평양 지역에서 활동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했던 것이다.

나아가 미국은 1905년 일본과 이른바 '가쓰라(桂)-테프트 밀약'을 체결, 동아시아의 이해에 깊숙이 간여할 수 있는 실질적인 수단도 갖게 됐다. 한편, 전쟁에서 패한 러시아는 일시적으로나마 영토적 야욕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고 국내에서는 민중 혁명이 발발, 이래저래 국내 문제에 전념해야 할 상황이었다. 따라서 러시아는, 치욕적이기는 했지만, 일본과의 재결전 대신 평화를 유지하고 싶었다.

러일전쟁의 과정에서 영국 역시 동아시아와 세계정세의 변화를 감지했다. 러시아는 이제 힘이 없다! 러시아는 이제 더 이상 강국이 아니었던 것이다. 또한 이로써 영국은 더 이상 러시아를 적대적 관계로 둘 필요가 없어졌다. 오히려 러시아가 고립될까 두려해야 할 상황이었다. 러시아의 고립은 득(得)보다 실(失)이 커 보였다. 무엇보다 유럽의 맹주로 떠오르는 독일과의 관계 개선이 우려됐다.

독일과 러시아가 손을 잡는다면 영국을 능가할 수 있는 막강한 도전자가 될 수도 있었다. 게다가 러시아는 영국의 맹방(盟邦) 프랑스의 맹방이었다. 영프 '협상'이 '동맹'으로 발전함으로써 영국은 '맹방의 맹방'과 갖는 적대적인 관계가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독일 육군과 열병하는 빌헬름 2세.
독일 육군과 열병하는 빌헬름 2세.

이처럼 러일전쟁은 동아시아는 물론 세계정세를 바꿔놓았다. 여기에는 프랑스도 있었다. 러일전쟁을 계기로 프랑스는 다양한 열강들과 외교관계를 맺을 수 있었다.

우선 일본에 접근했다. 1907년 6월 일본과 맺은 불일(佛日)협약이 성과였다. 그리고 러시아와 일본의 화해를 꾀했으며, 그 결과 다음 달인 7월 러시아와 일본은 러일 협약을 맺게 된다.

그리고 한 달이 지난 후 19세기를 실질적으로 '종결'시키는 대 사건이 터진다. 1815년 빈 회의 이후 19세기 내내 세계 곳곳에서 최대의 적대관계를 유지해 왔던 영국과 러시아가 마침내 손을 잡게 된 것이다.

양국은 영국과 프랑스가 그랬던 것처럼 주요 식민지 분쟁을 타협으로 해소했다. 이렇게 해서 새로운 20세기는 새로운 국가 간 관계로 출발했다. 독일제국의 성립에서 프랑스에 대한 독일의 고립정책, 보어전쟁으로 인한 영국의 고립과 동아시아에 대한 집착, 동아시아 맹주 일본의 등장, 빌헬름 2세의 등장과 비스마르크의 퇴진 등 숱한 역사적 대사건을 겪으며 세계는 20세기를 맞는다. 그리고 1904년의 러일전쟁이 모든 것을 바꿔놓았다. 주요 열강들의 이합집산이 시작됐던 것이다. 이로써 1907년 이후 유럽은 새로운 국가 간 체제를 갖게 됐다. 독일, 오스트리아・헝가리, 이탈리아의 '삼국동맹'과 영국, 프랑스, 러시아를 잇는 '삼국협상'이 대치하는 세력 구도가 그것이었다.

그러나 이 양대 세력은 세력이 형성되기 오래 전부터 이미 전쟁을 대비해 왔다. 제국주의 시대의 열강들은 그만큼 서로를 위험한 상대로 봤던 것이다. 1880년부터 1914년까지 영국, 프랑스, 독일, 러시아, 이탈리아,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군비(軍費) 변화를 보자. 이들 6개국의 총 군비는 1880년 1억3200만 파운드에서 1890년 1억5800만 파운드로, 19.7% 증가했다. 20세기 들어 증가폭은 더욱 컸다. 1900년에는 2억500만 파운드로 다시 29.7%, 1910년에는 2억8800만 파운드로 다시 40.5% 증가했다. 전쟁이 발발한 1914년 이들 국가들의 군비는 무려 3억9700만 파운드로 다시 4년 만에 37.8% 증가했다. 연이어 경이적인 기록을 경신하고 있었던 것이다.

■ 러일전쟁, 세계 판세를 바꾸다!

이 같은 군비의 증가는 전쟁의 우려에서 비롯된 것이었지만 또 한편 전쟁의 위협을 한층 높이는 것이기도 헸다. 세르비아에서의 두 발의 총성이 있은 뒤 유럽이 얼마나 빨리 전쟁에 돌입했는지가 이를 입증한다. 많은 역사학자들이 세르비아 사건 뒤 한 달 남짓한 시간 만에 엄청난 전쟁이 터진 것에 대해 의문을 품는다.

물론 답은 이미 나와 있다. 제1차 세계대전은 '준비된 전쟁'이었다는 것이다. 세르비아에서 황태자가 피습되지 않았다 해도 언제 어디서든 전쟁의 불씨는 터질 준비를 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 과정을 보면 이것이 무슨 말인지를 알게 된다.

19세기 후반 건설 중인 시베리아 횡단 열차. 러시아의 우랄산맥 동부에 위치한 첼랴빈스크와 블라디보스토크를 연결하는 약 9288km의 대륙횡단철도이며 이 철도의 건설로 러시아는 독일과 프랑스로부터 차관을 도입했으며 중국 중심의 동아시아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19세기 후반 건설 중인 시베리아 횡단 열차. 러시아의 우랄산맥 동부에 위치한 첼랴빈스크와 블라디보스토크를 연결하는 약 9288km의 대륙횡단철도이며 이 철도의 건설로 러시아는 독일과 프랑스로부터 차관을 도입했으며 중국 중심의 동아시아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사실 러시아의 보호권 아래 있었던 세르비아는 오스트리아ㆍ헝가리의 상대가 되지 않는 약소국이었다. 그런데 오스트리아ㆍ헝가리가 이 나라에 선전포고를 했다.

러시아가 이를 묵과할 리 없었다. 오스트리아에 지속적으로 경고 사인을 보내던 러시아는 7월 30일 군에 총동원령을 내린다. 그런데 이 총동원령의 대상에는 오스트리아 뿐 아니라 독일까지 포함되어 있었다.

단순히 오스트리아로부터 세르비아를 구하겠다는 전략이 아니었던 것이다. 러시아는 어디까지나 오스트리아ㆍ헝가리-세르비아 관계를 빌미로 삼았을 뿐이다. 독일을 협박하며 유럽에서 영향력을 행사하겠다는 평소의 야욕을 비로소 실천에 옮겼던 것이다.

러시아의 움직임에 대한 독일의 반응도 빨랐다. 다음날인 8월 1일. 독일도 총 동원력을 내려 러시아의 공격에 대응했다.

그러자 이번에는 프랑스가 움직였다. 프랑스 역시 총동원령을 내렸던 것이다. 무엇보다 언제 개시될지 모르는 독일의 공격에 대처해야 한다는 생각이 컸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40여 년 전 독일에 당했던 수모를 되갚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이기도 했다. 독일도 가만있을 수 없었다. 8월 3일. 독일 역시 프랑스에 선전포고를 단행한다. 이로써 유럽을 일촉즉발의 위기상황으로 몰고 갔다. 같은 날 영국 의회는 전쟁에 필요한 예산안을 통과시켰고 다음날인 8월 4일 독일과 단교를 선언했다.

이로써 대부분의 주요 열강들이 전쟁에 뛰어들었다. 최초의 '세계전쟁'이 시작된 것이다. 오스트리아 황태자가 피살된 이후 40일 만의 일이었으니 역사학자들이 제1차 세계대전을 가리켜 '준비된 전쟁'이라 부르는 것도 이해가 된다.

그러나 전쟁은 이 정도에서 끝나지 않았다. 8월 23일에는 멀리 동아시아 일본이 전쟁에 참여했고, 3년 후인 1917년 4월 6일과 8월 14일에는 미국과 중국까지 이 전쟁의 소용돌이에 휘말리게 된다. 국지전(局地戰)으로 끝날 것이라며 세르비아에 선전포고를 했던 오스트리아의 예상은 완전히 빗나가고 말았다. 인류는 참담한 죽음의 종소리로 20세기의 문을 열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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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광 이코노텔링 대기자❙한양대 미래인재교육원 겸임교수❙전 한양대 공공정책대학원 특임교수❙사회학(고려대)ㆍ행정학(경희대)박사❙경기연구원 선임연구위원, 뉴욕주립대 초빙연구위원, 젊은영화비평집단 고문, 중앙일보 기자 역임❙단편소설 '나카마'로 제36회(2013년) 한국소설가협회 신인문학상 수상❙저서 『영화로 쓰는 세계경제사』, 『영화로 쓰는 20세기 세계경제사』, 『식민과 제국의 길』, 『과잉생산, 불황, 그리고 거버넌스』 등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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