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실 치즈의 개척자인 지정환(벨기에명 디니에 세스반테스) 신부가 13일 오전 별세했다. 향년 88세. 벨기에 출신인 고인의 성 ‘지’는 본명인 ‘디디에’와 비슷하게, 이름 ‘정환’은 ‘정의가 환하게 빛난다’는 의미로 지은 것이다. 고인은 1964년 전라북도 임실성당 주임신부로 부임한 이후 임실 지역에 협동정신과 새로운 소득원을 창출하기 위해 산양 보급과 산양유, 치즈 개발을 이끄는 등 국내 치즈 산업 육성을 위해 헌신해왔다.
그는 지역 농민들의 가난을 극복하기 위해 1967년 국내 최초로 임실에 치즈 공장을 설립하고, 유럽의 공장을 돌며 장인들로부터 치즈 제조 비법을 배워와 국내에 전파했다. 낙농업의 불모지였던 임실을 한국 치즈산업의 메카로 자리 잡게 한 뒤 주민들에게 대가 없이 물려주었다.1980년대부터는 중증 장애인을 위한 재활센터 ‘무지개의 집’을 세워 장애인 삶의 질 향상을 위해 노력했다. 2004년 사제직에서 은퇴한 지 신부는 전북 완주군 소양면에서 거주해왔다. 법무부는 한국 치즈산업과 사회복지에 기여한 지 신부에게 2016년 대한민국 국적을 부여했다. 그는 생전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주변 사람들에게 작은 바람 같은 게 없냐"는 질문에 "하나 있긴 해요. 내 장례식에 노사연의 ‘만남’을 불러줬으면 좋겠어요. 우리들의 모든 만남은 하나라도 우연이 없거든요. 그렇게 귀하게 만났으니 서로 사랑해야지요”라고 말한 바 있다.빈소는 전북 전주 중앙성당에 마련됐다. 천주교 전주교구는 장례 일정과 절차를 논의 중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