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3-08 23:55 (월)
[김성희의 역사갈피] 통신판매의 원조 '위시북'
[김성희의 역사갈피] 통신판매의 원조 '위시북'
  • 이코노텔링 김성희 객원 편집위원
  • jaejae99@hanmail.net
  • 승인 2021.02.22 09: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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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72년 미국의 방물 장수가 농부들이 원하는 것을 우편으로 보내는 사업 착수
한 장짜리 카탈로그는 600쪽 넘는'책'이 됐고 성경보다 더 널리 퍼졌다는 說도
시어즈가 가세해 경쟁치열 … '가슴 키우는 약'인 '바스트 푸드'소동 등 부작용
美대중 문화사 다룬 『 문화와 유행상품의 역사 』는 ' 역사는 되풀이 된다 ' 시사
ⓒ이코노텔링그래픽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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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집에서 거의 모든 상품을 살 수 있다. 온라인 마켓이며 새벽 배송, TV홈쇼핑 등 비대면 상품구매가 가능한 채널이 수두룩하다.

시장에 가든지 아니면 방물장수 등 집을 찾아오는 상인들에게 물건을 사야 했던 이들이 본다면 이는 가히 혁명적 상거래라 할 것이다.

이 '비대면 상거래'가 미국에서 등장한 것은 한 방물장수 덕분이다. 미국 전역을 돌며 장사하던 아론 몽고메리 워드는 농부들이 무엇을 원하고 무엇을 싫어하는지 속속들이 알았다.

그는 이런 노하우를 바탕으로 1872년 처남과 함께 우편판매를 전문으로 하는 도매상을 차렸다. 그의 자본은 2,400달러, 무기는 상품 목록과 우편주문 방법을 담은 한 장짜리 작은 카탈로그뿐이었다.

이것이 대히트를 쳤다. 넓은 땅덩이에 쇼핑 기회가 드물 수밖에 없었던 미국의 농부들은 물건을 고르고 대금만 지불하면 원하는 물품이 집으로 오는, 이 '첨단' 상술에 환호했다. 카탈로그는 단순한 상품소개서가 아니었다. TV는커녕 라디오도 없던 시절, 여성들에게는 뉴욕이나 시카고의 최첨단 유행이나 상품을 안방에서 접할 수 있는 통로가 되었고, 남성들은 총기류, 농기구 등의 목록을 보면서 기술 발전에 감탄했다.

어린이들은 장난감, 퍼즐게임 등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오죽하면 카탈로그는 '위시북(wish book)'이라 불렸을까. 정기적으로 개정되는 카탈로그는 2년 만에 인기 상품의 목판화까지 실린 72쪽짜리 소책자로 커지는 것이 당연했다. 이 덕분에 1895년에는 워드사의 매출은 400만 달러에 이르고 카탈로그는 600쪽이 넘는 '책'이 되었다. 미국 농촌 인구의 60%가 열독했다는 '위시북'은 성경보다 더 널리 보급되었다는 이야기마저 돌았다.

시장경제에선 처음이 어렵지 일단 시작되면 '무주공산'처럼 너도나도 뛰어드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한국이나 바다 건너나 마찬가지. 워드에 이어 역무원 출신 리처드 시어와 시계곡 앨바 로벅이 동업으로 시어즈사를 차리고 통신판매에 뛰어들었다. 치열한 경쟁의 막이 오른 것이다.

20세기 초 시어즈의 카탈로그는 '세계에서 가장 값이 싼 상점' '손님들의 가장 가까운 친구'를 내세웠고, 워드사는 위시북은 '손님이 원하는 것이라면 지구상의 어떤 물건도 준비할 수 있습니다'고 속도를 강조했다. 경쟁이 치열한 만큼 부작용이 없을 수 없었으니 '가슴 키우는 약' 소동이 그런 예다.

시어즈가 '바스트 푸드'를 먹으면 도시의 세련된 여인들처럼 '풍만하고 팽팽한, 아름다운 가슴'을 얻게 된다고 대대적 선전을 한 결과 한바탕 소란이 일었다. 이는 미국의 대중문화사를 다룬 『문화와 유행상품의 역사』(찰스 패너티 지음, 자작나무)에 나오는 이야기다. 이 흥미로운 책을 읽고 드는 생각은 '유행은, 크게는 역사는 되풀이 되는 것 아닌가'하는 것이다. 사람이 하는 것이니 당연하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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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코노텔링 김성희 객원 편집위원 커리커처.
이코노텔링 김성희 객원 편집위원 커리커처.

고려대학교에서 행정학을 전공하고 한국일보에서 기자생활을 시작했다. 2010년 중앙일보 문화부 기자로 정년퇴직한 후 북 칼럼니스트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2008년엔 고려대학교 언론학부 초빙교수로 강단에 선 이후 2014년까지 7년 간 숙명여자대학교 미디어학부 겸임교수로 미디어 글쓰기를 강의했다. 네이버, 프레시안, 국민은행 인문학사이트, 아시아경제신문, 중앙일보 온라인판 등에 서평, 칼럼을 연재했다. '맛있는 책 읽기' '취재수첩보다 생생한 신문기사 쓰기' '1면으로 보는 근현대사:1884~1945' 등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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