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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희의 역사갈피] 우장춘은 '親日학자'인가
[김성희의 역사갈피] 우장춘은 '親日학자'인가
  • 이코노텔링 김성희 객원 편집위원
  • jaejae99@hanmail.net
  • 승인 2021.02.08 09: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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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비 시해사건에 가담한 아버지가 일본으로 망명해 현지서 출생
도쿄제국대학 농학부 박사…日정부서 수입 채소 종자 개발업적
1950년 단신 귀국해 한국형 무, 배추 개량…한국 농업 기틀 다져
연좌제 방식 '친일 프레임'…현재 잣대로 역사재단 온당치 않아
사진=농촌진흥청/이코노텔링그래픽팀.
사진=농촌진흥청/이코노텔링그래픽팀.

사람을 평가할 때, 특히 역사상의 인물을 평가할 때 지켜야 할 원칙이 있다. 그 하나는 현재의 잣대로 당시의 인물을 재서는 안 된다.

윤리적 혹은 정치·사회적 기준이 바뀌는 것은 드물지 않다. 한데 이에 따라 과거의 행적을 재단하는 것은 공평하지 않은 경우가 많다. 다른 하나는 부분으로 전체를 평가하는 일도 삼가야 한다.

우장춘이란 인물이 있다. 그의 이름을 들은 것은 초등학교 때다. 씨 없는 수박을 만든 세계적인 과학자라 해서 시험에도 종종 나왔다.

씨 없는 수박을 먹어본 일조차 없음에도 그의 이름은 어린 마음에 깊이 새겨졌다. 단언컨대 중학생이 되어 장영실을 알기 전에는 내가 이름을 아는 유일한 한국인 과학자였다. 대학생이 되어서는 그 이름에 그늘이 끼기 시작했다. 우장춘은 명성황후 민비의 시해에 가담했던 우범선의 아들이란 사실을 알게 되면서였다.

을미사변 때 휘하 장병을 이끌고 일본군 수비대와 더불어 궁궐에 침입했던 우범선은 지금, 우리 눈으로는 영락없는 친일파다. 우장춘은 그 우범선이 일본으로 망명해 결혼한 일본 여자 사이에 난, 그러니까 친일파의 반 일본인 자식이다.

부친이 친일파라 해서 자식까지 친일파로 치는 것은 온당치 못하다. 이번에 『제국대학의 조센징』(정종현 지음, 휴머니스트)이란 책을 읽고는 역사적 인물의 평가는 과연 어때야 할지 곰곰이 다시 생각해보게 되었다. 일본 제국대학의 조선인 유학생 1,000여 명의 기록을 분석해서 경향과 일화를 정리한 이 책에 우장춘의 이름이 보인다.

책에 따르면 일본에서 나고 자란 우장춘은 조선총독부의 관비 유학생으로 도쿄제국대학 농학부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조선총독부의 금전적 지원을 받은 우장춘은 아무래도 친일의 냄새가 난다. 그는 교토제국대학 공학부에 진학하려 했지만 조선총독부의 지시로 도쿄제국대학 농학부를 다녔다. 대학을 졸업한 후 일본 농림성의 농업시험장에 근무하며 수입에 의존하던 채소 종자를 국산화(일본화)하는 데 전력을 다했다.

이 정도면 그는 철저한 일본의 국익을 위해 봉사한 '일본 과학자'라 하겠다. 비록 나중에 "공학부를 가지 않길 잘 했다. 사람을 죽이는 병기 같은 것을 만들지 않아서 좋다"라고 했다지만 말이다.

그랬던 우장춘은 1950년 가족을 모두 일본에 두고 홀로 한국에 와서 한국형 무, 배추를 개량하는 등 한국 농업의 기틀을 마련하는 데 기여했다. 그 덕에 안익태에 이어 건국 이후 두 번째로 문화훈장을 받았다.

자, 우장춘을 우리는 어떻게 기억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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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코노텔링 김성희 객원 편집위원 커리커처.
이코노텔링 김성희 객원 편집위원 커리커처.

고려대학교에서 행정학을 전공하고 한국일보에서 기자생활을 시작했다. 2010년 중앙일보 문화부 기자로 정년퇴직한 후 북 칼럼니스트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2008년엔 고려대학교 언론학부 초빙교수로 강단에 선 이후 2014년까지 7년 간 숙명여자대학교 미디어학부 겸임교수로 미디어 글쓰기를 강의했다. 네이버, 프레시안, 국민은행 인문학사이트, 아시아경제신문, 중앙일보 온라인판 등에 서평, 칼럼을 연재했다. '맛있는 책 읽기' '취재수첩보다 생생한 신문기사 쓰기' '1면으로 보는 근현대사:1884~1945' 등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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