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직학 현미경 실습복장으로 강의나선 교수에 학생들도 감동 물결
『천황과 도쿄대』란 책은 우리가 넘어야 할 '일본의 숨은 힘' 설파
'위안부 문제'를 둘러싼 우리 정부의 태도가 미묘하게 변하는 듯하다. 신임 주일대사의 '천황 폐하' 발언 등을 보면, 적어도 '죽창가' 운운하던 때와는 달라졌다.
이를 보면 문득 몇 년 전 읽었던 『천황과 도쿄대』(청어람미디어)의 한 대목이 떠올랐다.
이 책은, 일본의 손꼽히는 저술가인 다치바나 다카시(立花隆)가 두 개의 중심축을 중심으로 근현대 일본사를 파헤친 것으로 각각 1000쪽이 넘는 두 권으로 되어 있다.
내가 주목한 것은 2권의 마지막에 '보론'으로 실린 '도쿄제국대학이 패배한 날'이란 글이다. 도쿄제국대학이 일본 엘리트 관료들의 산실이었으니 그런 제목이 가능했지 싶다.
호소야 노리마사란 당시 의학부 학생의 회고담이 나오는데 이에 따르면 1945년 8월 15일 오전 11시 반이 되자 천황의 방송이 있으니 수업을 빨리 끝내고 야스다 강당에 모이라는 안내가 있었다고 한다. 강당은 만원이어서 그는 잔디밭에 앉아 항복을 선언하는 '옥음 방송'을 들었는데 '이제 개죽음은 면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당시 일본제국은 군의관을 한 명이라도 더, 빨리 양성해 전장으로 보내려 했으니 그런 생각이 들만도 했다.
내가 이 부분에서 주목했던 대목은 나라가 뒤집어질 방송을 듣고 난 후에도 대학 강의는 평소처럼 진행됐다는 사실이다. 호소야는 "사전에 방송 후에도 정상대로 수업을 한다라고 했지만 정말 그대로 하더군요. 16일도, 17일도 마찬가지였던 것 같습니다"라고 기억했다.
이게 한 사람의 기억이라면 혹 미화된 기억 아닐까 싶지만 호소야의 동기생 기념문집에도 같은 내용이 나온다.
"그날 오후 조직학 현미경 실습이 예정되어 있었다. 이런 날도 수업을 할까 생각하며 실습실에 가 보니 놀랍게도 교수는 정각에 들어와 조칙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언급하지 않고 평소와 다름없이 차분히 지도해주셨다. '학자라는 것은 이런 것이구나'하고 새삼 감동했던 기억이 난다."
이건 의대생의 개인적인 경험담이지만 정사(正史)라 할 『도쿄대학 100년사』에는 항복선언과 관련한 조직적인 대응조치가 나오는데 실로 놀랄 만하다. 이 책에 인용된 부분은 이렇다.
'옥음방송' 직후 전 학부장이 총장실에 모여 대책을 협의했는데 첫째 강의는 평상시대로 계획한다, 둘째 학생들 사이에 동요가 보이지만 '냉정하고 침착하게 면학에 힘쓰도록' 지도한다, 셋째 전시 연구는 일단 중단한다고 정했단다.
앞서 이야기했듯이 전장으로 끌려가지 않게 됐다는 안도감도 흘러넘쳤겠지만, 나라가 전쟁에 패하고 점령군이 들어오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르는, 그야말로 경천동지할 사태가 벌어졌는데도 일본의 엘리트들은 이런 모습을 연출했던 것이다. 비록 일부였을지라도 이런 풍경이 우리가 뛰어넘어야 할 일본의 숨은 힘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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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대학교에서 행정학을 전공하고 한국일보에서 기자생활을 시작했다. 2010년 중앙일보 문화부 기자로 정년퇴직한 후 북 칼럼니스트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2008년엔 고려대학교 언론학부 초빙교수로 강단에 선 이후 2014년까지 7년 간 숙명여자대학교 미디어학부 겸임교수로 미디어 글쓰기를 강의했다. 네이버, 프레시안, 국민은행 인문학사이트, 아시아경제신문, 중앙일보 온라인판 등에 서평, 칼럼을 연재했다. '맛있는 책 읽기' '취재수첩보다 생생한 신문기사 쓰기' '1면으로 보는 근현대사:1884~1945' 등을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