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1-17 09:55 (일)
[김성희의 역사갈피] 나폴레옹의 오판
[김성희의 역사갈피] 나폴레옹의 오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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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1.01.04 07: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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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12년 러시아 모스크바 점령했지만 때늦은 철군 결정으로 50만 명 희생
혹한 탓 했지만 식량은 20일분,말먹이는 1주일분 못 미치는 등 준비 소홀
당시 날씨 예년보다 따뜻…자연재해보다 무서운 지도자 오판이 부른 참사
ⓒ이코노텔링그래픽팀
ⓒ이코노텔링그래픽팀

맵다. 최저기온이 영하 10도 밑으로 떨어지는 날이 며칠 째 이어지니 도통 집밖으로 나가기 싫어진다. 여기에 코로나 19가 갈수록 기승을 부리면서 우울한 소식이 꼬리를 무니 절로 마음마저 움츠러든다. 마음으로 느끼는 '심감온도'라는 게 있다면 영하 30도는 훨씬 밑돌 듯 하다.

날씨가 우리 삶에 미치는 영향은 상상 외로 크다. 날씨가 역사의 흐름을 바꾼 대표적 예가 나폴레옹과 히틀러의 러시아 침공이 실패로 돌아간 것이다.

이를테면 러시아의 맹추위를 견디지 못해서 동부전선에서 패퇴하면서 프랑스와 독일 제3제국의 운명이 바뀌었다는 그런 시각이다.

한데 히틀러도 그렇지만 나폴레옹의 러시아 침공 실패는 단순히 동장군 탓만은 아니다. 우선 나폴레옹의 군대는 패전한 게 아니다. 그의 군대는 1812년 9월 중순 러시아의 수도 모스크바를 점령했다. 당연히 나폴레옹은 여기 입성했으며, 9월 16~18일 사흘간 이 도시는 거의 초토화됐다. 나폴레옹은 이를 바탕으로 강화를 체결할 생각이었으나 성 페테르부르크에 머물던 러시아 황제 알렉산드르는 이를 거부했다. 결국 나폴레옹은 겨울을 앞둔 10월 19일 철군을 시작했다.

문제는 철군 과정에 "유별나게 심한 한파가 이상하게도 일찍 찾아와" 프랑스 연합군 50만 명이 희생되었다는 주장이다. 나폴레옹은 일찌감치 "우리가 파멸한 것은 겨울 탓이었다"고 흘렸고, 세인트헬레나 섬에 유배되었을 당시 구술한 회상록에서도 "나와 나의 용감한 군대가 러시아에서 패배한 것은 다름 아닌 1812년부터 3년 동안이나 계속된 유별나게 지독한 겨울 때문이었다"고 썼다.

그러나 이는 사실과 달랐다. 당시의 각종 관측기록에 따르면 그해 10월, 11월은 예년보다 따뜻했다. 그렇다면 어째서 이런 '오해'가 생겼을까. 나폴레옹의 면피성 발언을 12월의 혹한을 겪고 살아남아 돌아온 병사들의 체험담이 뒷받침한 것이 가장 컸다.

하지만 이건 실은 때늦은 철군 결정과 동절기 대비가 소홀한 데서 빚어진 참극이었을 따름이다. 프랑스군이 퇴군을 시작할 때 준비한 식량은 20일분이었고, 말먹이는 1주일분도 안 되었다. 철수 도중에 충분한 보급을 받기란 불가능했으니 프랑스군의 비극은 예고된 것이었다. 더 한심한 것은 황제 나폴레옹은 병사들에 앞서 11월에 파리로 돌아갔다는 사실이다.

이건 1994년 번역, 출간된 『갈릴레오 갈릴레이는 "그래도 지구는 돈다"고 말하지 않았다』(게르하르트 프라우제 지음, 한길사)란 긴 이름의 책에 나온다. 지도자의 오판, 책임 전가, 추종자들의 사실 왜곡이 겹쳐진 이 역사적 오해는 어디서 본 듯 하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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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코노텔링 김성희 객원 편집위원 커리커처.
이코노텔링 김성희 객원 편집위원 커리커처.

고려대학교에서 행정학을 전공하고 한국일보에서 기자생활을 시작했다. 2010년 중앙일보 문화부 기자로 정년퇴직한 후 북 칼럼니스트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2008년엔 고려대학교 언론학부 초빙교수로 강단에 선 이후 2014년까지 7년 간 숙명여자대학교 미디어학부 겸임교수로 미디어 글쓰기를 강의했다. 네이버, 프레시안, 국민은행 인문학사이트, 아시아경제신문, 중앙일보 온라인판 등에 서평, 칼럼을 연재했다. '맛있는 책 읽기' '취재수첩보다 생생한 신문기사 쓰기' '1면으로 보는 근현대사:1884~1945' 등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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