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27 13:30 (토)
[김성희의 역사갈피] 절대군주를 이긴 '커피시장'
[김성희의 역사갈피] 절대군주를 이긴 '커피시장'
  • 이코노텔링 김성희 객원 편집위원
  • jaejae99@hanmail.net
  • 승인 2020.12.21 09:5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프로이센의 프리드리히 대왕, 커피 수입 늘어 국부 빠져나가자 음용 억제
불법 로스팅, 무면허 거래 살피려 커피 냄새를 맡는 '커피 스니퍼'까지 고용
『The Coffee Book』란 책은 시장과 권력의 싸움에서 권력의 참패를 묘사
ⓒ이코노텔링그래픽팀
ⓒ이코노텔링그래픽팀

'커피 스니퍼(coffee sniffer)'이란 직업을 들어본 적이 있는지? 이건 18세기 후반 독일의 프로이센에 잠시 등장했던 직업(?)이다. 이건 프로이센을 독일 통일의 주역으로 키운 프리드리히 2세로 인해 등장한 직업이다.

군사강국을 꿈꾸던 프리드리히 대왕-뛰어난 치적을 쌓아 대왕으로 불린다-은 1777년 '커피와 맥주 성명서'를 발표한다. 커피 소비를 비난하고 맥주 마시기를 권장하는 내용이었다.

"짐은 맥주를 마시며 자랐도다. 짐의 조상들과 짐의 장군들도 마찬가지다. 짐의 군대도 맥주를 먹고 힘을 얻어 수없이 많은 전투를 승리로 이끌 수 있었다. 다음에 다시 전쟁이 일어나면…짐이 어떻게 커피나 홀짝이는 군인들을 믿고 싸움터에 보낼 수 있겠는가?"

대왕이 이런 성명을 발표한 데는 나름 정치적인 이유가 있었다. 프로이센은 영국, 프랑스, 네덜란드처럼 아프리카나 동남아에 식민지가 없어 커피를 수입해야 했는데 이 돈이 만만치 않았다. 결국 '쓸데없는' 음료에 국부가 너무 빠져나간다는 정치적·재정적 판단이 이 커피 금지령의 배경이었다.

이에 따라 프리드리히 대왕은 수입 커피를 국가가 독점 매입하고, 귀족이나 성직자, 고위관리 등 소수 개인에게만 커피 로스팅 면허를 주는 등 단호한 조치를 취했다. 결국 커피 판매면허는 일종의 특권이 되고 평민층은 커피를 거래할 수 없게 됐다. 그 결과 일시적으로는 국고 수입이 늘긴 했는데 문제는 민중의 대응이었다. 짐작하다시피 이미 커피에 맛들인 평민들은 불법 로스팅, 무면허 거래 그리고 치커리 등을 이용한 대용 커피로 저항의 출구를 찾았다.

이 같은 저항을 억누르기 위해 기득권층이 도입한 것이 바로 '커피 스니퍼'다. 스니퍼란 '냄새 맡는 사람' '(냄새) 탐지기'란 뜻이다. 국가의 허가를 받지 않은 로스팅, 커피 거래를 단속하기 위해 상이군인들을 고용했으니 이들이 '커피 스니퍼'로 불렸다. 불법 커피 냄새를 킁킁 거리며 찾아다녔기에 붙은 이름이다.

그러나 국가가 커피 사업 독점을 통해 벌어들이는 수입보다 불법 커피 유통을 막기 위해 투자해야 하는 지출이 더 많아지면서 이 신종 직업은 얼마 지나지 않아 사라졌다. 결국 1786년 프리드리히 대왕의 사망과 함께 커피에 부과하였던 높은 세금은 낮춰졌고, 로스팅한 커피만 유통을 허용하는 법령도 철폐되었다.

절대군주였음에도 불구하고 이미 생활 음료로 자리를 잡게 된 커피의 소비를 막으려던 시도는 허사로 끝난 셈이다. 오늘날 독일의 커피소비량은 세계 세 번째라니 말이다. 이건 『The Coffee Book』(니나 루팅거 외 지음, 사랑플러스)에 나오는 이야기지만 시장과 권력의 싸움-결국 권력의 패배로 끝나지만-이 어디 커피뿐일까? 18세기, 독일의 사례일 뿐일까.

 

---------------------------------------

이코노텔링 김성희 객원 편집위원 커리커처.
이코노텔링 김성희 객원 편집위원 커리커처.

고려대학교에서 행정학을 전공하고 한국일보에서 기자생활을 시작했다. 2010년 중앙일보 문화부 기자로 정년퇴직한 후 북 칼럼니스트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2008년엔 고려대학교 언론학부 초빙교수로 강단에 선 이후 2014년까지 7년 간 숙명여자대학교 미디어학부 겸임교수로 미디어 글쓰기를 강의했다. 네이버, 프레시안, 국민은행 인문학사이트, 아시아경제신문, 중앙일보 온라인판 등에 서평, 칼럼을 연재했다. '맛있는 책 읽기' '취재수첩보다 생생한 신문기사 쓰기' '1면으로 보는 근현대사:1884~1945' 등을 썼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 서울특별시 서초구 효령로 229번지 (서울빌딩)
  • 대표전화 : 02-501-6388
  • 청소년보호책임자 : 장재열
  • 발행처 법인명 : 한국社史전략연구소
  • 제호 : 이코노텔링(econotelling)
  • 등록번호 : 서울 아 05334
  • 등록일 : 2018-07-31
  • 발행·편집인 : 김승희
  • 발행일 : 2018-10-15
  • 이코노텔링(econotelling)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이코노텔링(econotelling). All rights reserved. mail to yunheelife2@naver.com
  • 「열린보도원칙」 당 매체는 독자와 취재원 등 뉴스이용자의 권리 보장을 위해 반론이나 정정보도, 추후보도를 요청할 수 있는 창구를 열어두고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고충처리인: 장재열 02-501-6388 kpb11@hanmail.net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