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별력 떨어져 인사 난맥상…경력 일천한 이복동생, 고향친구를 주요 보직에 앉혀
'오하이오 갱' 측근들의 부패방종…석유비축기지 둘러싼 뇌물비리 등 터져 禍자초
美역사 엮은 『원더풀 아메리카』 스캔들 파헤치는 야당 비판하는 언론행태 꼬집어

워런 G. 하딩 대통령이라면 어지간히 미국사에 밝은 이라도 낯설 것이다.
1921년 제29대 대통령으로 취임했지만 집권 2년여 만에 급사하는 바람에 이렇다 할 치적을 내세울 게 없기 때문이다.
치적은 커녕 하딩 대통령은 최측근 관련 비리사건으로, 미국 역사상 최악의 대통령으로 꼽힌다.(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이후엔 어찌 될지 모르긴 하다.)
한데 그가 출발부터 이랬던 것은 아니다. 오하이오주 출신인 그는 잘생긴 외모에 겸손하고 친절하며 소박한 성격의 '보통 사람'으로 인기가 높았다. 그랬기에 전쟁(1차 대전)을 마무리한 국제적 인물인 우드로우 윌슨 대통령에 이어 권좌에 올랐다.
출발은 좋았지만 그에게는 두 가지 결정적 결점이 있었다. 우선 그는 '거의 믿을 수 없을 만큼 무지한 사람이었다.' 더 나쁜 것은 하딩이 친구와 조언자들을 선택하는 데 분별력이 없었다는 점이다. 이복동생을 교정국장에 임명하고, 은행 경험이라고는 신탁회사 사장으로 몇 개월 근무한 것이 전부인 고향 매리언의 변호사 친구를 통화감독관으로 임명하는 식이었다.
상황을 악화시킨 것은 '오하이오 갱'이라 불린, 하딩의 오래된 측근들이 저지른 부패였다. 대표적인 것이 '티포트 돔 유전 스캔들'이다. 전쟁에 대비한 석유 비축기지를 선정하는 문제와 관련해 하딩의 측근인 앨버트 폴 내무장관이 뇌물을 받고 특정 회사에 온갖 특혜를 베푼 사건이다.
하딩은 해군 참모총장 관할의 보유지를 내무장관 관할로 이전시켰고, 폴 장관은 이 땅들을 수십만 달러의 뇌물을 받고 맘모스석유회사 등에 공개입찰 없이 임대되도록 했다. 공개 입찰 원칙을 어긴 것은 군사기밀 유지의 필요성 때문이란 이유를 대며.
하딩 대통령은 1923년 알래스카를 방문했다 돌아오는 길에 급성폐렴과 뇌졸중으로 갑자기 사망했다. 한데 하딩의 죽음을 두고 영부인 플로런스가 하딩의 내연녀와 그 딸의 존재를 알고 질투심에서 살해했다는 독살설, '최측근'들이 저지른 부패로 자신의 평생 업적이 불명예로 흔들리게 되자 오명에서 벗어나기 위해 스스로 택했다는 독극물 자살설이 돌았다.
하딩 사후 수백만 달러가 오간 석유 스캔들을 비롯해, 재향군인회, 외국인재산관리국, 미국금속회사 등을 둘러싼 비리의 전모가 속속 밝혀지면서 이런 '음모론'이 힘을 얻기도 했다.
그런데 여기엔 웃지 못 할 후일담이 있다. 새 정부에서 이런 스캔들을 파헤치는 민주당 인사들을 향해 언론은 "흙탕물을 뿌리는 자들" "인격살인자"라고 공격했다. 뿐만 아니라 "정부의 신용을 실추시키는 것은 비애국적인 것이며 부정을 끝까지 조사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은 볼셰비키보다 나을 것이 없다"는 이야기도 나왔다. 요지경 아닌가.
이는 1920년대 "좋았던 미국"의 역사를 그린 『원더풀 아메리카』(F. L. 알렌 지음, 앨피)에 나오는 이야기다. 남의 나라의 흘러간 이야기지만 눈에 쏙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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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대학교에서 행정학을 전공하고 한국일보에서 기자생활을 시작했다. 2010년 중앙일보 문화부 기자로 정년퇴직한 후 북 칼럼니스트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2008년엔 고려대학교 언론학부 초빙교수로 강단에 선 이후 2014년까지 7년 간 숙명여자대학교 미디어학부 겸임교수로 미디어 글쓰기를 강의했다. 네이버, 프레시안, 국민은행 인문학사이트, 아시아경제신문, 중앙일보 온라인판 등에 서평, 칼럼을 연재했다. '맛있는 책 읽기' '취재수첩보다 생생한 신문기사 쓰기' '1면으로 보는 근현대사:1884~1945' 등을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