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1-21 02:25 (목)
영화로 쓰는 세계경제 위기史(11) '바람과 라이온'③美연준 설립의 비밀 작전
영화로 쓰는 세계경제 위기史(11) '바람과 라이온'③美연준 설립의 비밀 작전
  • 이재광 이코노텔링 대기자
  • jkrepo@naver.com
  • 승인 2020.11.30 08:0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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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방과 지역 주(州) 간 갈등속 두 번이나 설립 된 중앙은행은 단명
1914년에 연준이 설립될 때까지 미국은 78년이나 중앙은행 부재
정부대표와 민간 금융가 8명이 모여 극비로 ' 제킬 아일랜드 ' 결의
英잉글랜드銀보다 더 민간중심의 운영 원했으나 정부지분 20%로

"미국 최고위직 은행가 여럿이 몰래 개인 소유의 열차를 타고 뉴욕시를 빠져 나가는 장면을 상상해 보라. ~ 그들은 서로를 성(姓)으로 부르지 않았다. 미국 금융사에서 가장 기이하고 비밀스러운 이 원정이 세상에 발설되지 않도록 하기 위한 조치였다. 나는 지금 그 유명한 '올드리치 통화보고서(Aldrich Currency Report)'가 어떻게 작성됐는지를 있는 그대로 세상에 처음 알리고 있는 것이다."

금융 분야 저술가로 활동하다 훗날 유명 잡지 『포브스』를 창간했던 버티 찰스 포브스(Bertie Charles Forbes). 1916년 10월 19일자의 『레슬리스 위클리(Leslie's Weekly)』에 그가 기고한 이 글은 아주 유명하다.

연방준비제도(연준, Federal Reserve System)와 관련된 초기 상황을 충실하게 보여주는, 그야말로 거의 유일한 기록이기 때문이다. 연준 초기 역사를 연구하는 많은 이들이 이 글을 인용하는 것도 이해가 된다. 짧아서 아쉽지만 그나마 우리는 이 글을 통해 누가 어디서 연준의 첫 그림을 그렸는지 알 수 있게 된다.

1910년 11월 연준 초안이 작성된 곳으로 알려진 제킬 아일랜드의 제킬 아릴랜드 클럽 리조트.
1910년 11월 연준 초안이 작성된 곳으로 알려진 제킬 아일랜드의 제킬 아릴랜드 클럽 리조트.

이 글 내용 중 몇 가지를 보자. 우선 시점. 인용 글에는 나와 있지 않지만 이 글에 나오는 시점은 이 글을 쓰기 6년 전인 1910년 11월 22일 밤이다.

포브스는 이들의 여정에 대해 '비밀 원정(secret expedition)'이란 용어를 썼다. 뉴욕에서 어디론가 비밀리에 떠난다는 얘기였다. 장소는 제킬 아일랜드(Jekyll Island)였다. 조지아주 남쪽에 위치한 이 섬은 1886년 만들어진, 아름답고 유서 깊은 '제킬 아일랜드 클럽'으로 유명한 곳이다. '올드리치 통화보고서'에 대한 내용도 당연히 중요하다. 하지만 이에 대한 설명은 잠시 미루도록 하자.

더 중요한 것은 참석자다. 별 볼 일 없는 사람들이 모였다면 얘깃거리도 되지 않았을 것이다. 참석자는 모두 8명. 정부 측 3명에 민간 금융인 5명이다. 일단 이들의 면면을 보자. 확실히 범상치 않다.

▶정부 측: ①넬슨 올드리치(Nelson Aldrich) : 당시 상원의원이자 1908년 창설된 '미국통화위원회(the National Monetary Commission)의 위원장으로 이 모임의 수장 ②피아트 앤드루(A. Piatt Andrew) : 재무부 차관보이자 미국통화위원회 특별보좌관 ③아더 쉘턴(Arthur Shelton) : 올드리치 의원의 개인 비서

▶민간 금융인: ④프랭크 밴덜립(Frank Vanderlip) : 뉴욕 내셔널시티은행 은행장 ⑤찰스 노턴(Charles D. Norton) : 뉴욕 퍼스트내셔널은행 은행장 ⑥벤저민 스트롱(Benjamin Strong) : 은행의 준비금을 대여해 주는 '은행의 은행' 뱅커스 트러스트(Bankers Trust Company)의 부사장이며 훗날 초대 연준 의장 ⑦헨리 데이비슨(Henry Davison) : 뱅커스 트러스트의 수석 파트너 ⑧폴 와버그(Paul Warburg) : 독일 출신 뉴욕 금융회사 쿤롭(Kuhn, Loeb & Co.) 이사

이 모임은, 포브스가 기술했듯, 철저히 은폐됐다. 참석자 그 누구도 이 모임에 대해 얘기하지 않았다. 포브스가 6년 뒤 이 비밀회의에 대해 썼던 기사도 한참 동안 사실로 인정받지 못했다. 참석자 모두가 이 모임 자체를 부인했던 탓이다. 포브스를 이상한 사람 취급하려는 경향까지 있었다. 포브스의 기사는 요즘 말로 '가짜 뉴스'나 '소설' 수준으로 격하되고 있었던 셈이다.

■ '가짜 뉴스'에서 '유일한 기록'으로...

하지만 시간이 더 가자 상황이 달라졌다. 유명 인사들이었던 만큼 대부분의 참석자가 자서전이나 언론과의 인터뷰를 통해 연준 설립에 대해 각자의 경험과 생각을 전했는데, 이 중 일부가 제킬 아일랜드 모임에 대해 입을 열었던 것이다. 특히 1935년 프랭크 밴덜립은 한 언론 인터뷰에서 제킬 아일랜드를 거론하며 "1910년 말에는 모사꾼처럼 비밀스럽게 남의 눈을 피했다"고 털어놓았다. 그곳에서 그는 연준 초안을 작성했다는 사실도 인정했다.

이로써 포브스의 기사는 '사실'이 됐다. '가짜 뉴스'가 아닌 초기 모임에 대한 거의 유일한 기록으로 인정받게 된 것이다. 이제 제킬 아일랜드의 비밀회의 이후 100년하고도 10년의 세월이 갔다. 엄청난 시간이다. 그렇다면 그날 모임을 가리고 있던 두터운 베일은 완전히 거둬진 것일까. 그렇지 않다. 여전히 모임은 장막에 가려 있다. 하지만 모두의 입을 막을 수는 없는 법. 다행히 일부 내용은 세상 밖에 알려졌다. 자서전, 인터뷰, 취재, 연구 등을 통해 당시 모임과 관련된 내용을 종합해 보았다. 다음처럼 압축될 수 있을 것 같다.

①폴 와버그는 모임 동석자 중 은행 설립에 관한 한 가장 박식했고 그 결과 연준 설립과 관련된 법안 초안은 주로 그가 작성했다. 폴이 속해 있던 쿤룹사는 1867년 독일 출신 은행가인 아브라함 쿤(Abraham Kuhn)과 그의 처남인 솔로몬 롭(Solomon Loeb)이 설립한 미국의 다국적 투자 은행이다. 솔로몬 롭은 이후 사위 제이콥 쉬프(Jacob H. Schiff)를 불러들였고 그는 이후 이 회사 리더가 된다.

②연준의 모델은 잉글랜드은행을 따르기로 했다. 즉 중앙은행의 업무를 수행하나 민간소유로 한다는 것이 핵심. 단 정부지분이 20%였던 잉글랜드은행과 달리 연준은 100% 민간은행으로 추진하기로 했다. 연준의 민간 성격을 더욱 강화하겠다는 취지였지만 실제로는 정부 지분 20%를 없애지는 못했다.

③'중앙은행'이라는 이름은 미국 국민은 물론 정부와 의회 모두에서 인식이 좋지 않으니 이 이름 대신 '제도(system)'라는 이름을 쓴다. 전국 12개 연방준비은행과 기타 의사결정 기구로 운영되는 '제도'임을 강조하는 이름이다.

④연방은행 외에 의사결정기구로 '연방준비제도이사회' 또는 '연방준비제도위원회(Federal Reserve Board)',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Federal Open Market Committee), 그리고 '연방자문위원회(FAC, Federal Advisory Council) 등을 설치한다.

⑤연준의 통제에는 정부와 의회가 참여하지만 실질적인 운영은 대부분의 지분 소유자인 민간은행 또는 개인이 하도록 한다.

이들이 이 모임에서 만든 초안은 거의 대부분 수용돼 법으로 제정된다. 물론 우여곡절이 있었다. 연준의 힘이 너무 커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로 지역의 연준은행 통제권을 연준이사회가 아닌 민간은행 전체 모임에 맡기자는 의견도 나왔다. 물론 이 아이디어는 무산됐다. 1913년 9월 미국 의회에서 통과된 '연방준비법(Federal Reserve Act)'은 이후 상원에서도 대부분의 초안을 받아들인 채 통과됐으며 그해 12월 당시 대통령이었던 우드로우 윌슨(Woodrow Wilson)이 이 법안에 서명함으로써 오늘날까지 세계경제를 쥐락펴락하는 연준의 출범을 공식 선언한다.

1913년 12월 23일 ‘연방준비법’에 서명하는 당시 대통령 우드로 윌슨
1913년 12월 23일 '연방준비법'에 서명하는 당시 대통령 우드로 윌슨

■ 연방-반(反)연방 대립으로 중앙은행 설립-폐쇄 반복...

이 대목에서 우리가 놓치는 게 하나 있다. 연준이 미국 최초의 중앙은행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그럼 두 번째일까? 아니다. 세 번째다. 연준 이전에 미국은 두 차례 중앙은행을 설립한 적이 있었다. 하지만 이 두 중앙은행은 단명하고 만다. 둘 모두 20년 역사를 넘기지 못했다. 첫 번째와 두 번째 중앙은행의 설립과 폐쇄 과정을 지켜보면 몇 가지 새로운 사실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첫 번째 중앙은행이 설립된 해는 1791년이다. 은행명은 '제일미국은행(The First Bank of the United States)'. 미국이 영국으로부터 독립한 게 1776년이니 은행 설립은 15년 뒤 일이다. 미국의 첫 중앙은행은 미국 초대 재무장관이었던 알렉산더 해밀턴(Alexander Hamilton)에 의해 시작됐다. 당시 미국은 미국을 중앙에서, 즉 연방정부 중심으로 운영해야 한다는 '연방주의자(Federalist)'들과 지역인 주(州) 중심으로 운영해야 한다는 '반(反)연방주의자'들과의 갈등이 심했던 시기다. 이 갈등은 연방주의가 대세였던 북부와 반연방주의가 대세였던 남부 간 갈등이기도 했다.

연방주의와 반연방주의 간 갈등의 중심축 하나가 중앙은행이었다. 연방주의자 입장에서는 중앙정부의 힘을 강화하고 전쟁으로 망가진 나라 경제를 살리기 위해 중앙은행은 반드시 필요했다. 하지만 반연방주의자들은 중앙집권 강화라는 바로 그 이유에서 중앙은행 설치를 반대했다.

결국 '중앙은행 설립과 그로 인한 연방정부 권력 강화'의 공식에 대한 찬성과 반대였다. 찬성파를 이끌었던 인물이 연방주의자였던 해밀턴 재무장관이었다면 반대파를 주도했던 인물은 초대 국무장관이자 이후 대통령까지 지낸 거물 토마스 제퍼슨(Thomas Jefferson)이었다.

당시 중앙은행 설립과 관련된 갈등은 여야 간 갈등이 아니었다. 지금으로 치면 한 정부 내 재무장관과 국무장관 간 갈등이었다. 물론 이후 제퍼슨은 장관직을 사직하고 다른 정치 노선을 걷게 되니 이것이 오늘날 미국 민주당의 시조가 된다.

어쨌거나 당시 같은 정부 내 두 장관 간 싸움에서의 승자는 해밀턴이었다. 그는 1790년 『국립은행 보고서(Report on a National Bank)』를 제출했고 다음해 2월 국회를 통과함으로써 미국 최초의 중앙은행이 빛을 보게 됐다.

그러나 이 은행의 수명은 20년 뒤 끝난다. 1811년 하원에서 65대 64 한 표 차로 중앙은행의 기간 연장이 무산됐고 상원에서는 17대 17로 같은 표가 나왔지만 부통령 조지 클린턴(George Clinton)이 '연장 반대'에 한 표를 던짐으로써 미국 최초의 중앙은행이 종말을 고했던 것이다.

이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던 것은 클린턴 부통령이었지만 그 배경에 제퍼슨이 있었다. 제퍼슨은 1800~1808년 제3대 대통령을 지내며 여전히 중앙은행에 대한 불만을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1811년 투표 때는 없었지만 그 후배들이 그의 정신을 계승했던 것. 클린턴 당시 부통령은 제퍼슨 시대에도 부통령을 지낸 적이 있는 명실 공히 '제퍼슨 사람'이었던 것이다.

미국 필라델피아에 있었던 첫 번째 중앙은행 제일미국은행
미국 필라델피아에 있었던 첫 번째 중앙은행 제일미국은행

그러나 '중앙은행 없는 미국'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첫 번째 중앙은행이 없어진지 5년 만에 다시 생겨났던 것이다.

두 번째 중앙은행의 설립 배경에도 '전쟁'이 있었다. '영미전쟁'으로 이름 붙여진 영국과의 전쟁이었다. 첫 번째 중앙은행이 폐지된 다음해 벌어진 이 전쟁은 그다지 중요한 전쟁으로 여겨지지 않는다.

아이들 교과서에서도 별로 다뤄지지 않는다. 그러나 금융사 측면에서는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이 전쟁으로 미국은 너무 많은 빚을 졌고 나라를 이끌려면 더 많은 빚이 필요했던 것이다.

■ 영미전쟁으로 두 번째 중앙은행 만들어져...

우리가 이미 잉글랜드은행의 설립과정을 통해 알게 됐듯 중앙은행은 정부가 빚을 쉽게 많이 얻으려면 중앙은행이 필요하다. 당신 대통령이었던 제임스 메디슨은 1815년 겨울 두 번째 중앙은행 설립을 승인했고 다음해인 1816년 '제이미국은행(The Second Bank of the United States)'이라는 이름의 두 번째 중앙은행 설립됐다. 미국의 제4대 대통령으로 1809년부터 1817년까지 재임했던 매디슨 대통령은, 이로써, 중앙은행을 없앴다가 다시 만든, 미국 역사에 희귀한 경력을 지닌 대통령이 됐다.

두 번째 중앙은행 제이미국은행
두 번째 중앙은행 제이미국은행

두 번째 중앙은행 설립의 또 다른 이유는, 아이러니하게도, 첫 번째 중앙은행의 폐쇄에 따른 것이었다.

제일미국은행의 폐쇄는 바로 미국 전역에 심각한 문제를 일으켰다. 중앙은행의 부재의 결과 지방은행이 발흥했고 많은 지방은행이 각 지역의 은행권을 발행하면서 심각한 인플레 압력이 부상했던 것이다. 1809년 92개였던 주(州)은행이 380만 달러의 은행권을 발행했는데 1812년에는 212개 은행에서 2000만 달러에 이르는 은행권을 발행하기에 이른다. 은행 수는 약 2배, 은행권 액수는 5배 이상 증가한 수치다.

이 같은 배경 아래 설립된 두 번째 중앙은행의 폐쇄 이유 또한 대단히 아이러니하다. 통화가 과다하게 발행되면 인플레이션이 발생한다는 사실은 이제 초등학생도 안다. 그러니 인플레이션을 잡으려면 통화량을 조절해야 한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대출 축소, 그리고 일시적 경기수축은 필연적이다.

제일미국은행은 이 역할을 제대로 수행한 것으로 평가받는다. 그 결과 대출 축소와 불황도 왔다. 특히 지역은행이 많고 은행권 발행이 과다했던 서부지역의 불황이 심각했다. 1819년 서부지역을 강타했던 심각한 불황의 원인으로 새롭게 생겨난 두 번째 중앙은행이 원성의 타겟이 됐다. 중앙은행에 대한 서부의 대토지 소유주들의 피해의식과 분노는 하늘을 찔렀다.

미국의 일곱 번째 대통령으로 1829년에서 1837년까지 재임한 앤드류 잭슨(Andrew Jackson)도 그중 하나였다. 그리고 주(州)의 자치를 강조해 왔던 반연방주의자였다. 1828년 선거에서 승리한 잭슨은 취임 즉시 중앙은행을 몰아세우기 시작했다. 금융사에서는 이때부터의 시기를 '은행과의 전쟁' 시기로 말한다. 통화를 안정적으로 운영하지도 못했고 중앙은행이 합법적이지 않다고 까지 했다.

앞서 말했듯 헌법에서는 민간은행의 법정 화폐 발행을 인정하지 않고 있었으니 이는 사실이었다. 잭슨 대통령은 미국제이은행의 종식을 원했고 결국 그렇게 됐다.

미국 중앙은행의 설립, 폐쇄와 관련된 많은 인물들이 미국의 화폐인물로 선정, 존경을 받고 있다. 첫 번째 중앙은행을 폐쇄한 뒤 5년 만에 두 번째 중앙은행을 설립한 미국의 4대 대통령 제임스 메디슨은 5000달러 지폐의 주인공이다.
미국 중앙은행의 설립, 폐쇄와 관련된 많은 인물들이 미국의 화폐인물로 선정, 존경을 받고 있다. 첫 번째 중앙은행을 폐쇄한 뒤 5년 만에 두 번째 중앙은행을 설립한 미국의 4대 대통령 제임스 메디슨은 5000달러 지폐의 주인공이다.

미국의 첫 번째 중앙은행이 폐쇄되고 두 번째 중앙은행이 생길 때까지의 기간은 비교적 짧다.

첫 번째 중앙은행이 1791년에 설립돼 1811년 문을 닫았고 두 번째 중앙은행이 1817년 세워져 1836년 문을 닫았으니 미국의 중앙은행이 만들어진 45년 동안 중앙은행이 없었던 기간은 고작 5년에 불과했다.

미국 정부는 폐쇄 5년 만에 다시 중앙은행의 필요성을 절감했던 것이다. 하지만 두 번째 중앙은행 부재의 기간은 다르다. 앞서 말한 대로 미국의 세 번째 중앙은행인 연준은 1913년에 입법이 완료됐고 다음해인 1914년 공식 출범했다. 두 번째 중앙은행이 문을 닫은 이후 무려 78년이나 지난 후였다. 우리는 여기서 세 가지 의문을 갖게 된다. 첫째, 무려 78년 동안 중앙은행 없이 지낸 이유는 무엇일까, 둘째, 중앙은행 없이 미국경제는 어떻게 운영될 수 있었을까, 셋째, 오랫동안 없었던 중앙은행이 20세기 들어 재론되며 1914년 마침내 출범된 이유는 무엇일까. 이 흥미진진한 이야기들은 다음 회에 이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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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재광 이코노텔링 대기자 ❙ 한양대 미래인재교육원 겸임교수❙전  한양대 공공정책대 학원 특임교수❙사회학(고려대)ㆍ행정학(경희대)박사❙경기연구원 선임연구위원, 뉴욕주립대 초빙연구위원, 젊은영화비평집단 고문, 중앙일보 기자 역임❙단편소설 '나카마'로 제36회(2013년) 한국소설가협회 신인문학상 수상❙저서 『영화로 쓰는 세계경제사』, 『영화로 쓰는 20세기 세계경제사』, 『식민과 제국의 길』, 『과잉생산, 불황, 그리고 거버넌스』 등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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