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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희의 역사갈피]美대선 판도를 바꾼 에어컨
[김성희의 역사갈피]美대선 판도를 바꾼 에어컨
  • 이코노텔링 김성희 객원 편집위원
  • jaejae99@hanmail.net
  • 승인 2020.11.09 09: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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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쇄공장서 잉크 번지게 하는 습기 제거장치 개발하다 '주택용 에어컨'으로 발전
열대의 습기와 사막 기후인 '플로리다주' 로 은퇴자 몰려들어 '보수지역' 탈바꿈
여름에 대작 상영 꺼리던 영화관이 시원해지자 '블록버스터' 제작시기에도 변화
ⓒ이코노텔링그래픽팀
ⓒ이코노텔링그래픽팀

요즘은 어지간한 곳이면 흔히 볼 수 있는 에어컨이 미국 경제와 정치, 나아가 세계 판도에 영향을 미쳤다면 수긍할 이가 얼마나 될까. 역사의 물줄기는 언뜻 사소한 사건, 무명의 인물의 행위로 바뀌기도 하는데 파급효과를 보면 에어컨도 그에 해당된다.

에어컨은 더위를 이길 냉기를 뿜어내는 단순한 기계가 아니다. 미국 대통령 선거 때면 전체 판세를 가를 정치적 요지로 언급되는 플로리다 주가 큰 목소리를 내게 된 것은 에어컨에 힘입은 바가 크단다.

미국 남부인 텍사스 주 출신의 조지 부시 대통령이 이라크 공격을 주도한 것 역시 따지고 들면 에어컨의 영향이 있었단다. 이는 미국 과학저술가인 스티븐 존슨이 쓴 『우리는 어떻게 여기까지 왔을까』(프런티어)에 나오는 이야기다. 그의 설명을 들어보자.

1902년 미국 브루클린의 인쇄공장에서 일하던 윌리스 캐리어라는 공학자가 습기 제거 장치를 개발했다. 습한 여름에 잉크가 번지는 걸 방지하기 위한 목적이었지만 뜻밖에 주변 공기까지 시원하게 하는 부작용(?)이 있었다. 그러자 직원들이 이 기계 옆에 모여 점심을 먹는 것을 보고 산업용 공기조절장치를 개발하게 된다. 이것이 더욱 발전해 1925년 여름 뉴욕 맨해튼의 한 극장에서 실험용 공기조절 시스템을 선보이면서 여름이면 대작 개봉을 꺼리던 영화 제작 풍토가 바뀌었다.

이건 경제에 미친 영향인데 '에어컨 효과'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1940년대 창문형 가정용 에어컨이 시판되면서 미국 정치지형이 달라진다. 열대의 습기와 따가운 사막 기후에서도 쾌적한 삶이 보장되자 미국 남부와 남서부의 이른바 '선 벨트' 지역으로 인구가 이동했기 때문이다. 플로리다 주의 경우 1920년대 100만 명에 불과하던 주민이 반세기 만에 1,000만 명이 넘어, 미국에서 인구가 가장 많은 네 주 중 하나로 탈바꿈했을 정도다.

이에 따라 1940년부터 1980년 사이에 남부 지역의 대통령 선거인단 수는 29명이 증가한 반면 북동부와 중서부에선 31명이 줄었다. 또 상대적으로 보수적인 은퇴자들이 대거 몰려들면서 민주당 아성이었던 남부가 공화당 우세로 바뀌었다. 그 결과 20세기 전반기에는 대통령과 부통령 중 두 명만 남부 출신이었지만 1952년부터 대통령이나 부통령 중 한 명은 선벨트 지역 출신인 것이 전통처럼 굳어졌다. 그러니 조지 부시 전 대통령의 당선에는 에어컨 바람이 조금은 들어갔다 할 수 있지 않을까.

『우리는 어떻게……』는 역사 흐름을 넓고 깊게 살피는 '롱 줌(long zoom) 역사'라고 하는 독특한 시각을 취해 이 같은 이야기를 들려주는데 나름 설득력이 대단하다. 지은이가 유리, 냉기, 소리, 청결, 시간, 빛을 주제로 이 책에서 짚은 발명, 기술 이야기는 흥미롭기도 하거니와 읽고 나면 세상을 보는 눈이 조금은 바뀌지 싶다.(북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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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코노텔링 김성희 객원 편집위원 커리커처.
이코노텔링 김성희 객원 편집위원 커리커처.

고려대학교에서 행정학을 전공하고 한국일보에서 기자생활을 시작했다. 2010년 중앙일보 문화부 기자로 정년퇴직한 후 북 칼럼니스트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2008년엔 고려대학교 언론학부 초빙교수로 강단에 선 이후 2014년까지 7년 간 숙명여자대학교 미디어학부 겸임교수로 미디어 글쓰기를 강의했다. 네이버, 프레시안, 국민은행 인문학사이트, 아시아경제신문, 중앙일보 온라인판 등에 서평, 칼럼을 연재했다. '맛있는 책 읽기' '취재수첩보다 생생한 신문기사 쓰기' '1면으로 보는 근현대사:1884~1945' 등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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