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작 1~3위 '아디다스 운동화' 신어…거짓은 아니지만 유리한 면만 골라

"상위 입상자 7명 중 무려 네 명이나 우리 제품을…"
1972년 미국 오리건주 유진에서 열린 올림픽 육상선수 선발대회 직후, 나이키사는 이런 대대적인 광고를 펼쳤다. 장거리 주자 몇 명이 특별히 디자인한 자사 제품을 신고 뛰어난 성적을 거뒀다는 마케팅 전략이었다.
사실 나이키 운동화는 특별하긴 했다. 기존 운동화에 비해 웨지(선저형) 힐, 충격을 흡수하는 쿠션식 중간 바닥, 그때까지 사용되던 캔버스 천보다 가볍고 통기성이 좋은 나일론 천을 채용한 획기적 신제품이었으니 자랑할 만했다.
발소리가 나지 않기 때문에 '스니커'(몰래 걷는 사람)이란 이름을 얻은 고무 밑창 운동화는 1860년대에 등장했다. 찰스 굿이어가 고무와 황을 섞어 부드럽고 탄력 있는 고무를 만드는 가황법을 개발한 덕분이었다. 이후 1960년대 초까지 운동화는 기본 디자인에 거의 변화가 없었다. 캔버스 천의 신발에 고무 밑창을 아교로 붙인 형태가 몇 십 년 간 유지됐다.
이 무렵 오리건대학의 육상선수였던 필 나이트는 가벼운 신발을 신으면 기록이 좋아질 것이라 여겨 1962년 코치 빌 바우먼과 함께 아예 운동화 회사를 차려 세계 최고급 일본제 운동화를 수입해 팔았다. 일제 운동화는 가벼워서 좋았지만 이들은 발이 땅에 닿을 때 생기는 마찰력을 키운다면 선수들이 더 좋은 성적을 거둘 수 있을 거라 생각해 신형 밑창을 구상했다.
당시에는 많은 운동화업자들이 자동차 타이어용으로 개발된 얕은 요철 형태의 고무 밑창을 사용하던 터였다. 한데 어느 날 아침 와플구이틀을 보고는 아이디어가 떠오른 바우먼은 고무를 구이틀 안에 부어 가열한 끝에 깊은 와플 형태의 밑창을 만들어냈다. 뛰어난 시장경쟁력을 갖춘 '신형' 운동화의 탄생이었다.
이 신제품에는 '나이키스'란 이름이 붙여졌다.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날개 달린 승리의 여신 이름이었다. 그리고 오리건에서 열린 올림픽 예선을 계기로 대대적인 마케팅을 펼쳐 세계적인 스포츠용품사로 우뚝 서는 디딤돌을 확보했다.
한데 나이키의 성공 뒤에는 숨겨진 이야기가 있다. 오리건 예선에서 1~3위는 서독의 아디다스사 운동화를 신은 선수들이었다는 사실이다. 나이키사는 거짓말은 하지 않았지만 '선택적 진실'만을 홍보해서 유리한 고지에 올라섰던 셈이다. 성공은 모든 추문을 미화하거나 적어도 감춘다. 분야와 고금을 가리지 않고 이런 편법이 이뿐이랴마는.
이 흥미로운 이야기는 찰스 패너티가 쓴 『배꼽티를 입은 문화』(자작나무)에 실렸다. 미국의 과학 전문 저널리스트인 패너티는 1990년대 말 10여 권의 번역서가 쏟아질 정도로 우리 출판계의 인기 저자였다. 요즘으로 치면 빌 브라이슨이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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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대학교에서 행정학을 전공하고 한국일보에서 기자생활을 시작했다. 2010년 중앙일보 문화부 기자로 정년퇴직한 후 북 칼럼니스트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2008년엔 고려대학교 언론학부 초빙교수로 강단에 선 이후 2014년까지 7년 간 숙명여자대학교 미디어학부 겸임교수로 미디어 글쓰기를 강의했다. 네이버, 프레시안, 국민은행 인문학사이트, 아시아경제신문, 중앙일보 온라인판 등에 서평, 칼럼을 연재했다. '맛있는 책 읽기' '취재수첩보다 생생한 신문기사 쓰기' '1면으로 보는 근현대사:1884~1945' 등을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