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10-23 20:30 (금)
영화로 쓰는 세계경제 위기史(11) '바람과 라이온'① 聯準은 민간금융기관?
영화로 쓰는 세계경제 위기史(11) '바람과 라이온'① 聯準은 민간금융기관?
  • 이코노텔링 이재광 대기자
  • jkrepo@naver.com
  • 승인 2020.10.13 08: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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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연준, 최근 양적완화 정책펴면서 민간증권사 발행 파생상품까지 매입하는 파격행보에 세계가 주목
스웨덴의 스톡홀름은행이 첫 '중앙은행 노릇…장기대출 장사하면서 돈 펑크나자 '은행권'지나친발행
1694년 설립 '영란(英蘭)은행'이 발권력 갖춘 중앙은행 효시 … 美언준의 지분구조 아직 미공개논란

세계경제가 팬데믹의 늪에 빠져 허덕인다. 이를 구할 이 과연 누구인가. 많은 이들이 말한다. 미국의 연방준비제도(연준, Federal Reserve System)가 최강의 구원투수라는 것이다. 2020년 10월 현재 이 같은 주장에 반대할 사람은 거의 없어 보인다.

실물경제가 다 망가졌지만 주식 등 자산가치가 천정부지로 올라가는 것도 다 연준 덕이라고 생각한다. 하루 사이 나스닥이 4~5% 급락하면서 '민스키 모멘트'가 다시 인구에 회자됐지만 "향후 5년 동안 금리를 올리지 않겠다"는 연준의 말 한마디에 투심(投心)은 다시 제자리를 잡았다. 그만큼 연준은 강하다.

이번 경제위기와 관련해 특히 눈길을 끄는 단어가 하나 있다. 약어로는 QE, 흔히 '양적완화'로도 불리는 '양적통화완화(Quantitative Monetary Easing)'가 그것이다. 양적완화는 제1차 세계대전 직후의 독일이나 남미의 개도국 볼리비아나 베네수엘라처럼 그냥 돈을 찍어내는 것이 아니다. 그냥 돈을 뿌리면 수십 또는 수백 %의 하이퍼인플레이션이 발생해 국가경제가 초토화된다. 양적완화 개념은 이 같은 문제를 사전에 예방하자는 취지에서 비롯됐다. 즉, 정부가 국채를 발행하고 연준이 이를 구매하는 방식을 씀으로써 돈을 찍거나 살포하는 데 한정을 두자는 의미다. 보통 경제가 어려우면 금리를 낮추는 게 일반적이다. 하지만 금리가 0%에 가까우면 더 이상 이 정책을 쓰기가 어렵다. 이럴 때 필요한 게 바로 '양적완화'다.

■ 양적완화 ··· 2001년 일본작?

이 양적완화 정책이 처음 쓰인 것은 2000년대 초 일본이라고 알려져 있다. 이에 대한 두 가지 근거가 있다. 첫째, 1999년 초 금리도 물가도 거의 0에 가까워지자 그해 2월 일본은행 정책회의에서 한 위원이 "통화기반을 공략해 양적 완화를 실시해야 한다"는 기록이 남아 있고, 둘째, 2년 뒤인 2001년 3월 양적 완화 정책이 실제로 실시됐다는 것이다. 그러다 2008년 말 미국 연준이 서브프라임모기지 위기의 극복을 위해 이 정책을 쓰며 널리 알려졌다고 한다.

실제로 그해 11월 25일 연준은 "정부보증 모기지업체(GSE)의 모기지 증권 매입에 6000억 달러를 투입해 주택보유자들을 돕고 주택시장 안정을 꾀할 것"이라며 양적완화의 포문을 열었다.

2000년 4월부터 2001년 4월까지 일본 85대 총리였던 모리 요시로(森喜朗). 2008년 서브프라임모기지 위기 이후 널리 알려진 ‘양적완화(QE)’ 정책은 그가 총리로 재직했던 2001년 3월 처음 실시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2000년 4월부터 2001년 4월까지 일본 85대 총리였던 모리 요시로(森喜朗). 2008년 서브프라임모기지 위기 이후 널리 알려진 '양적완화(QE)' 정책은 그가 총리로 재직했던 2001년 3월 처음 실시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양적완화 정책이 2001년 3월 일본에서 시작됐고 2008년 미국이 이를 적극적으로 수용해 세계의 주요 정책이 됐다는 이 말은, 사실은, 틀렸다.

'양적완화'란 용어는 새로울 수 있겠으나 국공채 중심의 채권 매입을 통한 중앙은행의 유동성 공급정책은, 교과서에도 실려 있는, 그래서 늘 있을 수 있는, 흔한 정책이다.

중앙은행의 통화공급정책은 ①공식적 용어로는 '공개시장조작(Open Market Operation)'으로 불리는 양적완화 정책 외에 ②시중은행의 지급준비금을 조정하는 '지급준비금(Reserve Requirment)' 정책 그리고 ③중앙은행의 시중은행에 대한 대출 금리를 조정하는 '재할인율(Rediscount Rate)' 정책이 있다.

양적완화정책이 21세기에 등장했다는 것은 역사적인 관점에서도 어불성설(語不成說)이다. 앞으로 더 자세히 얘기하겠지만, 국채를 발권(發券)과 연계시킨 것은 아주 오래됐다. 1694년 발권력을 가진 세계 최초의 중앙은행인 잉글랜드은행의 '발권' 역시 '국채'와 연동돼 있다. 그리고 이때의 국채는 '공식적으로 발행된 최초의 국채'로 기록돼 있다.

따라서 '국채'와 '발권'의 연계는 중앙은행 및 국채의 역사, 나아가 양적완화의 역사와 같다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2016년 잉글랜드은행 내부 연구 인력이 발간한 보고서 『양적완화: 지금까지의 이야기(QE: the story so far)』에서도 이 같은 사실을 적시하고 있다. 발권과 국채 등 자산매입에 따른 "중앙은행의 대차대조표 확대(Central Bank balance sheet expansions)는 전혀 새로운 것이 아니다"라며 잉글랜드은행의 사례를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 파생상품까지 사는 美 중앙은행 연준

그런데 2020년 '팬데믹 위기'를 계기로 연준은 전혀 새로운 양적완화 방식을 도입했다. 이 '새로운 방식'은 따져 보면 하나인데, 이름은 두 개다. '무한양적완화(Unlimited Quantitative Easing)'란 이름과 '양적ㆍ질적완화(Quantitative and Qualitative Monetary Easing)'가 그것이다. 우선 '양적ㆍ질적완화'를 보자.

이는 '양'만이 아니라 '질(質)'도 중시하라는 얘기와 다름 아니다. 문제는 '질'이 갖는 함의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하자. 돈을 찍어 '국채'뿐 아니라 '민간이 발행한 증권'도 사겠다는 것이다. 여기에는 회사채나 주식은 물론 2008년 서브프라임모기지 사태 때 문제가 됐던 부동산담보대출증권(MBS)은 물론 부채담보부증권(CDO) 등 금융파생상품까지 포함돼 있다. 그러니 돈이 무한정 필요하고 그러니 '무한양적완화'란 이름도 붙어 있다.

연준이 이처럼 파격적인 정책을 펴는 데에는 당연히 그만한 이유가 있다. 이번 팬데믹으로 인한 위기가 워낙 심대해 예전 방식으로는 대처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 정책에는 근원적인 문제가 있다. 중앙은행의 영역을 훨씬 넘어선다는 것이다. 중앙은행이 민간의 회사채 시장이나 주식시장까지 진출하다니.

게다가 위험천만한 파생상품까지 매수한다니. 시장경제에서 상품 거래는 시장에 맡기는 것이 맞다. 연준의 대책은 시장경제 체제의 근간을 흔드는 일이다. 위험에 처한 기업들 다수가 연준의 자산이 될 수도 있고 자칫 연준이 매입한 거대 파생상품이 파산할 경우 국민 세금으로 그 구멍을 메워야 하는 일까지 생긴다. 보통 때라면 생각할 수도 없는 일이다.

그러나 세상은 연준 편이다.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이 별로 없어 보인다. 그만큼 경제가 전대미문의 위기라는 의미일 게다. 하지만 이 논리에도 허점이 있다. 연준에게 이 같은 광범위한 역할을 맡겨도 되는 것일까? 여기에 대해 명쾌하게 답할 사람도 없다. 미국의 중앙은행 아니냐고? 한국의 한국은행, 일본의 일본은행, EU의 중앙은행 ECB처럼? 아, 물론 기능은 그렇다 할 수 있다.

금리를 결정하고 법정 통화를 찍어내니 말이다. 그러나 다른 나라 중앙은행과는 많이 다르다. 무엇보다 연준은 은행이 아니다. 이름을 보라. '은행(Bank)'이 아니고 '제도(System)'다. '연방(Federal)'이란 단어가 있기는 하지만 또한 국가 기관도 아니다. 오랜 세월 연준의 지배구조가 투명하지 못하다는 문제도 끊임없이 제기돼 왔다. 연준, 누가 주인인가, 그 정체는 뭔가?

연준을 이해하려면 당연히 연준과 관련된 법을 봐야 할 것이다. 연준은 1913년 12월 미국 의회에서 '연방준비법(Federal Reserve Act)' 통과로 법적 지위를 얻었다. 그리고 그 다음해인 1914년 본격 출범했다. 이 법은 대공황기였던 1935년 한 차례 수정되기는 했으나 골격에는 큰 변화가 없다. ①물가안정을 최우선 목표로 삼아 금리와 통화량을 결정하고 ②이를 위해 ▶'연방준비제도이사회' 또는 '연방준비제도위원회(Federal Reserve Board)'와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Federal Open Market Committee), 그리고 ▶'연방자문위원회(FAC, Federal Advisory Council) 등의 의사결정기구를 두고 ③미국 12개 지역에 '연방준비은행(Federal Reserve Bank)'을 설치, 해당지역의 연준 정책을 실행한다는 것이다. 또 ④인사와 관련해서는, 대통령이, 상원의 권고와 동의를 얻어 위원회 위원 7명을 임명하고 이중 한 명을 위원장에 임명한다는 내용도 중요하다.

■ 연준 지배자, 아직도 베일 속

2013년과 2014년에는 연준에 대한 재평가 작업이 있었다. 연준 관련법과 연준이 탄생 100주년 맞았던 시기였기 때문이다. 2013~14년 많은 논의가 있었지만 연준에 대한 의구심은 여전했다. 연준은 분명 미국의 중앙은행 역할을 맡고 있다.

1668년 설립된 세계 첫 중앙은행인 스웨덴의 릭스방크는 발권력이 없었다. 따라서 1694년 설립된 잉글랜드은행을 근대적 의미의 첫 중앙은행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잉글랜드은행을 모델로 1914년 설립된 연방준비제도. 사진=릭스방크
1668년 설립된 세계 첫 중앙은행인 스웨덴의 릭스방크는 발권력이 없었다. 따라서 1694년 설립된 잉글랜드은행을 근대적 의미의 첫 중앙은행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잉글랜드은행을 모델로 1914년 설립된 연방준비제도. 사진=릭스방크

그런데 엄밀하게 따지면 국가 기관이라 할 수 없다. 소유는 분명 민간 금융기관으로 돼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분구조가 아직도 공개되지 않았다. 미국은 물론 세계경제에 절대적인 권력을 행사하는 연준의 주인 또는 최대 권력자가 밝혀지지 않은 것이다.

만들어진지 무려 100년이 넘게 지났는데 연준은 여전히 미스터리 조직으로 남아 있는 게 사실이다. 그러니 온갖 루머와 음모론에 시달리는 것도 한편으로 당연하다.

잉글랜드은행
잉글랜드은행

비밀스러운 조직 연준. 민간 보유임에도, '무한 양적완화'라는, 상상을 뛰어넘는 정책을 펼치며 국가의 수준을 뛰어넘는 연준. 도대체 연준은 어떻게 이 같은 활동이 가능한 것일까? 미국경제와 세계경제를 이해하려면 연준을 이해하는 것이 첩경이다. 그리고 이를 위해서는 연준과 관련된 두 가지 기원에 대해 알아야 한다.

첫째, 은행, 그중에서도 중앙은행 그 자체다. 은행, 특히 중앙은행은 언제 어떻게 시작됐으며 또 누가, 어떤 방식으로 운영했던 것일까? 이것이 바로 지금의 연준을 이해하는 첫 번째 '고리'다. 둘째는 연준 설립의 '직접적인 계기를 준 기원'에 대한 것이다. 연준은 앞서 말한 대로 1913~14년 간 출범했다. 그렇다면 연준 출범의 계기는 그 이전이 될 것이다. 그렇다. 결론부터 말한다면 1907년 금융위기다. 연준은 이 금융위기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탄생한다. 엄청난 비화(祕話)를 안고.

연방준비위원회
연방준비위원회

우선 '중앙은행'이라는 것에 대해 알아보자. 역사상 최초의 중앙은행으로 기록돼 있는 것은 1668년 스웨덴에서 설립된 릭스방크(Riksbank)다. 350년이 지났지만 이 은행은 지금도 스웨덴의 중앙은행으로 굳건하게 자기 자리를 지키고 있다. 하지만 이 은행을 '최초의 중앙은행'으로 부르기에는 뭔가 부족하다는 의견이 있다.

설립 이후 상당 기간 동안, 중앙은행이 갖는 최대 강점이자 특징인 '발권력(發券力)'이 없었기 때문이다. 돈을 찍어낼 수 없는 은행도 중앙은행이라 할 수 있을까? 여기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도 꽤 있다.

세계 최초의 중앙은행으로 여겨지는 스웨덴 릭스방크에는 왜 발권력이 없었을까? 사연이 있다. 릭스방크는 전신(前身)이 있었다. 스톡홀름은행이다. 1657년 요한 팔름스트루크스(Johan Palmstruchs)라는 은행가 겸 사업가가 세운 이 은행에는 '세계 최초의 국영은행'이라는 수식어가 붙어 있다. 그는 본래 네덜란드 사람이다. 당시 네덜란드는 당대 최강의 군사력과 경제력을 자랑하고 있었다. 1648년 스페인과의 전쟁에서 승리하며 독립을 쟁취한 뒤 패권을 이어받은 힘도 모두 여기서 비롯됐다.

은행업도 당연히 네덜란드에서 발전했다. 당시 세계경제와 무역의 중지였던 암스테르담에는 1609년 근대 은행의 원형으로도 평가받는 암스테르담은행이 설립되기도 한다. 이탈리아의 많은 은행처럼 암스테르담은행 역시 결제기능 중심으로 발전해 나갔다.

■ 스톡홀름은행, 최초의 공적 지폐 발행

팔름스트루크스는, 네덜란드, 그것도 암스테르담에서 사업과 은행업 일을 했던 사람이다. 돈과 관련해 성공한 무수한 사람처럼, 머리 잘 돌아가고 재주 많고 기회 포착에 능했다. 암스테르담에서 사업을 했던 그는 특히 은행 업무에 대한 다양한 아이디어를 갖고 있었다. 1647년 30대 중반의 나이에 스웨덴에 건너 온 그는 네덜란드에서 갈고 닦은 자신의 아이디어를 실현시키려 했다. 한 마디로 국영은행을 설립하자는 것. 그는 이를 스웨덴의 쿠스타프 왕에게 제안한다. 그는 왕에게 두 차례나 거절당했지만 세 번째 도전에서는 성공한다. 수익의 50%를 주겠다는, 왕이 거절하기 어려운 제안을 냈던 것이다. 이렇게 태어난 스톡홀름은행에는, 그래서, 팔름스트루크스은행이라는 또 다른 이름이 붙어 있다.

스톡홀름은행의 향후 업무를 보면 팔름스트루크스는 확실히 혁신가였던 것으로 보인다. 은행 업무와 관련해 그는 그 이전까지는 아무도 하지 않았던 일을 해냈기 때문이다. 그는 스톡홀름은행 설립 후 두 가지 새로운 일을 고안해 냈다.

세계 최초의 지폐는 11세기 중국 송나라 때 만들어진 ‘교자(交子)’(⑤)로 본다. 마르코 폴로에 의해 서양에도 알려진 이 지폐는 이탈리아를 시작으로 유럽 전역에 퍼진 것으로 알려져 있다. 여러 가지 설(設)이 있으나, 서양 최초의 지폐는, 일반적으로, 1659년(또는 1661년) 스웨덴의 중앙은행 릭스방크의 전신(前身)인 스톡홀름은행(Stockholms Banco)이 발행한 것으로 받아들여진다(⑥).
세계 최초의 지폐는 11세기 중국 송나라 때 만들어진 '교자(交子)'(사진)로 본다. 마르코 폴로에 의해 서양에도 알려진 이 지폐는 이탈리아를 시작으로 유럽 전역에 퍼진 것으로 알려져 있다. 여러 가지 설(設)이 있으나, 서양 최초의 지폐는, 일반적으로, 1659년(또는 1661년) 스웨덴의 중앙은행 릭스방크의 전신(前身)인 스톡홀름은행(Stockholms Banco)이 발행한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지금과 같은 '대출'의 개념을 찾아 낸 것이 첫 번째였다. 이전까지의 은행의 주 업무는 예탁금을 근거로 한 결제업무였다. 은행에 맡겨 놓은 고객 예치금을 이자를 받고 돈이 필요한 사람에게 대출해 주자는 개념은 처음이었다. 이를 위해 팔름스트루크스는 은행 설립 초기인 1657년 이와 관련된 허가를 받았다.

그러나 곧 문제가 생겼다. 예금주 돈을 장기로 다른 이에게 대출해 줬는데 1~2년도 안 돼 갑자기 예금주가 돈을 달라고 하는 일이 벌어졌던 것이다. 단기예금-장기대출이 불러온 문제였다. 하지만 그는 해결 방법도 찾아냈다. 1659년 종이돈인 '은행권'을 만들어냈던 것이다.

이 대목에서 '은행권'에 대한, 조금 긴 설명이 필요하다. '은행권'은 한 마디로 '은행에서 발행한 지폐'를 가리킨다. 보통 최초의 지폐는 중국 당나라 때 사용됐던 것을 말하지만, 11세기 중국 송나라 때 사용됐던 '교자(交子)'가 '근대적은 의미에서의 첫 지폐'라는 것이 학계의 통설이다.

'교자'는 정부 책임 아래 발행되는 말 그대로의 '법정 화폐'. 상인들은 금ㆍ은ㆍ동 등 화폐로 사용될 수 있는 금속을 정부에 맡긴 뒤에야 이 지폐를 받을 수 있었다.

원나라 때 이탈리아의 상인 마르코 폴로가 이를 자국에 소개해 이탈리아에서도 이 제도를 모방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같은 이유에서 일부 학자들은 '유럽 은행의 기원'을 이탈리아에서 찾기도 한다. '은행'이나 '은행권'이라는 용어가 이탈리아에서 파생했다는 점도 주요 근거다. '은행'이란 뜻의 '뱅크'는 '테이블'이라는 이탈리아어 '방코'에서 파생했다는 것이다.

유럽최초의 지폐 스톡홀름
유럽최초의 지폐 스톡홀름

이탈이아에서 발행된 유럽 은행권의 초기 형태는, 중국의 '교자'와 마찬가지로, 예탁금 형식이었으며 주로 결제에 사용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탈리아의 역사가이자 언론인인 알렉산드르 마르초 마뇨는 저서 『돈의 발명』에서 1407년 제노바에 설립된 은행 겸 정부 금고인 카자 디 산 조르조가 1586년 발행한 예탁금 액수를 표기한 신용장을 은행권의 전신(前身)으로 본다.

하지만 은행권의 원초적 형태로 거론되는 또 다른 사례가 있다. 앞서 언급했던 1609년 네덜란드에서 설립된 암스테르담은행이 발행했던 것이다. 그러나 이 역시 주로 '결제용'으로 쓰였다는 점에서 한계를 보인다는 게 중론이다. 역사학자들은 보통 스웨덴의 스톡홀름은행에서 발행했던 것을 '최초'로 본다. 하지만 이 역시 결제용을 넘어서지 못했다. 결국 은행권은 200년 넘게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었던 셈이다.

'결제용' 외에 초기 은행권의 또 다른 공통점이 있었다. 금ㆍ은ㆍ동 등 정화와 교환이 가능한 '태환권'이었다는 점이다. 지폐 어딘가에는 "이 지폐를 가지고 오면 은행이 금(또는 은)으로 바꿔드린다"는 문구가 들어있었고 이 말로써 지폐는 그 신용 가치를 인정받았다. 그러나, 늘 그렇듯, 여기에 인간의 탐욕이 끼어든다. 그게 화근이다. 돈은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 많아도 더 갖고 싶은 게 돈이다. 은행도 마찬가지다.

갖고 있는 금ㆍ은ㆍ동의 양보다 많은 지폐를 찍어내 돈을 번다. 결국은 망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렇게 한다. 그래서 어느 날 모라토리엄을 선언한다. 더 이상 지폐를 금ㆍ은ㆍ동으로 바꿔줄 수 없다는 것이다. 국가보증 은행권이라면 모라토리엄 선언은 개별은행이 아닌 국가가 돼야 할 것이다. 1971년 미국의 닉슨 대통령은 이 말을 한 마지막 국정 책임자였다.

■ 연준의 뿌리, 잉글랜드은행

다시 스톡홀름은행으로 돌아가 보자. 이 은행은, 앞서 말했듯, 정부가 보증하는 은행권을 찍었다. 예금자의 계좌를 근거로 대출을 해주고 이자 수익을 올리겠다는 팔름스트루크스의 '혁신적인 방안'은, 이 '정부 보증 은행권'으로 날개를 달았다. 마침내 그의 혁신은 엄청난 성공을 거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일시적인 현상이었을 뿐이다. 돈을 너무 많이 찍어낸 탓에 돈을 정화로 돌려줄 수 없게 됐던 것이다.

결국 은행은 망하고 팔름스트루크스는, 비록 집행되지는 않았지만, 사형 선고를 받고 만다. 그럼에도 스톡홀름은행이 완전히 문을 닫았던 것은 아니다. 은행의 필요성을 인식했던 정부는 이 은행을 스웨덴 중앙은행으로 만들어 다시 문을 열게 했다. 그러나 은행권 발행에 대해서는 회의적이었다. 이 '세계 최조의 중앙은행'이 돈을 찍어낼 수 없었던 데에는 바로 이 같은 '사연'이 있었던 것이다.

1694년 설립된, '영란(英蘭)은행'으로도 불리는, 잉글랜드은행이 '발권력까지 갖춘 최초의 중앙은행'으로 불리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발권력'을 보유한 덕에 잉글랜드은행은 많은 이들에게 '중앙은행의 진정한 효시'로 여겨진다. 영국이 잉글랜드은행에 대해 자부심을 갖는 배경이기도 하다.

하지만 잉글랜드은행의 역사적 의미에는 이처럼 긍정적 측면만 있는 게 아니다. 부정적인 측면에서 본다면 잉글랜드은행의 역사적 의미는 '그 이상'일 수도 있다. 잉글랜드은행에 대한 나쁜 평가를 보자. 한편으로, 온 국민을 볼모로, 극소수 왕족 및 민간 금융가들에게 무한한 수익을 안겨주는 '나쁜 선례'라는 해석도 있다.

20세기 경제위기사를 쓰며 유럽 은행의 발전사에 대해 이토록 장황하게 얘기하는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다음 회에 이어지겠지만, 17세기 설립된 잉글랜드은행에 대해서도 긴 설명이 필요하다. 잉글랜드은행의 엄청난 수익모델이 미국에 그대로 전수됐기 때문이다. 잉글랜드은행은 연준의 뿌리다.

잉글랜드은행에 대해 자세히 알지 못하면 연준의 성격 또한 제대로 파악하기 어렵다. 그리고 연준의 설립 배경에 20세가 최초의 경제위기가 있었다는 점도 기억해 두기 바란다. 마지막으로 이 모든 것의 중심에 또 한 명의 인물이 있었으니, 바로 미국의 26대 대통령이었던 시어도어 루스벨트(Theodore Roosevelt)였다. 어렵지 않게 배우 숀 코네리(Sean Connery)를 떠올리게 하는 영화 <바람과 라이온(The Wind And The Lion)>(1975)은 이 인물, 루즈벨트 대통령에 대한 것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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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재광 이코노텔링대기자 ❙ 한양대 미래인재교육원 겸임교수❙전 한양대 공공정책대학원 특임교수❙사회학(고려대)ㆍ행정학(경희대)박사❙경기연구원 선임연구위원, 뉴욕주립대 초빙연구위원, 젊은영화비평집단 고문, 중앙일보 기자 역임❙단편소설 '나카마'로 제36회(2013년) 한국소설가협회 신인문학상 수상❙저서 『영화로 쓰는 세계경제사』, 『영화로 쓰는 20세기 세계경제사』, 『식민과 제국의 길』, 『과잉생산, 불황, 그리고 거버넌스』 등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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