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7-01 10:05 (화)
[손장환의 스포츠 史說] 카타르 축구장의 무전기
[손장환의 스포츠 史說] 카타르 축구장의 무전기
  • 이코노텔링 손장환 편집위원
  • inheri2012@gmail.com
  • 승인 2020.09.21 17:0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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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4년 미국 월드컵 아시아 최종 예선전 도하서 6개국 풀리그 벌여
미국행 티켓 걸린 마지막 세 경기 취재진 나눠 무전기로 연락키로
이라크가 일본과 극적으로 비긴 사실 한국 벤치에 큰소리로 알려

2022년 월드컵은 카타르에서 열린다. 카타르의 뜨거운 날씨를 감안해서 11월 21일에서 12월 18일로 잡혔다. 월드컵 최초의 '겨울 월드컵'이다.

월드컵 본선 10회 연속 진출을 노리는 한국은 아시아 2차 예선 H조에서 2승2무로 선두다. 하지만 큰 변수가 생겼다. 코로나가 거의 모든 것을 바꿔놓았다. 2차 예선이 올해 끝나야 하지만 내년으로 연기됐다. 벌써부터 최종 예선 방식이 변경되리라는 예측이 나온다. 홈 앤드 어웨이 대신 12개 팀이 한 곳에 모여서 풀리그로 최종예선을 치르는 것이다.

이코노텔링 그래픽팀
ⓒ이코노텔링그래픽팀

1993년 10월, 카타르 도하에서 열린 94 미국 월드컵 아시아 최종예선도 그랬다. 그때도 카타르다. 생각은 벌써 27년 전 도하로 달려간다.

지금은 아시아에 4.5장이 배당되지만 당시에는 달랑 2개국만 본선에 올랐다. 최종예선에는 한국, 일본, 사우디아라비아, 이란, 이라크, 북한 등 6개국이 출전해 풀리그로 1,2위를 가렸다. 한 달 동안 축구만 보고, 축구만 생각하고, 축구 기사만 썼다.

이란을 3-0으로 꺾고 순조롭게 출발한 한국은 숙적 일본에 0-1로 지는 바람에 탈락의 위기에 빠졌다. 당시 한국의 분위기가 얼마나 살벌했는지 본선 진출에 실패하면 기자단은 선수단과 따로 귀국하자는 얘기까지 나올 정도였다.

마지막 날. 승부조작을 막기 위해 한국-북한, 일본-이라크, 사우디아라비아-이란 세 게임이 동시에 벌어졌다. 한국이 북한을 이기더라도 일본과 사우디가 모두 이기면 탈락하는 상황이었다. 기자단도 세 파트로 나눠 취재를 했다. 무전기를 빌려서 상황을 공유했다.

사우디는 처음부터 앞서 나갔다. 이라크가 유일한 희망이었다. 일본이 먼저 한 골을 넣었지만 이라크가 동점골을 넣어 1-1이 됐다. 기자석에 있던 나는 벤치의 김호 감독, 유기흥 코치, 박항서 트레이너에게 손가락으로 1-1임을 알려줬다. 일본이 다시 2-1로 앞서갔다. 코치진이 수시로 나를 돌아봤지만 알려줄 수 없었다. 북한을 3-0으로 이겼으나 분위기상 탈락임을 알았던 선수단은 고개를 푹 숙인 채 응원단을 향해 걸어가고 있었다. 순간, 무전기가 요동을 쳤다. 일본전 현장의 기자가 흥분해서 소리를 지르는데 무슨 소린지 알 수 없었지만 직감으로 동점이 됐음을 알았다.

나는 손을 치켜들고 계단을 뛰어 내려가며 "2대 2"라고 소리쳤다. 박항서 트레이너가 잠시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더니 곧 펄쩍펄쩍 뛰기 시작했다. 후에 '도하의 기적'이라고 명명된 순간이 지금도 선명하게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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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코노텔링 손장환 편집위원
이코노텔링 손장환 편집위원
연세대 신문방송학과 졸업. 1986년 중앙일보 입사. 사회부-경제부 거쳐 93년 3월부터 체육부 기자 시작. 축구-야구-농구-배구 등 주요 종목 취재를 했으며 93년 미국월드컵 아시아 최종예선, 96년 애틀랜타 올림픽, 98년 프랑스 월드컵, 2000년 시드니 올림픽, 2002년 부산 아시안게임과 한일 월드컵, 2008년 베이징 올림픽 등을 현장 취재했다. 중앙일보 체육부장 시절 '이길용 체육기자상'을 수상했으며Jtbc 초대 문화스포츠부장을 거쳐 2013년 중앙북스 상무로 퇴직했다.
 현재 1인 출판사 'LiSa' 대표이며 저서로 부부에세이 '느림보 토끼와 함께 살기'와 소설 '파랑'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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