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8-15 10:10 (토)
44년 한 직장 ' 영원한 효성맨' 이상운 부회장
44년 한 직장 ' 영원한 효성맨' 이상운 부회장
  • 이코노텔링 성태원 편집위원
  • iexlover@hanmail.net
  • 승인 2020.07.20 13: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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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유수출 전선서 두각… (주)효성 대표 맡아 수출 3배로 늘리는등 수완
외환위기 땐 효성그룹 구조조정 주도 … 스판텍스 등 핵심사업 더 육성
15대 섬유산업聯 회장직에 올라… "섬유 미래 성장동력 발굴 힘 쓸 것"
섬유, 지난해에 130억달러어치 수출, 제조업고용 7%맡는 등 뿌리탄탄

앞으로 3년간 우리나라 섬유업계를 이끌고 갈 제15대 섬유산업연합회(이하 섬산련) 회장에 이상운(李相雲·68) ㈜효성 부회장이 뽑혔다. 섬산련은 지난 7월 14일 서울 강남 섬유센터 17층 대회의실에서 임시총회를 열고 만장일치로 그를 임기 3년의 새 회장으로 선출했다. 지난 6년(2014년 8월~2020년 8월, 제13·14대)간 섬유업계를 이끌었던 성기학 회장 후임인 그의 임기는 정확하게 2020년 8월 19일~2023년 8월 18일까지다.

이 회장이 그 어느 때보다 어려운 시기에 회장을 맡아 향후 그의 활동이 주목받고 있다. 갈수록 섬유산업의 비중이 낮아지고 있는 가운데 코로나19 사태 엄습, ICT(정보통신기술)의 확산 등으로 위기감이 더욱 높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 섬유업계를 이끌 새 섬유산업연합회 회장에 이상운 (주)효성 부회장이 선임됐다. 사진=섬유산업연합회.
한국 섬유업계를 이끌 새 섬유산업연합회 회장에 이상운 (주)효성 부회장이 선임됐다. 사진=섬유산업연합회.

이 회장은 선출 직후 "어려운 시기에 막중한 임무를 수행하게 돼 무거운 책임감을 느낀다"면서 "섬산련이 변화하는 환경에 적극 대처해 섬유패션업계의 글로벌 경쟁력을 높이고 미래 성장 동력을 발굴하는데 힘쓰겠다"고 소감을 밝혔다. 그는 또 "코로나19 이후 언택트 환경으로의 변화에 섬유패션업계가 적극 대처하지 못하면 큰 위기에 직면할 수도 있다"고 강조했다.

신임 이 회장은 어떤 인물일까. 그는 1952년 서울에서 태어나 경기고와 서울대 섬유공학과를 다녔다. 1976년 효성물산에서 직장생활을 시작한 이래 44년에 이르도록 효성에 몸담아온 '효성맨'이다. 2002년 ㈜효성 대표이사 사장 겸 그룹 최고운영책임자(COO), 2007년 대표이사 부회장을 거쳐 2017년부터 현재까지 ㈜효성 부회장을 맡고 있다.

그는 섬유수출에 발군의 실력을 보여 '섬유 수출의 귀재'란 얘기를 들었다. 2002년 전무에서 사장으로 2단계 고속 승진했는데 2010년까지 8년 동안 ㈜효성 매출을 8조2000억원 상당으로 2배가량으로 늘렸다. 특히 이 기간 중 수출액을 18억 달러에서 55억 달러로 3배 이상으로 불려놓아 주목받았다.

외환위기 당시 주력 사업장을 통합하는 과정에서 탁월한 위기관리 능력을 보여 눈길을 끌기도 했다. 타이어코드·스판덱스 등 핵심사업의 글로벌 경쟁력 강화 및 미래 신사업 발굴에 필요한 인수 합병 등에도 솜씨를 발휘해 ㈜효성을 국내 대표적 섬유업체로 발돋움시킨 장본인으로 평가받았다.

섬산련은 이제까지 섬유 업종별로 돌아가며 투표 방식이 아닌 추대 방식을 통해 회장을 뽑아왔다. 1975년 출범이래 45년을 맞은 섬산련은 이번 15대 회장도 업계에서 추천받은 인사들 중 '5인 추대위'가 화섬(化纖) 업계 출신으로 인선했다. 면방, 화섬, 패션, 섬유수출 등 4대 주요 섬유 업종 중 이번에는 화섬 출신이 회장을 맡을 차례였다. 효성은 화섬업계의 선두주자중 하나다. 이런 선출 방식에 이견을 제시하는 업계 사람들도 있지만 유서 깊은 업종 단체인 섬산련의 무시 못 할 전통으로 자리 잡은 것도 사실이다.

섬유는 우리나라 산업사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했다. 이러다할 수출제품이 빈약했던 70년대에는 섬유가 우리경제가 먹고 살았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그 섬유산업계를 이끌던 섬유산업연합회 회장에는 기라성 같은 창업신화의 인물들이 즐비했다. 김우중,박용학,이동찬,장치혁 등은 섬유를 기반으로 대그룹을 일궜다/ 이코노텔링 그래픽팀.
섬유는 우리나라 산업역사에서 매우 주요한 역할을 했다. 이러다할 수출제품이 빈약했던 70년대에는 섬유가 우리경제를 먹여 살렸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그 섬유산업계를 이끌던 섬유산업연합회 회장에는 기라성 같은 창업신화의 인물들이 즐비했다. 김우중,박용학,이동찬,장치혁 등은 섬유를 기반으로 대그룹을 일궜다. 그리고 여전히 섬유는 제조업 교용의 7%를 담당하고 연간 130억달러 규모의 수출액을 올리는 등 수출신화의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이코노텔링 그래픽팀.

섬산련은 비록 부침은 있었지만 한국 제조업 단체 중 빼놓을 수 없는 존재감을 자랑하는 곳이다. 기계산업진흥회, 전자정보통신산업진흥회(전자진흥회), 자동차산업협회, 석유화학협회, 조선해양플랜트협회(조선협회) 등 한국의 유서 깊은 제조업 단체들과 어깨를 나란히 해왔다.

특히 한국의 경제발전 초창기에 해당하는 1960~80년대에는 당시 수출 주도 업종이던 섬유산업을 이끌었다. 현재도 등록 회원사가 무려 4만5000여개에 이른다. 대한방직협회, 한국화학섬유협회, 한국패션산업협회, 한국섬유수출입협회 등 27개 단체가 정 대의원이다. 일반 대의원으로는 동일방직, 영풍필텍스, 도레이첨단소재, 현대화섬 등 38개 기업이 있다.

섬유산업은 1971년만 해도 총수출의 41%를 차지할 정도로 기세가 높았다. 1987년 100억 달러 수출 쾌거도 이뤄냈다. 90년대 까진 해마다 100억 달러 이상의 무역수지 흑자를 기록하는 효자산업이었다. 2000년대 들어 흑자규모가 100억 달러를 밑돌다가 2016년엔 -7억 달러로 적자 반전했다. 지난해 수출은 129억6000만 달러, 수입은 171억4000만 달러로 적자 41억8000만 달러를 기록했다.

이처럼 힘은 많이 빠졌지만 아직도 사업체수 4만5752개로 제조업 전체의 10.5%, 고용 27만8000명으로 제조업의 6.8%를 각각 점유하고 있다.(2018년 기준) 도소매·서비스 등 연관 산업을 포함시킬 경우 전체 섬유패션업체 수는 29만6,362개, 고용 인원은 82만8000여명에 이른다. 아직도 세계 10위의 섬유 수출국으로 꼽힌다. 섬산련은 "섬유산업은 4차 산업혁명을 선도하는 미래 핵심 산업"이라고 자평한다. 원료, 원사, 원단, 염색, 패션․의류·산업용 등 Up Stream에서 Down Stream까지 균형된 생산기반을 갖추고 생산기술도 고르게 발달해 아직도 섬유로 먹고 사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부침을 거듭해 온 한국 섬유산업을 이끈 리더들은 수 없이 많다. 대표적인 이들이 지난 45년에 걸쳐 섬산련 회장을 맡았던 11명의 섬유 기업인들이다. 이들은 1대~14대에 걸쳐 3년 혹은 그 이상씩 회장을 맡아 한국 섬유 발전을 견인해 왔다. <표 참조>

2000년 이전 7명은 대부분 재계 중량급 인사들이었다. 초대 배덕진 대한방직협회장, 2대 박용학 대농 회장, 3대 이동찬 코오롱 회장, 4대 김우중 대우 회장, 5대 김각중 경방 회장, 6대 장치혁 고합 회장, 7대 장익용 서광 회장 등 쟁쟁한 기업인들이 회장을 맡았다. 섬유업은 물론 그룹 기업을 대표했던 기업인들이 돌아가며 회장을 맡았다. 2000년대 이전엔 그만큼 섬유산업의 수출 비중이나 경제적 위상이 높았기 때문이다.

2000년 무렵부터 회장을 맡은 4명은 8~9대 박성철 신원 회장, 10대 경세호 가희 회장, 11~12대 노희찬 삼일방직 회장, 13~14대 성기학 영원무역 회장(14.8~20.8) 등이다. 이들은 섬유산업이 섬유패션산업으로 불리는 가운데 구조조정과 자기 혁신이란 힘든 터널을 통과하는 시기에 회장을 맡은 섬유기업인들이다. 이전보다 재계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떨어졌지만 섬유업에 올인 한 전문기업인들이 회장을 맡는 것으로 트렌드가 바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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