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원도 정선군 구절리. 계곡이 아홉굽이를 휘감아 돌 정도로 속 깊은 산골인 이 곳이 또 다시 변신했다. 탄광촌에서 레일바이크 유원지로 바뀌었다가 최근 가상현실(VR)을 통해 생태계를 체험하는 현장으로 업그레이드됐다.
세상은 이처럼 빠르게 변하고 있지만 구절리와 인연을 뗄수 없는 이가 있다. 구절리에서 평생 사업기반을 닦은 고 호상철 회장이다. 호 회장은 65년전 이곳 구절리에 우전탄좌를 설립해 석탄을 캤다. 3,000여명이 넘는 광부들이 북적였다. 삶은 고단했지만 희망은 부풀었다. 한 집안을 책임진 가장들의 든든한 뒷모습이 매일 석탄 갱도로 사라졌고 숯 검댕이 화장을 한 채로 귀가하는 모습이 꼬리를 물었다. 그 줄이 길 때는 몇 백미터가 됐다고 한다.
석탄 채굴량이 늘어나자 이 깊은 산속에 기차역이 필요했다. 석탄을 나르기위해서다. 그래서 호 회장은 회사 땅을 나라에 기부해 기차역을 만들었고 구절리가 드디어 세상과 소통하는 창구가 생겼다. 호 회장의 이런 공덕을 기리는 기념비가 지금도 구절리 역사 옆<그래픽 사진>에 서 있다.
그런데 호 회장이 타계한 후에 기념비를 감싸고 있던 꽃들이 시들해졌다. ‘구절리 호랑이’ 호 회장의 서거를 꽃들도 슬퍼했을까.
호 회장의 장녀로 호 회장의 사업 뿌리를 잇고 있는 호영식 정선대리석 사장은 “이버님이 타계하면서 구절리의 현대사도 한 매듭을 짓게 됐다”며 “아버님 생전의 구절리 사랑과 광산개발 유지를 받들기 위해 병상에 계실 때 여러 이야기를 나눴다”고 말했다.
호 사장은 재단을 세워 아버님의 유지를 이어가는 것도 검토중이라고 말했다. “아버님 운명 직전에 재단 설립방안도 연구중이라고 말씀드렸더니 저를 손으로 가르치며 ‘너가 알아서 하라’고 말씀하셨다”고 말했다.
호 사장은 1985년 아버지의 부름을 받기 전에는 국내 유명대학 음악도를 거쳐 내로라하는 백화점의 수석 디자이너로 일하고 있었다. 그런데 석탄산업이 사양길에 접어들자 선친이 대리석 광산 개발에 나서면서 장녀인 호사장에게 사업을 맡겼다. 호 회장은 대리석 광산개발에 전념하고 딸인 호사장에게는 대리석 건축자재 개발과 디자인, 영업을 하도록 했다. 지금의 정선대리석이 뿌리를 내릴 때 까지 호 사장의 간난신고가 적지 않았다.
지금도 그렇지만 그 때 건설자재 영업은 거친 영역이었다. 국산 대리석에 대한 신뢰도 없었지만 자재지정 권한을 지닌 건축사들은 제대로 만나주지 않았다.
호 사장은 먼저 국산대리석의 쓰임새를 다양화했다. 그의 디자인 눈썰미가 빛을 발했다. 지금은 장식재료는 물론 각종 인테리어,조각, 전자기기의 소재 등으로 대리석 용도를 다양화했다. 도자기도 만들었고 식탁도 선보였다.
특히 대규모 건설 프로젝트에 정선대리석이 널리 쓰이고 있다. 서울광화문역,고속터미널역,김포공항역 등 주요 지하철역 등에 깔려있다. 에쓰오일 사옥 등 대기업 빌딩의 실내에서도 만날수 있다. 세계석자재전시회에서 강도와 흡수율 등에서 우수한 평판을 얻었다.
“아버지는 산 사람입니다. 산에서 국부를 키웠고 국토에 대한 미안한 맘도 갖고 있어요. 감사한 마음을 잊지 말라고 했습니다. 어찌 그 유지를 잊을 수 있겠습니까. ”
호 사장이 아버지를 그리는 망부가이다. 호 사장은 “정선대리석을 국내 대표적인 건설자재 기업으로 키우고 ‘아라리’란 정선대리석의 브랜드명을 널리 알리는 것이 선친을 가장 기리는 일에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