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25 17:15 (목)
◇전통시장 역사기행①제주 동문시장에 걸린 시 한수
◇전통시장 역사기행①제주 동문시장에 걸린 시 한수
  • 제주=고윤희ㆍ 김승희 이코노텔링 기자
  • yunheelife2@naver.com
  • 승인 2018.12.04 22: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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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망(할머니) 좌판은 '굽히지 않는 제주인의 삶'상징
전설이 된 '바람코지 빌레왓디'에는 가득한 눈물효심
김광협 시인이 노래한 것으로 추정되는 '바람코지 빌레왓디'(바람세고 돌 많은 밭에서)란 시에는 부모님에 대한 한 없는 존경심이 녹아있다.
김광협 시인이 노래한 것으로 추정되는 '바람코지 빌레왓디'(바람세고 돌 많은 밭에서)란 시에는 부모님에 대한 한 없는 존경심이 녹아있다.

제주의 대표적인 전통 장터인 제주시 동문시장. 이 시장 어귀에 있는 메밀국수 식당에는 ‘바람코지 빌레왓디’(위 해설 참조)란 시 하나가 걸려있다. 누군가가 투박한 글씨로 시를 정리해 액자로 만들어 걸어 놓았다. 사람들은 메밀하면 봉평을 떠 올린다. 그러나 제주의 메밀은 역사다. 메밀은 척박한 돌무덤 밭에서도 잘도 자랐다. 주린 배를 채워준 고마운 구황작물이다. 이 메밀밭의 메밀꽃이 눈처럼 흐드러지게 필 무렵 제주는 ‘4.3’의 미친바람에 속절없이 갈기갈기 찢겼다. 지금은 4.3을 기억하지만 평생을 입 단속하며 지낸 날이 얼마인가.

동문시장에는 곳곳에 할머니 좌판이 있다. 나이 80이면 현역이다. 부지런한 제주인의 상징이 됐다. 에전엔 그렇게 일을 안하면 살아갈수 없었다. 논 한평 없는 제주땅. 그것도 돌무덤같은 밭이어서 농사가 잘 되지 않았다. 거친 밭농사로 생계를 이어갔고 돈벌이를 한다며 배를 타고 나간 '아버지와 남편'은 파도와 함께 저 멀리 수평선으로 사라졌다.
동문시장에는 곳곳에 할머니 좌판이 있다. 나이 80이면 현역이다. 부지런한 제주인의 상징이 됐다. 에전엔 그렇게 일을 안하면 살아갈수 없었다. 논 한평 없는 제주땅. 그것도 돌무덤같은 밭이어서 농사가 잘 되지 않았다. 거친 밭농사로 생계를 이어갔고 돈벌이를 한다며 배를 타고 나간 '아버지와 남편'은 파도와 함께 저 멀리 수평선으로 사라졌다. 왼쪽은 어느 아담한 메밀국수식당에 걸린 '보름코지 빌레왓디'란 시를 누군가 액자로 만들어 걸어놓은 모습.

이 작은 식당은 메밀을 즐겨 먹는 일본 관광객들이 심심찮게 찾아오는 어엿한 ‘국제 레스토랑’이다. 제주의 꿩고기로 우려낸 맛을 그래도 보존하려고 애를 쓰는 곳이라고 할까. 제주 중앙로 인근의 이 식당에서 출발하면 동문시장의 점포는 장막이 걷히듯 펼쳐진다. 휘돌아 감아 도는 골목이 정겹다.

‘보름코지 빌레왓디’란 시는 제주가 낳은 김광협 서정시인(1941~1993)이 노래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그는 1981년 대한민국 문학상을 받은 문학가이자 동아일보 기자출신 언론인이었다. 그의 고향 서귀포 호근마을은 1996년 10월 그의 시비를 동네 어귀에 세워 그가 캐낸 제주의 살 가운 시어를 간직하고 있다.

이름 모를 작가의 작품이라도 좋다. 제주 사람들의 삶의 무게를 이 시 만큼 녹인 노래가 있을까. 고훈식(71) 제주문인협회 회장은 “시의 운율이나 전개과정을 보면 수준 있는 작품”이라며 등단한 시인의 작품으로 보았다.

국내 대표적인 관광지로, 요즘은 부동산 투기지역으로 인식되는 제주도지만 척박한 땅 위에서 기어코 생명줄을 이어온 역사는 드라마요, 장편 서사시이다. 바람이 센 만큼 바닷가에서 사는 것은 하루 하루가 기약 없는 시작이었다. 그 바당(바다)은 언제나 ‘제주인’을 품었지만 절(파도)이 센 날은 사나워도 이만 저만 사나운 것이 아니다. 김광협 시인의 고향 앞바다 ‘대천(서귀포의 한 지역) 바당’ 한 가운데로 제주 땅에 넘와왕근(넘어 와선) ‘허구헌날 한숨이요 허구헌날 고생’이라는 구절에서 시인이 그린 부모님의 가슴 아픈 인생역정이 가슴에 와닿는 듯하다.

바람센 돌무덤 같은 밭에서 피도 심고 조도 심어 뼈빠지게 일해도 삶이 펴지지 않으니 눈물이 나네. 눈물이 나네.

‘바람센 돌무덤 같은 밭에서’란 이 시는 어떤 고난 속에서도 굽히지 않았던 제주인들의 개척정신과 질긴 생명력을 웅변하고 있다. 최근 김소윤 작가가 펴낸 소설 ‘난주’도 척박했던 제주살이를 담아냈다. 언제나 목숨을 내놓고 육지를 왕래했고 탐관오리의 갖은 수탈에 신음했던 ‘서러운 제주인’을 그렸다. 조선 후기도 그러려니와 조선 초기는 더 했다고 한다. 심지어 전복 껍데기로 앵무새 부리 모양으로 만든 술잔(앵무배ㆍ鸚鵡杯)의 공출이 심해 온 식구가 바다에 풍덩 둥덩 빠져 전복을 캐야 했다.

동문시장 1번게이트 어귀부터는 좌판 보다 낳은 작은 포장마차 점포들이 즐비하다. 이곳에서 80세에 이른 할머니 들이 호떡과 빙떡을 만들어 판다. 맛이 좋아 줄을 서야 차례가 돌아온다.
동문시장 1번게이트 어귀부터는 좌판 보다 낳은 작은 포장마차 점포들이 즐비하다. 이곳에서 80세에 이른 할머니 들이 호떡과 빙떡을 만들어 판다. 맛이 좋아 줄을 서야 차례가 돌아온다.

동문시장에서 눈에 띄는 것은 ‘할망 좌판’(할머니 좌판)이다. 제주인들은 나이가 90이 되도 물질하는 해녀가 있고 걸음만 걸을 수 있으면 집에서 빈둥거리지 않는다. 80세에 이른 할망들이 우영밭(텃밭)에서 심은 송키(채소)나 한라산 자락에서 캐온 산나물을 들고나와 판다. 어느 할머니는 ‘가을 쑥’ 한 웅큼을 앞에 놓고 종일 바위처럼 앉아 있다가 해넘이를 한다.

이 장면은 장엄하다. 하루를 허투루 보내지 않는 제주인의 근면성을 보여준다. 이 할머니 뿐인가. 동문시장 1번 게이트 입구는 80세 가까운 할머니 호떡이 행인 한 움큼을 꼼짝없이 붙잡아 놓는다. 그 호떡 맛을 보려면 하영(많이)기다려야 한다. 택시기사에게 물었다. “그 할머님 마씸(그 할머니 말이예요). 정말 부지런헙주..(부지런합니다)”

실제로 그런지는 모르지만 그렇게 제주의 할망들은 언제나 현역이다. 제주 사투리에 ‘오몽해야 한다’는 말이 있다. 즉 부지런히 움직여야 살아갈 수 있다는 뜻이다. 호떡 코너 옆은 ‘2인 3각’이다. 한 사람이 걸죽한 메밀반죽으로 얇은 전을 부치면 다른 할머니는 무우 속을 넣어 둘둘 만다. 빙떡이다. 그 빙떡에 추억 가득한 맛을 보았다.

고훈식 회장 역시 제주 사투리로 삶을 노래하는 대표적인 제주 시인이다. 그의 작품 ‘눈도 벌겅 코도 벌겅’이란 시에도 제주인의 억척같은 삶이 녹아있다. 한 소절을 읆으면 다음과 같다.

“호건 살아 보젠 (어떻게 해서든지 살아 보려고)

동새벽에 듬북 조물아동 (이른 새벽에 해초 걷어 들이고)

조진뱉이 아장 검질매민 (뙤약 볕에 앉아 김을 메면)

눈도 벌겅 코고 벌겅” (눈도 붉고 코도 붉고)”

( ※ 듬북은 제주의 파도에 밀려 들어오는 해초를 말한다. 제주인들은 이 해초를 동도 트지 않은 시각에 바다에 나가 걷어 들인다. 이를 쌓아두고 썩이면 거름이 된다. 돌무덤 밭을 살찌우는 비료인 셈이다. 그러니까 이른 새벽에는 바다에서 낮에는 밭에서 일하지 않고선 제주의 삶을 이겨내기가 쉽지 않았다. ‘수륙(水陸)양용’ 탱크 일꾼들이 아닐 수 없다.)

제주시 동문로타리 일대(제주시 일도리 1146번지)에 있는 동문시장은 해방둥이다. 1945년 상설시장으로 조성됐다. 육지에서 온 사람이 배에서 내리면 바로 갈 수 있는 가장 가까운 시장이다. 지금은 신제주에 사람이 몰리지만 그래도 제주의 전통을 지키는 핵심지역이다. 구제주의 활력은 여기서 나온다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옥돔과 감귤, 그리고 고사리 등 제주 특유의 산나물과 풍물을 접하려면 이곳은 필수 코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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