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채경 회장 “기업은 시작만 있을 뿐 끝은 없어”
허채경 회장 “기업은 시작만 있을 뿐 끝은 없어”
  • econotelling(이코노텔링)
  • 승인 2018.11.28 1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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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시멘트 창업회장 53년전에 "우수한 인재 한명이 회사 앞날 좌우" 언급
허체경 한일시멘트 창업회장이 1992년 '한국의 경영자상' 수상후 모습(좌측). 창업당시 한일시멘트의 전봇대 광고가 정겹게 보인다.
허채경 한일시멘트 창업회장이 1992년 '한국의 경영자상' 수상후 모습(좌측). 창업당시 한일시멘트의 전봇대 광고가 정겹게 보인다.

“기업은 시작만 있을 뿐, 끝은 있을 수 없다”

1995년 작고한 허채경 한일시멘트 창업 회장의 경영관을 응축한 어록이다. 허 창업회장은 개성상인의 후예로 송도중학교를 졸업 후 바로 사업에 투신 할 정도로 약관의 나이에도 사업을 보는 눈이 남달랐다고 한다. 한국전쟁 때 홀로 남한에 넘어온 그는 수산물에 이어 석회석 판매로 큰 돈을 벌었다. 하지만 그의 꿈은 직접 공장을 지어 제조업을 하는 거였다.

1961년 허채경 한국양회판매주식회사 사장은 정부의 제1차경제개발5개년 개발계획에 귀 기울였다. 양회(洋灰)는 말그대로 서양(洋)의 재(灰)라는 뜻으로 시멘트를 일컫는 말이다. 허 사장은 도로, 항만 등 사회인프라(SOC)사업이 많아지면 자연히 시멘트 수요가 늘 것으로 내다보고 한일시멘트의 창업과 단양공장 착공을 동시에 추진했다. 한국양회판매 산하의 전국 특약점 점주들이 주주로 참여했고 12월20일 창립총회를 열었고 바로 법원에 등기절차를 마쳤다.

자본금은 30억환. 한일시멘트는 법적 지위를 갖춘 12월28일을 창립기념일로 기념한다. 꼭 한 달 뒤면 창립 57주년이다. 외자도입 1호 사업자로 뽑혀 독일(당시는 서독)과 공장건설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단양공장은 1962년 첫 삽을 떴고 2년여의 공사끝에 1964년 6월20일 마무리해 연산 40만톤 규모의 생산설비를 갖췄다. 허 창업회장이 숙원을 푼 날이다. 그러나 공장준공 후 몇달 뒤 몰아닥친 시멘트 공급과잉으로 한일시멘트는 출발부터 몸살을 겪어야 했다.

1965년 신년사에서 허채경 창업회장은 “지난해(1964년)에는 희비가 교차했다. 기쁜 것은 우리가 공장을 준공해 시멘트를 생산한 것이고 슬픈 것은 시멘트 물량이 넘쳐나 극도의 불황을 겪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허 창업회장은 어떤 난관도 기업인들은 견뎌내고 극복해야 한다며 인재육성과 인화단결을 강조했다.

그는 “어떤 애로와 난관이 있어도 우리가 인화단결해 각자가 본연의 업무에 충실하면 능히 극복할 수 있다”며 유능한 인재론을 펼쳤다. 즉 “회사를 운영하는데 있어 풍부한 물질적 여건보다 절실히 요청되는 여건이 있으니 바로 유능한 인재”라고 강조했다.그는 이어 “썩은 재목으론 기둥을 세울 수 없다. 유능하지 못한 인재로는 한 회사가 알차고 튼튼하게 성장할 수 없다는 것은 명약관화한 일”이라고 덧붙였다.

이같은 경영관을 가진 허채경 창업회장은 창업초기부터 종업원 공개채용과 공장건설 공개입찰제도를 도입해 업계를 깜짝 놀라게 했다. 인맥과 학교 추천을 받아 회사원을 많이 뽑을 때 였다. 허 회장은 한 번 뽑으면 안정적으로 회사 일을 볼 수 있도록 종업원 복지에도 각별한 관심을 기울였다.지금 한일시멘트가 운영중인 근로복지기금의 씨앗도 그 때 뿌려졌다. 이 기금은 사원의 주택과 생활안정자금으로 돈을 빌려주고 자녀 두 명까지 대학 학자금 전액을 지원한다. 기업들이 극심한 경영난을 겪던 1997년 외환위기때도 지원이 이어졌다. 한일시멘트는 창업후 지금까지 노조 파업 한 번 없었다.  2004년부터 올해까지 15년 연속 시멘트 부문  ‘존경받는 기업’에 뽑혔다.

허 창업회장은 말년에 “기업에는 시작은 있어도 끝은 있을 수 없다”며 “천 개의 돌보다 한 개의 옥(玉)이란 말이 있듯이 우리 사원 모두는 유능한 옥이 돼야 한다”고 인재육성론을 설파하며 ‘기업의 영속성’을 강조했다. <고윤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