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1년에 작고한 정주영 현대그룹 창업 회장은 생전에 고향을 잊지 못했다. 빈농의 자식으로 태어난 그는 내로라하는 기업을 일궜지만 늘 북녘의 ‘강원도 통천군 아산면’을 그리워했다. 자신의 호를 ‘아산’으로 했고 대북 사업의 창구역을 하는 회사 이름도 ‘현대아산’으로 지었다.
정주영은 1989년 처음 방북을 해 남북경협을 타진하는 등 경제협력 기회를 엿봤다. 당시 그는 김일성 주석을 만났다는 전언이 있었으나 확인해주지 않았다. 하지만 그의 방북 후 남북이 뭔가를 함께 할 수도 있겠구나라는 희망을 낳았다.
대북사업은 언제나 현대가 앞장서고 큰 투자도 현대만 했다. 정 회장은 자신의 방북 9년만인 1998년 6월 이번엔 소 1001마리와 함께 북으로 갔다. 고향을 떠날 때 아버지가 소를 판 돈을 몰래 가지고 나온 만큼 소로 갚는다는 의미의 ‘방북 이벤트’였다.
당시 실무진들이 1000마리를 보냈겠다고 하자 정 회장은 거기에 한 마리를 더해 1001마리를 보내도록 했다. 왜 그랬을까. 정 회장은 “ 끝이 ‘0’으로 끝나면 일이 끝나는 것이고 ‘1’자가 있으면 일이 지속 된다는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고 한다.
아무튼 누가 뭐래도 대북사업의 기득권은 현대에 있고 아직도 현대아산은 개성공단과 금강산 일대의 사회 인프라(SOC)를 30년간 개발할 수 있는 독점 권한을 갖고 있다.
그 일을 해낸 사람은 정 회장의 며느리이자 현대그룹 총수였던 정몽헌 회장(2003년 작고)의 부인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이다. 현 회장은 2005년과 2009년에 두 차례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만났다. 특히 2009년 여름, 금강산 관광객 피살사건 등으로 남북관계가 얼어 붙었을때 평양에서 일주일간 머물며 김 위원장을 만나 대북 사업 물꼬를 트려고 애썼다.
현 회장은 김정은 노동당위원장을 만난 첫 대한민국 국민이기도 하다. 2011년 12월 26일 김정일 국방위원장 사망 당시 이희호 여사와 함께 조문단 일원으로 방북했다. 당시 상주인 김정은은 당시 노동당 중앙군사위원회 부위원장이었다.
문재인 정부의 대북 화해와 평화 정책으로 대북사업 분위기는 무르익고 있다. 재계가 현 회장의 행보에 주시하는 이유다.현대그룹 안팎에선 “관광 재개만 합의하면 3개월이면 다시 금강산관광이 가능하다”는 이야기도 나올 정도다.
지난 18일 금강산 관광 20주년행사를 금강산에서 하고 돌아온 현정은 회장은 “금강산관광은 정주영 명예회장, 정몽헌 회장, 현대의 희생과 노력의 결과”라며 “민족화해와 공동번영을 위해 ‘담담’하게 나갈 것”이라며 대북사업 의지를 내비쳤다. ‘담담한 마음’은 정주영 회장이 내세운 현대그룹 사훈의 하나다. ‘담담’은 ‘일희일비’ 하지 않는다는 뜻도 있다. 실제로 현 회장은 “연내 재개는 어렵지만 조만간 관광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현대는 대북 사업에 매달리는 동안 적지 않은 어려움을 겪었다. 지난 10년동안의 금강산 관광 중단으로 현대아산은 쪼그라들었다. 한때 2000명에 육박하던 임직원은 200명이 채 안된다. 정몽헌 회장은 대북 화해정책을 펴던 김대중 정부와 코드는 잘 맞았지만 그로 인해 고초를 겪었다. 아이러니컬하게도 DJ정부의 계승자 노무현 정권에서 ‘대북송금’특검이 이뤄졌고 정 회장은 수차례 조사를 받다가 돌연 그룹 사옥에서 투신해 숨을 거뒀다. 이후 그룹 사세도 크게 위축됐다. 해운업 불황으로 빚더미에 오른 현대상선은 산업은행의 자회사가 됐고 현대증권 등은 팔렸다. 현대그룹의 명맥을 잇고 있기는 하나 그룹이 예전만큼 활력은 없다.
그럼에도 현대는 대북사업 재개의 끈을 지금까지 놓지 않았다. 현 회장이 그리는 대북 사업이 이번엔 후유증 없이 순항할지 그 전망은 여전히 엇갈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