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남아쪽으로 江 흘렀다면 중화문화 역사 달라 졌을 것
오늘은 중국을 대표하는 계곡인 호도협을 관광한다. 아침 7시에 기상하여 간단한 세면을 마치고 7시반에 객잔을 나섰다. 하늘은 아직 깜깜하다. 어제 처음 묵은 객잔은 1층 건물로 에어컨이 설치되어 있어 따뜻하게 밤을 보낼 수 있었다. 세면장과 샤워실에 샤워 후에도 물이 흥건하게 고일 정도로 배수가 잘 안되었지만 불과 몇 시간이 지나면 바닥이 완전히 마를 정도로 건조하였다. 침대도 비교적 괜찮아 잠을 잘 잤다. 그러나 공기가 아주 건조해 좀 힘들었고 감기기운으로 코가 막힌다.
7시 30분 객잔을 나서려니 체크인카운터에는 불이 꺼져 있고 문도 닫겨져 있다. 그러나 유심히 살펴보니 자물쇠를 그냥 걸쳐 놓은 상태였다. 객잔을 빠져 나와 아직 짙은 어둠이 깔려 있는 리장고성을 더듬듯 걸어나갔다.
그러나 어두운 고성거리엔 벌써 청소부와 초등학생들이 드문드문 보이기 시작한다. 모든 상점의 문은 아직 닫혀 있는 상태이나 아침식사를 파는 노점상들은 분주한 모습을 보여 준다. 이 도시를 깨우는 사람들이 바로 청소부와 노점상인들이다. 20분간을 걸어 사방가로 가고 이어 그곳에서 사방가보다 더 훨씬 넓은 옥하광장으로 갔다. 옥하광장의 맥도날드와 켄터키 가게만이 어둠 속에 불을 밝히고 있다.
맥도날드 가게에서 세트메뉴로 아침식사를 하다. 서울과 메뉴의 내용은 비슷한데 더 비쌌다. 8시 가까이 되어서야 하늘이 밝아온다. 부근의 집합장소로 가서 오늘 우리가 탈 버스에 가장 먼저 올라 가장 앞자리에 앉았다. 차를 가장 먼저 탄 게 아주 다행한 일이었다. 우리가 탄 후 대리의 다른 곳 5,6곳을 더 들러 승객들을 태우고 버스는 호도협을 향했다.
가는 중간에 장강(양자강)의 원류인 금사강이 북쪽 청해성에서 발원하여 남으로 흘러내리면서 바로 이곳 리장 부근에서 동쪽으로 구부러지고 줄곧 끝까지 흘러가는 ‘장강 제1만’을 관망하였다.
장강의 원류가 이곳에거 거의 90도 각도로 굽어지지 않고 거의 직류했다면 즉 동남아 쪽으로 강줄기가 이어졌다면 지금의 중화문화가 성립될 수 있었을까 생각하고 있었는데 바로 옆의 설명문에 이 강줄기를 설명하면서 바로 ‘장강 제1만’이 아니라면 중화문화의 의미가 지금과 달리 상당한 변화가 있었을 거라는 설명이 보인다. 사람의 생각이 비슷하고 누구라도 이곳에 서면 그런 의문이 당연히 들 것이다. 이곳을 떠나 버스는 다시 호도협을 향했다. 중간에 한 식당에 들러 단체를 식사를 하였다. 모두 8찬인데 대부분 채소요리로 입맛에 맞았고 친구도 만족하였다.
버스가 호도협에 가까이 접근하고 있었지만 처음엔 도무지 이곳이 왜 그처럼 유명한지 짐작이 안 되었으나 점점 깊은 산으로 들어가면서 이제까지 본 산세와 다른 웅혼한 산세가 눈앞에 나타나면서 여행자를 압도하기 시작한다. 이 설산의 최고봉이 5596미터로 유럽의 알프스보다 더 높기도 하려니와 바위산의 위용이 대단하고 상당한 위압감으로 여행객에게 다가선다.
옥룡설산의 웅혼한 웅자와 깊은 협곡 아래의 금사강의 지류라 할 수 있는 진녹색의 물줄기가 조금씩 눈에 들어온다. 협곡의 규모가 상상의 폭을 훨씬 넘는다. 거대한 암벽과 깊은 계곡 그리고 우뢰 같은 소리로 흘러내리는 세찬 물줄기 모든 것이 여행객을 경탄의 세계로 이끈다. 2시간 반의 이동 후에 버스는 목적지인 중간 호도협에 도착했다. 이곳에서 다시 현지 가이드의 안내로 계곡으로 걸어내려가기 시작했다.
중간중간 아찔한 느낌도 들었다. 잘못 발을 디딘다면 천길 낭떠러지로 떨어질 판이다. 좁은 계곡길을 가급적 길 안쪽 산쪽으로 몸을 붙여서 한걸음 한걸음 신중하게 발걸음을 옮겼다. 중간 중간 포토라인에서 바라본 호도협의 풍광은 여행객의 혼을 빼놓을 만큼 절경이었다. 명불허전이라고 했나. 이번 여행에서 지금까지 가장 인상적이고 마음에 드는 장소였다. 수십분에 걸친 보행 끝에 계곡으로 내려가 계곡의 우렁찬 물소리를 바로 옆에서 온몸으로 듣고 느낄 수 있었다. 잠시 휴식 끝에 다시 길을 달리해 위로 올라가다.
조금 걸어올라가니 내려올 때와는 달리 갑자기 거의 직벽수준의 아주 높은 줄사다리가 나타난다. 이제 이 줄사다리를 타고 올라가야 한다. 아찔한 느낌이 든다. 이 사다리 계단이 거의 70-80개 수준이다. 온몸에 힘을 주고 겨우 사다리를 올라갔다. 아뿔싸 이게 전부가 아니다. 또 사다리가 나온다. 두 번째는 사다리 계단 숫자가 좀 적었지만 계속 긴장을 풀 수 없었다. 겨우 올라갔더니 또 사다리다.
힘이 빠질 뻔했다. 다시 온몸과 정신을 모아 3번째 사다리를 올랐다. 비로소 거의 직벽에 가까운 사다리 등반이 끝났다. 간단한 코스가 아니다. 좀 더 올라가니 매점이 나타난다. 오이와 배를 사서 먹고 뒤이어 일행들이 모두 매점으로 모이면서 가게 안이 북적거리는 가운데 주인여자가 1인당 10위안을 내라는 엉뚱한 소리를 한다. 올라오는 길의 계단 이용료 등으로 내라는 거다. 순간 황당하다는 생각이 들었고 바로 돈을 낼 수 없다고 말했다.
일부 중국 여행객들은 돈을 건네는 모습도 눈에 들어온다. “어제 이 여행상품을 구입할 때 이에 대한 아무런 얘기가 없었고, 계약 내용엔 추가 비용에 대한 규정이 없었다. 돈을 거두려면 미리 사전에 사정을 알려주어 이 시설을 이용하고자 하는 사람에게 부과하든가 해야 하고, 모든 여행객이 사용하는 길에 대해 돈을 걷는 것은 이치에 맞이 않는다”고 세게 주장하자 주인여자는 자신의 주장을 철회하였고 이미 돈을 받은 사람에게는 돈을 돌려주었다.
중국인들도 필자에게 내심으로 감사하지 않았을까? 열변을 토하는 동안 주인을 제외한 모든 중국인이 필자를 응원하고 있음이 무언으로 전해져 온다. 봉이 김선달 방식으로 여행객의 돈을 노리니 중국인인들 기분이 좋았을 리 없었을 것이다. 가게 주인으로서도 전혀 부담이 없다. 일단 모든 여행객에게 10위안을 내보라고 하고 돈을 내면 받고 오늘 필자처럼 강력히 항의하면 안 받으면 그만이다.
이를 두고 바둑용어로 꽃놀이패라고 해야할지? 지난번 사천지역 여행에서 버스기사의 유사한 행태가 상기되면서 쓴 웃음이 나온다. 아직 멀었다 싶다. 귀로는 버스가 막힘없이 그대로 달려 리장으로 곧장 돌아오다.
오는 길에 갈 때와는 역순으로 호도협의 풍광을 버스 속에서 즐기다. 오늘 즐겁고 행복한 하루였다. 고성 부근에 내려 저녁식사를 하고 물과 맥주 과일을 사서 객잔으로 돌아오다. 돌아와 보니 객잔 주인이 객실 문을 아침에 제대로 닫지 않았다고 말해준다. 방으로 달려가니 양쪽 문고리를 모두 이어 자물쇠를 채우고 닫아야 하는데 한쪽 문고리만 자물쇠를 채워 놓았다. 아찔하고 한심한 순간이었으나 별일은 없었다. 이제 내일은 택시를 대절해 옥룡설산과 주변지역을 다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