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20 03:30 (토)
영화로 쓰는 세계경제 위기史(6)‘버블로 고!’㊥'꿈속의 버블'
영화로 쓰는 세계경제 위기史(6)‘버블로 고!’㊥'꿈속의 버블'
  • 이재광 이코노텔링 대기자
  • jkrepo@naver.com
  • 승인 2020.01.15 20:3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베스트셀러 만화 작가출신 감독의 만화적인 상상력이 화면 곳곳에 투영
땅 값 천정부지로 오르자 1990년 日本 대장성의 대출억제策 칼 빼 들어
“그때가 좋았다”며 '잃어버린 20년'설정… ’빚‘은 ’빛‘이 아닌 ’어둠‘ 자각

2007년 개봉된 영화 <버블로 고!! 타임머신은 드럼 방식(이하 '버블로 고!')>의 감독 바바 야스오(馬場康夫)는 만화가, 그것도 일본에서 내로라하는 베스트셀러 만화가 출신이다.

1954년생으로 대학 졸업 후 일본의 대기업 히타치제작소(日立製作所) 홍보실에서 근무하다 1981년 만화잡지 『빅 코믹 스피리츠(ビッグコミックスピリッツ)』에 4컷 만화 '변덕 컨셉(気まぐれコンセプト)'을 연재하며 만화계에 정식으로 발을 들여 놓았다.

이후 2년이 지난 1983년 그는 만화 『허세강좌(見栄講座)』를 발간 부와 명성을 한꺼번에 거머쥐었다. 이 만화책은 무려 65만부가 팔리는 빅 히트를 기록했고 그에게 엄청난 부(富)를 안겨줬다.

바바 야스오(馬場康夫) 감독. 그는 영화감독 뿐 아니라 만화가로도 명성을 떨쳤다. 특히 1983년 발간된 만화책 『허세강좌(見栄講座)』는 무려 65만부가 팔려나가며 그에게 엄청난 부와 명성을 가져다줬다. 다음해 그는 영화ㆍ출판기획사인 ‘호이쵸이 프로덕션(ホイチョイ・プロダクションズ)’을 설립, 대표로 활동한다.
바바 야스오(馬場康夫) 감독. 그는 영화감독 뿐 아니라 만화가로도 명성을 떨쳤다. 특히 1983년 발간된 만화책 『허세강좌(見栄講座)』는 무려 65만부가 팔려나가며 그에게 엄청난 부와 명성을 가져다줬다. 다음해 그는 영화ㆍ출판기획사인 '호이쵸이 프로덕션(ホイチョイ・プロダクションズ)'을 설립, 대표로 활동한다.

그는 이를 계기로 아예 다니던 회사를 그만 두고 자기 회사를 차린다. 1984년 영화ㆍ출판기획사인 '호이쵸이 프로덕션(ホイチョイ・プロダクションズ)'을 설립, 직접 대표를 맡으며 회사를 키워나갔다.

또한 회사 설립 직후부터 본격적인 영화 제작에 나선다. 1987년 <나를 스키장에 데려가 줘(私をスキーに連れてって)>, 1989년 <그녀가 수영복으로 갈아입으면(彼女が水着にきがえたら)>, 그리고 1991년 <파도의 수만큼 안으면(波の数だけ抱きしめて)> 등 4년 사이 세 편의 영화를 선보였다.

이후 그는 두 편의 영화를 더 제작했는데 1999 작 <메신저(メッセンジャー)>와 바로 이 영화 <버블로 고!>다. 결국 <버블로 고!>는 그의 마지막 작품이 되는 셈이다.

만화를 그리던 사람이 웬 영화냐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에게 그런 말은 어울리지 않는다. 대학 재학 시절 그는 이미 만화 동인지와 8mm 영화를 제작한 경험이 있었다. 그뿐 아니다. 1987년 첫 장편영화 데뷔 전까지 그는 이후 4편의 실험 영화를 더 만들기도 했다. 이것만 해도 영화감독으로서의 그의 커리어는 그다지 흠잡을 데가 없을 것이다.

그런데 이 기간 동안 그는 영화에만 집중한 게 아니었다. 만화가로서의 활동도 적극적이었다. 그는 1983년부터 2007년까지 모두 7편의 만화를 발표했다. 『극락 스키(1987)』, 『도쿄 좋은 가게 야레 가게(1994)』, 『엔터테인먼트의 새벽(2007)』, 『변덕개념의 크로니클(2007)』 등이다. 그는 누가 봐도 영화와 만화라는 장르를 자유롭게 넘나드는 다재다능한 재주꾼임에 틀림없다.

게다가 그는 1984년 이후 프로덕션 대표이기도 했다. 그의 이력에는 영화감독에 만화가뿐 아니라 '프로덕션 대표'라는 명함도 넣어야 한다. 그의 능력의 한계가 궁금해지는 대목이다. 그가 만화가라는 사실은, 그저 그의 특이한 이력서를 설명하는데 필요한 것만은 아니다. 그가 만든 영화를 이해하는 데에도 매우 중요한 해석의 끈이 아닐 수 없다. 어쩔 수 없이 영화에 만화의 특성이 담겨 있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실제로 그렇다. 특히 이 영화 <버블로 고!>에는 영화 곳곳에서 만화의 특성을 찾을 수 있다.

영화에서 수차례 등장하는 바람둥이 시마카와지 이사오(아베 히로시 분)에게 날리는 여성들의 '분노의 주먹'과 그 주먹을 맞고 고개를 돌리는 고정된 프레임, 또는 밥그릇과 젓가락이 날아다니는 난투장면 등은 만화 한 컷을 떠올리기에 충분하다. 그가 만화가라는 사실을 몰랐다면 그 같은, 어떻게 보면 유치하기까지 한 장면은 이해되기 어려울 수 있다.

베스트셀러 만화작가이기도 한 바바 감독은 영화에 만화적 기법과 구성방식을 적용했다. 젊은 시절 바람둥이였던 재무성 관료 시마카와지 이사오에게 날리는 여성들의 ‘분노의 주먹’이나 밥그릇과 젓가락이 날아다니는 난투장면 등은 만화 한 컷을 떠올리기에 충분하다.
베스트셀러 만화작가이기도 한 바바 감독은 영화에 만화적 기법과 구성방식을 적용했다. 젊은 시절 바람둥이였던 재무성 관료 시마카와지 이사오에게 날리는 여성들의 '분노의 주먹'이나 밥그릇과 젓가락이 날아다니는 난투장면 등은 만화 한 컷을 떠올리기에 충분하다.

그러나 영화에는 그보다 더 중요한 만화적 특성이 담겨 있다. 바로 단순화다. 만화는 단순해야 한다. 인과관계나 과학적 설명 등은 건너뛰기 일쑤다. 그럼으로써 이야기의 속도감을 높이고 몰입을 유도한다.

인과관계도 설명도 없는 이야기를 '만화 같다'고 말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만화 같은 이야기, 앞뒤 설명 없는 이야기, 단순한 이야기, 그냥 웃고 울고 넘어가는 이야기. 영화 <버블로 고!>가 딱 그렇다. '만화 같은' 형식으로 관객에게 말을 한다. 때로는 유치하고 때로는 실소(失笑)가 새나오고 때로는 어이가 없다. 예를 하나 들어보자. 과거로 돌아가는 타임머신에 대한 것이다. 이 타임머신은 어떤 원리로 작동하고 어떻게 시간여행을 할 수 있을까? 이에 대한 설명은 단 할 줄도 없다. 영화를 보기 전까지 '타임머신은 드럼형식'이라는 제목도 이해 곤란이다.

그리고 영화를 본 뒤에는 황당함을 감추기 어렵다. '드럼형 세탁기'를 타고 시간여행을 한다는 설정이기 때문이다. 어떻게 세탁기가 타임머신이 됐는지, 통돌이 등 다른 형식의 세탁기는 왜 안 되는지, 그리고 과거로 돌아가는데 꼭 수영복을 입고 세제까지 뿌려야 하는지.... 이에 대한 설명은 없다. 전혀 없다.

타임머신 하면 상식처럼 떠오르는 '양친 살해의 패러독스'에 대한 얘기도 없다. 자신이 과거로 되돌아가 양친을 살해하면, 과연 자신은 존재할 수 있을까? 시간여행 관련 영화를 대표하는 <백 투 더 퓨쳐>에서는 젊은 시절의 부모가 결혼에 실패할 수도 있다는 설정으로 이 패러독스를 풀고 있다. 미래에서 찍은 자기 사진이 희미해진다는 것이다. 하지만 영화 <버블로 고!>에서는 그렇지 않다. 과거로 돌아가서 자기 또래의 부모와 어울리고 모험을 즐긴다. 한편으로 많은 관객이 이 같은 '만화 같은 영화'에 황당함을 느끼는 것은 당연해 보인다.

하지만 이 같은 '만화 같은 단순함'이 강력한 무기가 되는 경우도 있다. 영화의 설정은 매우 단순하다. 2007년 일본경제는 파탄 일보 직전이다. 재무성은 그 이유를 1980년대 버블의 생성과 붕괴로 생각한다. 이를 막으려면 1990년으로 되돌아가야 한다.

그해 3월 재무성은 천정부지의 지가 상승을 막기 위한 강력한 대출 규제 정책을 발표하고 실시하게 된다. 영화는 영화 속 주인공들의 활약을 통해 일본경제의 발전을 위해서라면 이 '규제'를 어떻게든 막아야 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영화 속 주인공들은 마침내 이 임무를 완수한다. '대출 규제'에서 '대출 규제 연기'로 정책을 바꾸는데 성공한 것이다.

그리고 다시 되돌아온 미래 2007년. 주인공의 눈앞에는 꿈같은 일본이 펼쳐진다. 높은 빌딩 숲으로 뒤덮인 도쿄만 앞바다에 거대한 배들이 오가고 일본의 발전은 세계의 부러움을 산다는 내용이다.

1990년 3월 각 은행에 ‘대출총량규제’ 방안을 통지한 당시 재무성 은행국장 츠치다 마사아키(土田正顕). 그는 이후 일본 국세청장과 도쿄증권거래소 대표를 역임한 뒤 영화 개봉 3년 전인 2004년 67세의 나이로 별세했다.
1990년 3월 각 은행에 '대출총량규제' 방안을 통지한 당시 재무성 은행국장 츠치다 마사아키(土田正顕). 그는 이후 일본 국세청장과 도쿄증권거래소 대표를 역임한 뒤 영화 개봉 3년 전인 2004년 67세의 나이로 별세했다.

1980년대 버블 붕괴의 원인을 1990년 3월의 대출 규제 정책 하나에서 찾다니.... 확실히 초등학교 수준의 만화 같은 단순함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아니 그래서 강력하다. 일본 경제 버블 붕괴에 대한 이처럼 단순하고 그래서 강력한 가설은 없다.

1990년 3월 대출 규제정책만 없었다면 일본의 '잃어버린 10년' '20년' 심지어 '30년'은 오지 않았을까? 물론 대부분의 정상적인 관객이라면 그 같은 해석을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다. 역사에서 그런 단순한 해결책은 없다는 것을 대부분은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일본이 20~30년이라는 '잃어버린 세월'을 갖게 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만일 1990년 3월의 규제책이 없었다면 일본 경제는 어떻게 됐을까? 이제 여기에 대한 얘기를 해 보자. 초등학생 수준의 단순한 해석이지만 생각해 볼 가치는 충분하다고 보인다.

이를 위한 첫 출발은 1990년 3월의 정책 내용이다. 일본 대장성은 츠치다 마사아키(土田正顕) 은행국장의 명의로 전국 은행에 한 장의 통지문을 발송한다. 일본 국내에서 발생한 엄청난 투기열풍을 잠재우기 위해 대출을 규제한다는 내용이었다. '부동산융자총량규제'라는 제목의 이 통지문 내용은 단순했다.

①부동산 대출 증가율을 총 대출 증가율 이하로 억제한다는 내용의 '총량 규제'와 ②부동산ㆍ건설ㆍ주택금융전문회사 등 비은행에 대한 '대출실태보고'를 요구했던 것이다. 이 두 가지 요구 사항은 언뜻 별 것 아닌 것으로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이 통지문은 일본 경제에 즉각적인 효력을 발생시켰고 후일 80년대 후반의 버블 경제를 터뜨리는 '극약처방'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특히 '부동산 대출 증가율을 총 대출 증가율 이하로 억제한다'는 내용의 첫 번째 요구 사항은 이른바 '열도개조계획(列島改造計畫)'이라는 국토개발계획으로 땅값이 급등한 1973년 이후 17년 만에 시행된 강력한 정책이었다. 이 통지문으로 개별 금융기관은 전체 부동산 대출 증가율에 한정시켜 대출을 해야 했지만 시중에 남아도는 돈으로 경쟁적으로 대출을 해 온 금융기관으로서는 '대출억제'는 '대출회수'로 받아들여질 수밖에 없었다.

역사는 이 정책으로 1980년대 일본을 취하게 만든 버블경제가 끝났다고 말한다. 술에 취해 흥청망청 살던 삶의 결과는 괴롭다 못해 잔인하기까지 하다. 버블기를 경험한 일본의 중장년 중 많은 이들이 그때를 그리워한다. 2007년 어려운 삶을 사는 영화 속 인물들 또한 그렇다.

"버블 최고"나 "그때가 좋았다"는 말을 통해서도 이를 알 수 있다. 대출의 확대와 규제는 이처럼 세상을 천국과 지옥으로 갈라놓는다. 그것이 바로 '빚'의 힘이다. 이를 통해 우리는 '빚'이 '빛'이 아닌 '어둠'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빚'은 어떻게 세상을 바꿔놓는 것일까? 다음 편에서는 일본의 1980년대 버블의 형성과 붕괴를 통해 이를 알아보도록 하자.

-------------------------------------------------------------------------------------------------------------------------

이재광 이코노텔링 대기자❙한양대 공공정책대학원 특임교수❙사회학(고려대)ㆍ행정학(경희대)박사❙경기연구원 선임연구위원, 뉴욕주립대 초빙연구위원, 젊은영화비평집단 고문, 중앙일보 기자 역임❙단편소설 '나카마'로 제36회(2013년) 한국소설가협회 신인문학상 수상❙저서 『영화로 쓰는 세계경제사』, 『영화로 쓰는 20세기 세계경제사』, 『식민과 제국의 길』, 『과잉생산, 불황, 그리고 거버넌스』 등 다수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 서울특별시 서초구 효령로 229번지 (서울빌딩)
  • 대표전화 : 02-501-6388
  • 청소년보호책임자 : 장재열
  • 발행처 법인명 : 한국社史전략연구소
  • 제호 : 이코노텔링(econotelling)
  • 등록번호 : 서울 아 05334
  • 등록일 : 2018-07-31
  • 발행·편집인 : 김승희
  • 발행일 : 2018-10-15
  • 이코노텔링(econotelling)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이코노텔링(econotelling). All rights reserved. mail to yunheelife2@naver.com
  • 「열린보도원칙」 당 매체는 독자와 취재원 등 뉴스이용자의 권리 보장을 위해 반론이나 정정보도, 추후보도를 요청할 수 있는 창구를 열어두고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고충처리인: 장재열 02-501-6388 kpb11@hanmail.net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