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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오일 변천사에는 이란혁명과 외환위기가...
에스오일 변천사에는 이란혁명과 외환위기가...
  • 고윤희 이코노텔링 기자
  • yunheelife2@naver.com
  • 승인 2018.11.12 10:5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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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람코, 고도화 설비 이어 석유화학 증설에 10조투자 지원

2012년에 개봉된 영화 하나가 있다. 1979년 이란혁명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당시 성난 시위 군중이 미국 대사관을 점령해 외교관을 인질로 가두었다. 그런데 그 중 미국 외교관 6명은 테헤란 주재 캐나다 대사관으로 몰래 도망쳤다.

미국 중앙정보부(CIA)는 이들을 구출하기 위해 위장 작전을 펼쳤다. 가짜 공상과학 영화제작팀을 꾸려 이란에 투입했다. 이들은 이란 문화부의 협조도 받아 낸다. 그 영화가 바로 ‘아르고’다.

사우디의 국영 정유회사인 아람코는 에스오일의 전신 쌍용정유에 지분투자를 결정했고 투자 20여년만에  에스오일의 1대주주로 올라섰다.
사우디의 국영 정유회사인 아람코는 에스오일의 전신 쌍용정유에 지분투자를 결정했고 투자 20여년만에 에스오일의 1대주주로 올라섰다.

2009년 30년만에 공개된 CIA 첩보작전의 시나리오대로 만들아졌디. 결국 6명은 캐나다 여권을 들고 테헤란 공황을 가까스로 빠져나왔고 대사관에 발목이 잡힌 인질 70명은 444일 동안의 연금 생활을 했다.

영화 ‘아르고’에 그려진 것처럼 이란의 급진 이슬람 혁명은 국제사회에 적잖은 파장을 일으켰다. 친미 서방 정권과는 담을 쌓았고 이로 인해 한국 기업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줬다.

중동 수출 전선에 빨간불이 켜졌고 특히 국내에 투자한 이란 자본이 발을 빼는 바람에 오늘날 ‘에스오일’도 파란을 겪는다.

에스오일은 1976년 한국 쌍용양회와 이란 국립 석유회사(NIOC)가 50대 50 합작으로 만든 한국이란석유㈜로 출발했다. 당시 쌍용그룹의 창업주이자 박정희 정부의 실력자였던 김성곤 회장은 국내경제 성장세가 가팔라지자 에너지 소비가 급증할 것으로 내다봤다. 특히 쌍용의 모기업인 쌍용양회부터가 에너지원으로 석유를 많이 쓰고 있었다. 안정적인 원유확보가 필요했다. 그래서 이란과의 합작에 팔을 걷어 한이석유를 만들었다.

그러나 합작 3년 만에 이란혁명의 여파로 이란자본이 떠났고 합작관계는 청산된다. 80년 쌍용은 이란의 지분을 사들여 회사이름을 쌍용정유로 고쳐 새출발했다.

이즈음 쌍용에 합류한 눈에 띄는 인재가 있었다. 바로 김성곤 회장이 직접 스카웃 한 김선동 에스오일 전 회장이다. 김 회장은 쌍용정유의 독립경영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고 그의 경영 행보는 지금도 에스오일 내에서 회자가 되고 있다.

김 회장은 서울대 화공과를 졸업한 후 유공(SK이노베이션 전신)에 입사해 정유시설의 복잡한 설계도를 머리에 담고 다니는 걸어다니는 ‘정유박사’였다.

여하간 쌍용정유는 쌍용양회(시멘트)와 함께 그룹사업의 두 축으로 성장했다. 그런데 위기가 닥쳤다. 2세 총수인 김석원 회장의 지나친 자동차 투자가 쌍용그룹의 경영에 발목을 잡았다. 그 여파는 쌍용정유에도 미쳤다. 이 때 김선동 회장이 직접 ‘지분 세일’을 위해 중동 공략에 나섰다. 지금의 주인이 된 사우디아라비아 국영석유회사 아람코를 끌어들였다. 김 회장이 직접 나선 투자유치 프리젠테이션은 당시 협상 과정의 백미였다고 전해진다.

92년 아람코가 지분의 35%를 갖고 경영에 참여하면서 에스오일은 드디어 날개를 달기 시작한다. 당시 국내 정유시장의 판도를 보면 유공과 칼텍스 정유(GS칼텍스 정유)가 2강을 형성하고 나머지 쌍용,한화, 극동정유는 서로 꼴지라 해도 무방할 만큼 시장지배력이 약했었다. 급기야 한화와 극동은 주인이 바뀌어 역사속으로 사라졌다.

아람코의 지분참여로 힘을 얻은 쌍용정유는 당시로서는 큰 돈인 1조5000억원을 들여 벙커C유크렉킹센터(BCC)를 준공해 고부가가치 정유정제 시설을 갖춘 업체로 거듭난다. 매출대비 이윤을 많이 남기는 회사가 된 것이다. 연이어 98년에는 당시 단일설비로는 최대규모인 연간 70만톤 규모의 자일렌 센터를 준공해 석유화학쪽으로 사업에 눈을 돌리며 ‘실속있는 정유사’로 거듭난다.

쌍용과 아람코의 ‘2인3각 경영’은 순풍에 돛단 듯 질주했다. 그런데 이번엔 IMF(외환위기) 파고가 덮쳤다. 쌍용그룹이 거의 공중분해 되는 수준에 이르렀다.

쌍용은 그룹이 보유중인 지분(28.4%)을 쌍용정유가 자사주로 사도록 해 현금을 확보할 정도로 쪼들렸다. 이로써 쌍용은 사실상 쌍용정유에서 완전히 손을 떼게 됐고 2000년 에스오일이란 이름으로 다시 탈바꿈하게 된다.

이 때까지만 해도 아람코는 에스오일의 1대주주였지만 김선동 회장이 이끄는 경영체제를 지원하고 도와주는 등 직접 경영에는 선을 긋고 있었다. 아람코의 현지화 경영전략의 하나였다.

특히 2007년 자사주 형태로 보유중이던 지분을 한진그룹에 매각해 한진이 이사회 의장직을 맡게 되자 아람코의 이런 자세는 유지됐다.

하지만 2009년 김 회장이 퇴진하고 한진이 2015년 지분을 아람코에 팔면서 아람코는 에스오일의 명실상부한 주인이 됐다. 쌍용정유에 대한 지분 투자를 한 지 23년만이다. 이란이 손을 뗀 지는 35년만의 일이다.

그해 바로 6000억원이 넘는 순익을 남긴 에스오일은 2016년과 2017년 연거푸 1조2000억원 규모의 순익을 올렸다.

이에 힘입어 에스오일은 최근 2단계 석유화학설비 증설을 위해 5조원을 투입키로 했다. 1단계와 합쳐 모두 10조원을 투자하는 거대 프로젝트다. 정유사업을 강화하면서 석유화학의 기반을 넓혀 첨단 소재의 원료를 공급하겠다는 전략이다. 투자 선순환의 고리를 계속 이어가겠다는 뜻이다. 에스오일은 아람코의 해외투자 가운데 가장 성공적인 사례로 꼽힌다.

오스만 알 감디 에스오일 대표이사는 “에스오일을 한국내에서 존경받고 경쟁력 있는 에너지 화학 회사로 만들겠다“고 말했다. 실제로 아람코가 직접 경영에 나서면서 직접 투자를 늘리는 한편 지역사회와도 협력관계를 넓혀 ‘좋은 외국계 회사’란 평가를 받고 있다.

또 에스오일의 투자회사인 아람코는 우리나라의 중동외교의 가교역할도 하는 등 한-사우디 친선에 일조하고 있다.

한국의 산을 유독 좋아해 방한할 때마다 북한산에 올랐던 나이미 석유장관(사우디 아람코 사장역임)은 대표적인 친한파로 꼽힌다. 그는 아람코가 처음으로 에스오일에 투자를 결정할 때 아람코 사장 자리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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