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7-01 12:10 (화)
뉴욕을 만든 사람들㉗ '마피아 두목'드 니로
뉴욕을 만든 사람들㉗ '마피아 두목'드 니로
  • 곽용석 이코노텔링 기자
  • felix3329@naver.com
  • 승인 2019.12.29 18:4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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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딘가 침울하고 고뇌의 그림자가 드리운 캐릭터로 관객 사로잡아
"세계 어디가도 뉴욕만큼스릴이 있는 곳 있느냐"라는 천생 뉴요커
"트럼프는 깡패 대통령이자 돼지.이민 고려 중" '反트럼프' 앞장 서

차가우면서도 때론 명민한 역할을 잘 소화해내는 슈퍼스타 드 니로. 미디어들의 집요한 사생활 감시에도 스캔들이나 잡음을 드러내지 않은 배우다. 자기관리가 철저했다. 또 주어진 캐릭터를 꼼꼼하게 연구해 연기에 표출하는 노력파 연기자이기도 하다. 그래서 지금까지 40년에 걸쳐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고 주변의 존경 받는다.

난폭하며 정신적으로 혼란에 빠진 인물 연기에 특히 정평이 나있다. 코미디장르도 잘 소화해 만능 연기의 소유자란 수식어도 붙는다. 그는 뉴욕 맨해튼 한복판 전통 동네인 그리니치 빌리지에서 1943년 태어났다. 부모 모두 화가였다.

2008년 트라이베카 영화제 참석한 로버트 드 니로 모습. 사진=위키미디어.
2008년 트라이베카 영화제 참석한 로버트 드 니로 모습. 사진=위키미디어.

 부모는 거의 낙제점인 사람들이다. 예술가들이 대부분 그렇다. 생활력이 현저히 떨어진다. 소위 비경제적이며 가정적인 것과는 거리가 멀었다.

 아버지는 여자보다 남자를 좋아했고, 어머니는 남자보다 마르크스주의를 더 좋아했다. 둘이 만나서 사는 것 자체가 기적이라며 주변에선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둘은 모두 고집이 세고 강했으며 자신의 주장을 꺾지 않았다.

드 니로 라는 아이는 화실에서 방목하는 수준으로 어린 시절을 보낸다. 드니로가 태어난지 3년만에 부모는 결국 갈라선다. 아버지는 조증과 울증이 반복되는 삶을 지속한다. 그나마 어린 드 니로가 찾아가면 반갑게 맞이해주는 것이 오히려 다행였을 정도였다. 그의 어린시절 ‘그리니치 빌리자’와 ‘리틀 이탈리아’는 골수 예술가들이 많이 거주하는 동네다.

동네가 오래되다 보니, 뉴욕시의 원형을 보존하는 운동가와 좌파적 예술가들이 많이 살았다. 뉴욕시에서 어떠한 개발을 할 경우엔, 항상 이 동네에서 반대 성명과 운동이 시작된다. 뉴욕시 행정부 개발계획의 독불장군 '모제스'도 결국 이 동네 아주머니와 할머니들의 끈질긴 반대에 부닥쳐 고속도로나 도로 확장  계획을 접곤했다..

그의 몸에는 이탈리아인의 DNA가 강하게 흐르고 있다. 어릴 적 놀던 곳이 이탈리안들이 정착해 살던 리틀 이탈리아였고, 그래서 그는 이탈리아어가 유창했다. 청소년기에 친구들과 동네 이곳 저곳을 돌아다니면서 그는 친구로부터 ‘마피아 두목 같다’라는 말을 자주 들었다. 하얀 얼굴에 말없이 씻 웃는 모습으로 유창한 이탈리어 말을 해대니 말이다.

이혼으로 헤어진 부모들은 멀리 떨어지지 않고 가까이 살았다. 가끔 드 니로는 낮에 아버지를 찾아간다. 아버지는 그와 함께 주변 극장에 영화를 보러 간다. 저녁엔 집을 돌아와 어머니와 함께 한다. 그것이 그나마 그에겐 행운이다. 조울증세의 아버지를 따라 영화관에 자주 간 것이 그나마 그에게 인생의 길을 안내해 것이라면 그나마 혜택이랄까.

그러한 역경이 오늘의 배우로서 존재하게 하는 커다란 원동력이라 한다면 그 것 또한 부정할 수는 없다. 부모가 잘 돌봐주었다고 다 잘되는 것은 아닌 것이다. 그는 20대 연극학원에서 배우로서의 기본기를 익혔다. 그 때  젊은 영화감독 마틴 스콜세이지를 만난다. 그의 영화인생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다.

그들은 젊은 날의 드 니로가 「비열한 거리」에서 애송이 마피아 '자니 보이' 역을 연기한 1973년에 처음으로 함께 일했다. 마틴 감독도 그의 명민한 감각을 발견해 캐스팅했다.  스콜세지와 드 니로는 처음부터 관계가 탄탄해져간다. 종종 아무 말 하지 않고도 서로 이해할 수 있는 정도가 된다. 둘은 맨해튼에서 서로 몇 블록 떨어진 거리에서 자랐다. 1972년에 한 파티에서 서로 소개를 받았을 때 그들은 말을 나눈 적은 없다. 그러나 많이 본 얼굴임을 서로 알았다.

 많은 배우들이 함께 일하기를 열망한 감독 스콜세지. 그것은 그가 배우들에게서 영화상을 수상할 만한 훌륭한 연기를 이끌어낼 수 있는 능력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그 증거가 바로 드 니로다. 스콜세지는 지금도 자신이 쓰거나 감독을 맡으려고 생각하는 거의 모든 대본을 미리 드 니로에게 보여준다고 한다. 드 니로가 캐스팅 되든 않든 상관없이 말이다.

두 사람은 「비열한 거리」 이후 일곱 편의 영화에서 함께 작업했다. 「택시 드라이버(1976)」, 「뉴욕 뉴욕(1977)」, 「분노의 주먹(1980)」, 「코미디의 왕(1983)」, 「좋은 친구들(1990)」, 「케이프 피어」, 「카지노」. 둘은 거의 40년을 함께 호흡을 맞췄다. 실과 바늘관계다. 드 니로 하면 마틴 스콜세지 감독이고, 마틴 감독하면 드 니로가 연상된다.

그는 전통적인 관점에서 보면 빼어난 얼굴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평범한 듯하면서도 비범함을 갖고 있었다. 어딘가 깊고 침울한 고뇌의 그림자가 드리워진 얼굴이다. 그 점에서 관객들은 참신해 보였고, 뭔가의 마력에 끌려들어가는 느낌으로 영화에 지배당한다.

'뉴욕 뉴욕(1977)' '디어 헌터(1978)' '언터처블(1987) '사랑의 기적(1990)' '슬리퍼스(1996)' 그리고 '샤크(2004)'까지 다양한 역할을 거침없이 소화했다. 그래서 그의 영화 상영시간은 짧게 느껴진다. 이야기 전체의 흐름을 놓치지 않게 하는 속도감있는 그의 연기는 관객을 사로잡는다. 그는 특히 '분노의 주목(1980)'에서, 끔찍한 인격을 표현하는 역할을 연기하고도 거뜬히 두 번째 아카데미상을 수상한다.

그는 성실했다. 드 니로는 예술적 완전성에의 노력과 진지함으로 대하는 연기 활동에서 만큼은 타인으로부터 인정을 받는다. 인기와 함께 출연료도 폭등한다. 초기에 '택시 드라이버(1976)'로 3만5천 달러를 벌었다. '애널라이즈 댓(2002)'과 '미트 페어런츠 2(2004)'에서 2천만 달러의 출연료로 증가했고, 요즘 그의 평균 출연료는 3~5천만 달러 정도한다고 한다. 드 니로는 뉴욕을 사랑했다. '세계 어느 도시를 가도 뉴욕만한 곳이 없다'고 그는 강조했다. '어디에든 뉴욕만한 스릴이 없기 때문이다.'

자주 여행가는 유럽이든 영화를 위해 가야만 하는 할리우드든 결국 그는 잠시 머무는 곳일 뿐이다. 그는 항상 뉴욕에 있기를 희망했고 그 곳에 있어야 마음의 안정을 찾는다고 말한다. 천생 뉴요커인 것이다. 그것은 바로 그의 고향, 그리니치 빌리지와 리틀 이탈이아가 그 곳에 있기 때문이다.

그러던 그가 트럼프가 정치판에 나온 이후 마음이 편치 않다. 트럼프가 대통령에 당선된 직후에는 “외국 이민까지 고려 중"이라고 피력한 바도 있다. 얼마전엔 트럼프 대통령을 "괴물" “깽패 대통령”이라고 강한 펀치를 날렸다. 그는 할리우드의 대표적인 반(反) 트럼프 인사로 그를 몹시 싫어하고 있다. 지난 3년전 대통령 선거전에는 더 심한 말을 내뱉기도 했다.

“트럼프는 ‘멍청이’이자 ‘돼지’이며 ‘개’나 ‘소’이기도 하다”라면서 “무슨 짓을 하는지 스스로 알지 못하는 개 같은 예술가와 마찬가지”라고 극언했다. 그러고선 힐러리 클린턴을 지지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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