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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을 만든 사람들②센트럴파크를 지켜낸 재클린
뉴욕을 만든 사람들②센트럴파크를 지켜낸 재클린
  • 곽용석 이코노텔링기자
  • felix3329@naver.com
  • 승인 2018.11.08 15:1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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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클린과 그녀의 딸 케롤라인과 아들 존이 함께 승마를 즐기는 모습( 1962년/케네디박물관)
재클린과 그녀의 딸 케롤라인과 아들 존이 함께 승마를 즐기는 모습( 1962년/케네디박물관)

 

뉴욕의 심장이자 허파인 센트럴 파크를 누구보다 사랑한 여인이 있다. 150년동안 훼손되지 않고 잘 유지돼온 혁혁한 공로자 중 한 명이다. 그녀는 센트럴 파크를 무척 좋아했다. 이 공원의 보존을 위해 누구보다도 열정적으로 뛰어다녔다. 재클린 케네디 오나시스다.

센트럴파크 주변에 들어서는 건물들은 그의 감시에서 벗어날 수가 없었다. 언감생심 건물의 그림자 조차 공원에 드리우지 못하게 막았다.
지금도 센트럴파크 주변건물들은 그리 높지 않다. 공원은 뉴욕시민 모두의 것이기에 함께 즐겨야 한다는 그녀의 지론이 낳은 결과다.

재클린은 1929년 뉴욕 동쪽 긴 섬 롱아일랜드 끝에 있는 동네인 사우스햄턴에서 태어났다. 어릴적 이 곳 뉴욕에서 가족과 함께 살기도 했다. 1963년 케네디가 암살당한후 미망인 신분으로 다시 뉴욕으로 돌아온다. 그리고 5년후 그리스 선박왕 오나시스와 재혼한다. 그렇게 떠난 그녀가 다시는 뉴욕에 오지않으리라 생각했다. 하지만 원했던 결혼 생활에 행복을 느끼지 못했다.바로 이혼 소송 절차를 밟았다. 그 와중에 1975년 오나시스가 사망했다. 오나니스의 유산과 비교하면 아주 작은 돈인 '2600만달러'의 위자료를 받고 그녀는 다시 돌싱이 된채로  뉴욕으로 돌아 온다. 

40대중반의 그녀의 열정과 능력은 그저 공원과 호수가만 맴돌게 하지 않았다. 수구초심이라던가 초년병 일했던 출판 잡지사 편집자로 일하며 활기를 찾았다. 작가를 발굴하고 책을 만들고 사회활동가로서 '있는 자의 의무', 노블레스 오블리주 정신을 이어간다. '뉴욕의 감시자'로서의 역할도 게을리 하지 않았다. 공원 주변의 건물이 개발될 경우 그림자조차 공원 안쪽으로 드리우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59번가 공원 모서리 부근의 컬럼버스 서클은 젊은이들의 문화 센터로서 유명한 만남의 공간이다. 이 로터리에 거대한 복합빌딩이 들어서려 하자 그녀는 강력 반대한다. ‘타임 워너 센터’는 그렇게 몇 십년간 계획조차 잡지 못하게 된다. 결국 그 빌딩은 그녀가 죽은 후 첫 삽을 뜰수 있었다. 당초보다 뒤로 물러선 상태로, 그것도 단일 빌딩에서 쌍둥이 건물로 재설계되었고 층고도 한참 낮춰 빌딩을 완공한다. 그림자가 공원에 그다지 많이 드리워지지않는 선에서 말이다.

뉴욕의 기차 종합역인 그랜드 센트럴역도 그녀가 없었으면 존재하지 못했다. 시민운동의 선봉에서 보존을 외쳤다. 언론이 거들었고 결국 정치인들이 손을 들었다. 뉴욕의 위대한 역사문화 보존에 찬란한 횃불이 된 셈이다.

 암투병을 하다 64세로 서거했다. 두 번의 결혼 모두 남편을 먼저 보내고 마지막엔 병마와 싸우다가 그렇게 갑작스럽게 갔다. 그녀는 자식복도 별로 없는 셈이다. 1녀 2남을 두었는데 지금 생존한 사람은 큰 딸 캐롤라인(주일 미국 대사)뿐이다.
 맨해튼 센트럴파크 북쪽에 큰 호수가 있다. 공원 조성하면서 1858년에 인공으로 만든 것이다. 예전 이름은 그냥  '센트럴 파크 저수지'였다. 지금은 ' 재클린 케네디 오나시스 레저보아'. 과거 맨해튼의 상수도 비상용으로 사용했던 곳이다. 지금은 상수도용으로서의 기능은 없어졌지만, 수많은 관광객과 뉴요커들의 산책 조깅코스로 유명하다. 재클린은 이 호수주변을 무척이나 좋아했다. 그녀는 1964년 케네디 사망후 7살과 4살난 자녀 둘을 데리고 이곳 주변에 있는 아파트에서 살았다. 줄곧 이 호수가가 잘 보이는 5번가 84번스트리트의 15층 코업아파트에서 살았다. 공원과 호수를 무척이나 좋아해서 그녀 사후에 붙여진 이름이다. 
 그녀의 매력적인 이미지와 교양 그리고 쉬지않는 그녀의 사회활동에서 미국인들은 자랑스럽게 생각했고 그만큼 아쉬어 하고 있는 듯하다. 2년10개월의 짧은 퍼스트레이디였지만 미국인들 마음속에는 영원한 영부인으로 자리잡고 있다. 시간의 일정한 길이가 사람의 기억과 비례하지 않음을 확인시켜 준다.
무심코 뉴욕에 들러 관광지로서 들리는 곳 센트럴 파크 넓이가 무려 여의도 전체 크기 만한 정확히 100만 평이다. 150년동안 초기 당시의 모습을 거의 그대로 보존돼어 있다. 수만은 시민운동가, 자연보호주의자들의 작은 노력들의 결정체이다. 그 중 한 명이 재클린인 것 만큼은 분명하다.
오늘도 인근에 사는 뉴요커들의 제외하고 이 곳을 찾는 외지인만 무려 하루에 20만명이 넘는다. <곽용석 이코노텔링 기자 · 미국 뉴욕주 공인중개사henryk@nestseeker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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