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1-21 20:27 (화)
맨손 창업 '현해탄의 사나이' 신격호 롯데 창업주
맨손 창업 '현해탄의 사나이' 신격호 롯데 창업주
  • 성태원 이코노텔링 편집위원
  • iexlover@hanmail.net
  • 승인 2019.12.04 10:4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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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계 창업 1세대' 유일한 생존자… 97세 고령의 '롯데의 정신'
기발한 마케팅 착상으로 '유통제국'구축해 재계 5위그룹 축성
치매 앓기전 후계구도 정리 못해 골육상쟁 초래…쓸쓸한 말년

최근 97세 고령인 신격호 롯데그룹 창업자(명예회장)에게 다시 한 번 세간의 시선이 쏠렸다. 최근 입원 소식과 함께 위독설이 나돌았기 때문이다. 그는 지난 7월 건강이 악화돼 서울아산병원에 11일간 입원해 기력을 회복하고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 거처로 다시 돌아갔다.

입원 직전에 불안 증세를 보이며 식사도 제대로 못했다고 한다. 병원에서 안정을 취하면서 케모포트(중심정맥관) 시술을 받고서야 기력을 되찾았다는 것. 케모포트 시술은 몸속에 삽입한 중심정맥관을 통해 약물이나 영양제 등을 공급하는 치료 방법이다. 일주일 전엔 또 아산병원에 입원했다. 위중한 상태는 아니라고 한다.

이미 2010년께부터 치매 약을 복용해온 것으로 알려진 그는 주변 사람들도 제대로 분간하지 못하는 상태라고 한다. 그동안 재판정이나 병원 출입 때의 모습이 간혹 언론에 노출됐는데 말이 어눌하고 사리 판단도 잘 못하는 것처럼 비쳐졌다.

고령에 치매가 겹쳤고 2세들 간의 피 튀기는 재산싸움까지 지켜본 탓인데 한국이 낳은 굴지의 사업가 신격호의 인생 종반부가 왠지 쓸쓸해 보인다. 사진자료=뉴스1.
고령에 치매가 겹쳤고 2세들 간의 피 튀기는 재산싸움까지 지켜본 탓인듯 한국이 낳은 굴지의 사업가 신격호의 인생 종반부가 왠지 쓸쓸해 보인다. 사진자료=뉴스1.

그는 일제 강점기인 1922년 울산에서 5남5녀의 장남으로 태어나 20대 초반(1942년)에 청운의 뜻을 품고 맨손으로 일본으로 건너간다. 일본 와세다대 화학공학과를 어렵사리 다닌 그는 전후 일본에서 껌 사업으로 대박을 터트린다. 1948년 일본 도쿄에서 껌 회사인 ㈜롯데를 창업해 이를 종합제과기업으로 키워낸다. 1965년 한·일 수교 후에는 고국인 한국 사업 확대에도 나선다.

그는 박정희 정권의 경제개발계획에 부응하며 제과·호텔·백화점 등 굴지의 유통기업군을 일궈낸다. 이후 건설·석유화학 분야에도 진출해 마침내 한국 재계 5위 기업군을 축성한다. 한·일을 오가며 기업을 키웠던 그는 남 다른 사업 수완과 집념으로 마침내 30년 꿈이었던 123층짜리 잠실 롯데월드타워까지 완공시킨다. 서울의 랜드 마크가 된 이 빌딩은 1987년 부지 매입 후 숱한 곡절 끝에 2009년 착공, 2017년 4월 준공됐다.

신격호는 2017년 6월 24일 명예회장으로 퇴진을 당할 때까지 한·일 양국을 오가며 무려 70년간 사업 일선을 지켰다. 그렇다면 그는 어떤 기업인이었을까. 5가지 포인트로 나눠 영욕으로 점철됐던 그의 사업 행로를 살펴본다.

□ ‘대한 해협 경영자’ 별칭 얻어

그는 현해탄을 오가며 경영에 나서 ‘대한 해협 경영자’란 별칭을 얻었다. 홀수 달에는 한국, 짝수 달에는 일본에 머물렀다. 재일 교포로 일본에서 먼저 사업을 일으킨 다음 고국인 한국에 들어와 대그룹을 다시 축성한 솜씨는 국내 어느 기업인도 흉내 내기 어려운 부분이다. 현지에서 일본 여성과 두 번째 결혼도 했다. 첫 번째 결혼은 일본으로 가기 전 한국 여성과 했었다. 한국 체류가 많아지면서 미스 롯데 출신 여성과 사실혼 관계에 들어가 세인들의 호기심을 자극하기도 했다.

□ ‘유통 거인’으로 한국 재계 5위 축성

그에게도 공과(功過)는 있지만 60년대부터 본격화한 한국의 산업화 과정에 참여해 큰 족적을 남긴 것은 평가받을 만하다. 기발한 마케팅 능력과 과감한 투자, 앞을 내다보는 사업 안목과 결단력, 치밀한 사업전개 능력 등으로 특히 유통 사업에 솜씨를 보이며 신격호 아성을 일궈냈다. 한국 재계 5위 기업군을 축성하며 많은 일자리를 창출했고 경제발전과 국민생활 향상에도 기여했다.

□ 사실상 마지막 남은 재계 창업 1세대

그는 한국 재계 창업 1세대 중 사실상 마지막 남은 기업인이다. 삼성 이병철, 현대 정주영, 대우 김우중 등과 함께 롯데 신격호는 창업 1세대의 대표적인 인물이다. 그가 세상을 떠나고 나면 대그룹을 일으켰던 창업 1세대는 모두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게 된다. 한때 재계 상위에 올랐던 동부그룹 김준기(75) 창업주를 창업 1세대로 분류하기도 하지만 앞에 꼽은 인물들과 같은 반열에 올리기는 어려워 보인다.

□ 막판의 뼈아픈 실책···후계구도 정리 놓쳐

막판에 후계 구도를 제대로 정리 못한 점은 그의 뼈아픈 실책이었다. 평소 그는 견고한 롯데 아성의 카리스마 넘치는 성주(城主)였다. 아무도 거스를 수 없는 자신의 위치가 두고두고 갈 줄 알았을까. 치매가 오기 전에 일찍이 후계 구도를 명확히 했더라면 재산을 둘러싼 2세들 간의 골육상쟁(骨肉相爭) 만큼은 피할 수 있었을지 모른다. 2016년 여름 왕자의 난이 한창일 때 그가 이미 여러해 전부터 알츠하이머(치매) 진단을 받고 매일 약을 복용해 왔다는 보도가 나왔다. 정기적으로 치료를 받았으며, 2세들은 이 사실을 알고 있었다는 보도도 있었다. 2017년 대법원이 그에 대한 한정후견인 지정을 확정해 그런 정황을 더욱 뒷받침했다.

□ 탁월한 사업 안목과 끈질긴 집념

그는 기발한 마케팅 능력과 과감한 투자, 앞을 내다볼 줄 아는 사업 안목과 결단력 등으로 한 시대를 풍미했던 기업인이다. 대표적인 게 30년 숙원 사업이었던 잠실 롯데 123층짜리 롯데월드타워 건축이다. 그는 이미 1980년대 후반에 “언제까지 외국 관광객에게 고궁만 보여줄 순 없다”며 고국 서울에 랜드 마크가 될 만한 마천루를 짓겠다고 나섰다. 숱한 특혜 시비에 시달렸고 건설비도 천문학적으로 불어났지만 굴하지 않고 2017년 4월 건물을 준공시켰다. 문학도의 꿈을 안고 일본으로 갔던 한 청년이 껌이란 하잘 것 없어 보이는 상품에서 시작해 70년 동안 한·일 롯데라는 ‘신격호 아성’을 구축했다. 롯데를 두 아들에게 맡긴 채 인생 종반부를 맞은 그에 대한 평가는 향후 더욱 정밀하게 진행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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