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12-13 10:23 (금)
뉴욕을 만든 사람들㉓보가트의 '만취인생'
뉴욕을 만든 사람들㉓보가트의 '만취인생'
  • 곽용석 이코노텔링 기자
  • felix3329@naver.com
  • 승인 2019.11.20 22:1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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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에 부유한 집에서 태어나'늦깍이 배우'로 은막 데뷰
40후반 '카사블랑카'로 스타덤… 알코올 중독이 앞길 막아
아버지처럼 쓸쓸하고 곤궁한 말년…인생절제의 교훈 남겨

악당, 갱스터, 도회지의 비정한 악역을 주로 맡았던 배우, 험브리 보가트. 그도 뉴욕 출신이다.1899년도에 뉴욕시에 태어났다. 이미 19세기에 태어난 사람이다. 그런데도 오래전 사람으로 기억되어 있지 않고 동시대를 살아간 사람으로 가까이 있었던 사람으로 인식된다.

‘험브리 보가트’를 일약 대스타로 만들어준 1943년 영화  '카사블랑카' 의 마지막 이별 장면.
‘험브리 보가트’를 일약 스타로 만들어준 1943년 영화 '카사블랑카' 의 마지막 이별 장면. 사진=영화 포스터.

우리가 기억하는 그의 영화라고 해봐야 고작 2~3편이다. 그게 그가 성공한 영화 전부다.결국 사람의 인생은 결국 순간의 짧은 장면이 인생 전부를 지배하는 셈이다.그 이면에 숨어있는 어둡고 힘들었던 오랜 기간의 역경들은 한 순간의 영광 속에 묻혀가는 현실 또한 안타까울 뿐이다.그는 유복한 가정에서 태어났다.

그의 집은 맨해튼 어퍼이스트. 고급동네다. 우리로 치면 압구정동이나 반포동 쯤이다. 이 곳에서는 개를 데리고 산책하는 백인들을 아주 흔하게 볼 수가 있는 지역이다.이미 50년전부터 그런 풍경은 익숙해 있었다. 지금도 이 동네를 돌아다녀보면 백인은 물론, 동양인이나 흑인들도 개를 데리고 나오면 경우도 흔하게 볼 수 있다.

이들도 상당한 고소득층에 속한다고 보면 된다. 물론 그 중에 도그워커(dog walker : 반려견 보호자)도 있긴하다. 코딱지 만한 집 한 칸이 10억이 넘는 것은 어제 오늘이야기가 아니다. 서 너 명 한 가족이 살만한 그 동네 평균적인 집 한 채는 30~50억원 기본이다. 그래봐야 방 2개와 거실뿐인데도 말이다.

보가트는 유복한 가정에서 남부럽지 않는 집안에서 태어났지만 말로가 그다지 좋지 않았다. 아버지도 역시 유복한 생활을 영위했지만 말로가 나빴다. 세상 그런 면에선 나름 공평하다 할까. 아버지는 뉴욕 맨해튼에서 유명한 병원 외과의사였다.

가족들은 때마다 별장에 자주 휴가를 간다. 휴양지에서 어린 보가트와 체스와 보트 놀이를 한다. 아버지는 어릴 적부터 그에게 체스와 보트를 가르쳤다. 노후에 취미생활로 이 두 가지를 하면서 아들 등 가족들과 함께 오랫동안 지속되면서 즐길 것으로 예상했다.

그러나 그건 그냥 바램뿐이었다. 세상은 몇 년 앞을 내다보기 어렵고 예상은 거의 빗나가는 게 인생 살이 인가 보다. 중학교 이후 그는 기숙학교에 들어갔고 그 이후 함께 한 시간들은 그다지 많지 않았다. 아버지는 사망직전에 알코올 중독에 재정 파탄으로 아들 보가트에 1만 달러나 되는 빚을 유산으로 물려놓고 죽는다.

본인도 그 시절엔 이미 알콜중독자였다. 술이 말술였다. 기이한 행동도 많이 한다. 손님을 레스토랑에 불러놓고 술을 거나하게 마시고는 계산하지 않고 슬그머니 자리를 떠나기도 하는 경우가 다반사였다. 인간관계가 어떨지는 뻔하지 않은가.

악당, 갱스터, 도회지의 비정한 악역 배우 ‘험브리 보가트’. 1945년 무렵의 모습이다.사진= ⓒCBS  TV.
악당, 갱스터, 도회지의 비정한 악역 배우 ‘험브리 보가트’. 1945년 무렵의 모습이다.사진= ⓒCBS TV.

나이 먹으면 입을 닫고 지갑을 열라고 하는 경구를 생각나게 하는 장면이다.돈이 없으면 모임에 나가질 말든가 사람을 부르지 말든가 해야 할 텐데 말이다.보가트는 결국 50대 후반에 식도암으로 사망한다. 작은 키에 몸무게도 40kg 이하로 떨어지는 몸상태에서도 술은 끊지않고 마셔댔다.'스카치에서 마티니로 바꾸는 게 아니었는데…"하면서 몸 상태가 안좋은 이유를 술 탓을 돌릴 정도였다.인생 경로에 물론 정답은 없다.본인 하고 싶은 대로 하는 게 맞다.

짧은 인생의 여행으로 이세상에 왔는데, 뭐 궁상 떨 것도 없고, 체면 좀 무시하고 지낸다 한들 그게 무슨 대수인가라고 한다면, 뭐라 할 말은 없다.세상 사람들에게 피해를 어느 정도 주었느냐가 하나의 기준이라면 기준일 것이다.

유명한 배우가 주변 사람들에게 봉변이나 낭패를 좀 주었거니 하면서, 해프닝으로 치부해도 이해는 가능하다.그러나 정작 그렇게 지냈왔던 본인이 한창인 50대 후반에 저 세상으로 가는 것은 분명 아쉬움이 크다.

물론 그는 대단한 스타였다.그는 영화배우가 되고 난 후 수십 편의 촬영에 임했던 장면에서 한 번도 세트 장에 늦은 적이 없었다.그는 진정으로 배우연기에 몰입했고, 진심으로 임했다. 그는 영화를 사랑했다. 그의 인생을 훓어보면 늦게 성공한 대기만성형이다.

그의 신장은 작았다. 176cm. 영화 배우로서 미국에서는 언감생심이다. 그의 얼굴 생김새로 동양권 시각에서 본다면야 그런대로 멋진 것 처럼 보이지만 서구권 사람들에겐 그렇게 어필할 수 있는 외모는 아니었다.20대 연극무대에서 몇 번 나섰지만, 이렇다 할 만한 성과나 반응은 없었다.

40이 넘어서야 좀 인기를 얻는다. 무명시절이 길었다.그리곤 40대 중반에 와서 친구의 결정적인 도움으로 캐스팅된다. 그 것이 '하이 시에라' 영화였다. 친구가 배역에 보가트를 꼭 집어넣어야 한다 고집을 부렸다.그 친구는 보가트의 절친한 술 친구였다. 술로 그를 만든 것이라고 한다면 전혀 틀린 것도 아니다. 감독도 이를 결국 승락하고 만든 그 영화가 인기를 얻는다.

10년간의 무명에서 벗어나는 순간이었다. 연극무대와 영화의 언저리에서 왔다 갔다 하던 중년의 배우가 기회를 맞이한 것이다.

그래도 영화 감독들 사이에서는 그를 그다지 스타로 쳐주지 않았다. 작은 키도 그렇고 특이한 컬러가 없다는 게 그 이유였다. 술로 버틴 것이 힘이 되었다 하면 그 말도 성립은 된다.이어 터진 1943년 '카사블랑카'에서 극적으로 대 스타로서 탄생한다. 그제서야 영화계도 그를 인정한다.

그러면서 그의 알코올 사랑과 염문, 3~4차례의 결혼과 이혼이 반복되며, 대배우로서의 기행들이 인기와 함께 병행되어 나간다.50대들어서야 그의 얼굴이 제대로 관록과 사람 됨됨이 특성을 말해주는 모습으로 스크린에 나타난다. 그렇게 탄생한 것이 '사브리나'다. 코믹하면서 그의 회사 CEO로서 중후한 모습은 그에게 가장 걸맞는 캐릭터가 아니었나 한다.

개인적으로 보면 그는 분명 행운아였다. 적어도 훌륭한 가정과 온화한 컬러 그리곤 40대 후반의 성공이 그런 연유겠으나, 결국 알코올에서 그의 아버지처럼 그 점을 극복하지 못하고 부자가 모두 쓰러진 점에서 아쉬움이 크다.

선대들의 지나간 인생을 반추하면서 우리는 하나씩 하나 씩 교훈을 얻게 된다. 술에 이기는 장사 없다. 술과 인간의 관계에 대한 이야기는 수없이 많다.벤자민 프랭클린이 던져준 인생 교훈 13개 가지 중 이 것 만큼 훌륭한 것은 없다.'Temperance(절제) !!!'배부르도록 먹지 마라. 취하도록 마시지 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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