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2-27 15:05 (금)
[서명수의 이솝 경제학] (63) 까마귀 칭찬에 목소리 뽐낸 까닭
[서명수의 이솝 경제학] (63) 까마귀 칭찬에 목소리 뽐낸 까닭
  • 서명수 이코노텔링 편집위원
  • sms085@naver.com
  • 승인 2026.02.27 10:3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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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의 칭찬이나 시선이 본인의 가치 '과대평가' 위험…결국 '배블런 효과'에 빠져
삼성전자 비싸도 계속 매수세 몰릴까…'스타 주식'은 일종의 '금융 명품'처럼 취급
가격이라는 '허상'을 쫓다가 맛있는 먹이를 여우에게 빼앗긴 '까마귀 신세' 될수도

까마귀 한 마리가 고깃점을 입에 문 채 흐뭇하게 나뭇가지에 내려 앉았습니다. 우연히 그 아래를 지나가던 여우가 까마귀를 보았습니다.

'저 녀석이 어디서 저렇게 먹음직스러운 고기를 얻었을까? 옳지, 저놈을 속여 뺏어 먹어야지!'

여우는 까마귀에게 큰소리로 외쳤습니다.

"맵시 좋고 잘생긴 까마귀는 정말 매력적이야. 만약 목소리까지 곱다면 새 중의 새라는 말도 지나치지 않을텐데!"

이 말을 들은 까마귀는 목청을 가다듬고 크게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습니다.

"까악~까악~"

그 순간 까마귀는 입에 있던 고기가 땅으로 떨어졌습니다.

"마음씨 좋은 까마귀야! 넌 목소리는 곱지만 생각이 좀 모자라는구나, 하하!"

잽싸게 고기를 낙아 챈 여우는 종종 걸음으로 사라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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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의 칭찬이나 시선이 본인의 가치를 부풀리기도 한다/이코노텔링그래픽팀.

◇유한계급의 허위의식을 고발한 베블렌=여우는 큰 힘을 들이지 않고 말 한마디로 까마귀의 먹이를 빼앗을 수 있었습니다. 이처럼 타인의 칭찬이나 시선이 본인의 가치를 부풀리기도 합니다.

이런 현상을 설명할 수 있는 경제 이론이 '배블런 효과'입니다. 배블런 효과에선 물건의 실질 효용보다 '남들이 부러워한다'는 상징이 더 중요해집니다. 가격은 품질의 증거가 아니라 칭찬의 신호가 되기도 합니다.

이 개념을 제시한 이는 미국의 경제학자 소스타인 베블렌이며, 그는 저서 <유한계급론>에서 인간은 합리적 효용만이 아니라 '과시'와 '지위'를 위해 소비한다고 설명했습니다. 신흥 부호들의 행태를 야만시대의 지배층에 빗대 '유한계급'이라 부르고 조롱했습니다.

현대의 유한계급은 부의 축적만을 지상목표로 삼았고, 돈에 구애받지 않고서 소비하며, 일하지 않고도 살 수 있음을 보여주기 위해 음식, 장신구, 의복, 주택, 가구 등의 과시적 소비와 과시적 여가활동을 한다는 것입니다. 하인과 여성의 의복도 과시적인 대리 소비의 대상이 되고, 스포츠 역시 여가를 과시하는 표시가 됩니다. 재화의 가격이 올라가면 소비가 줄어야 정상인데 명품 등 일부 사치재의 경우는 값이 비쌀수록 더 소비하는 비정상적 구매행태가 있는 데, 이는 자신의 우월성을 드러내기 위한 부르주아 계급의 속물근성 때문이라는 주장입니다.

실제로 명품 시장에서 배블렌 효과가 뚜렷이 나타납니다. 루이뷔통이나 헤르메스 가방은 가격이 인상될 때마다 오히려 대기 수요가 늘어나는 경우가 많습니다. 값이 오르면 접근 장벽이 높아지고, 그만큼 '선택받은 사람만 가질 수 있다'는 상징성이 강화됩니다. 가격은 품질 이상의 메시지를 전달합니다.

로렉스 시계도 단순한 시간 측정 기계를 넘어 사회적 지위를 상징합니다. 가격이 높게 유지되기 때문에 브랜드의 신뢰와 위상이 보존되는 셈입니다. 만약 그격을 크게 낮춘다면 오히려 브랜드 가치가 훼손될 가능성이 큽니다. 시간 측정의 가치 측면만 따지다면 로렉스 가격의 100분의 1도 안되는 디지털 시계가 더 정확합니다.

◇삼성전자 가격이 상징하는 것= 베블렌 효과는 명품 시장뿐 아니라 주식시장에서도 독특한 방식으로 작동합니다. 일반적으로 주식은 가격이 오르면 부담이 커져 매수세가 줄어듭니다. 그러나 현실의 시장에서는 정반대 장면이 자주 연출됩니다. 특정 종목이 급등해 신고가를 경신하면, '이 정도로 오르는 데는 이유가 있다'는 믿음이 형성되며 오히려 매수세가 몰립니다. 가격 자체가 품질의 증명서처럼 인식되는 것이죠. 주가 상승은 기업의 경쟁력, 미래 성장성, 시장의 신뢰를 상징하는 신호로 읽힙니다.

예를 들어 글로벌 기술기업인 엔비디아는 AI(인공지능) 열풍 속에서 급격한 주가 상승을 경험했습니다. 주가가 고점이라는 우려에도 불구하고, 상승 자체가 'AI 시대의 핵심 기업'이라는 상징을 강화하며 자금을 더 끌어들이는 모습이 나타났습니다. 우리나라 시장에서도 삼성전자가 반도체 슈퍼사이클 기대 속에 2~3개월 전만 하더라도 꿈도 못꾸던 20만원 대를 돌파했습니다. 고가는 불안의 원인이 아니라 확신의 근거라도 되는 듯 합니다.

이같은 고가 주식에 인기가 집중되는 현상은 몇 가지 심리적 기제로 설명됩니다. 먼저 많은 자금이 몰렸다는 사실이 곧 옳은 선택이라는 믿음을 강화합니다. 또 고가 종목을 보유하는 것 자체가 투자자의 안목과 성공을 상징한다고 느끼는 심리가 됩니다. 인간은 성공을 향해 갈 때 큰 미래가 있다고 기대하는 경향이 있는 데, 이때 가격은 그 기대를 압축합니다.

특히 시가총액 상위의 '스타 주식'은 일종의 금융 명품처럼 취급되기도 합니다. 미국의 애플이나 테슬라는 단순한 기업을 넘어 하나의 문화적 아이콘이 됐습니다. 높은 주가는 단지 실적의 결과가 아니라, 브랜드와 혁신성에 대한 집단적 신뢰의 표현이기도 합니다. 가격이 높을수록 쉽게 접근할 수 없는 우량 자산이라는 이미지가 강화됩니다.

그러나 주식시장에서의 배블렌 효과는 양날의 칼입니다. 가격 상승이 기대를 부르고, 기대가 다시 가격을 밀어 올리는 순환은 때로 거품을 만듭니다. 스토리가 유지되는 동안은 문제가 드러나지 않지만, 성장 둔화나 실적 부진이 확인되면 신뢰는 급격히 무너질 수 있습니다. 이때는 높은 가격이 오히려 낙폭을 키우는 요인이 됩니다. 과시적 소비가 쉽게 냉각되듯, 과시적 투자도 빠르게 식습니다.

결국 주식시장에서의 배블렌 효과는 가격이 정보를 전달하는 동시에 감정을 자극한다는 사실을 보여주지요. 시장은 가격을 형성하는 공간으로, 그 숫자를 해석하는 것은 인간의 심리입니다. 투자자는 가격 상승이 진정한 가치의 반영인지, 아니면 단지 상징의 확장인지 구분해야 합니다. 고가가 항상 과대평가를 의미하지는 않지만, 고가 자체가 투자 근거가 되어서는 안 되기 때문이지요. 배블렌 효과를 이해하는 일은 결국 시장에서 군중의 열기와 거리를 두는 훈련과도 같습니다. 가격이라는 허상을 쫓다가 맛있는 먹이를 여우에게 빼앗긴 까마귀 꼴이 될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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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명수 이코노텔링 편집위원
서명수 이코노텔링 편집위원

성균관대학교 영문과를 졸업하고 코리아헤럴드에서 기자생활을 시작했다. 중앙일보에서 20년 넘게 금융·증권 분야를 취재, 보도하면서 이코노미스트 편집장, 재산리모델링센터 자문위원 등을 지냈다. 여러 매체에 금융시장, 재테크, 노후준비 등의 주제에 관해 기고도 했다. 저서로는 <이솝우화로 읽는 경제이야기>, <2012 행복설계리포트>, <거꾸로 즐기는 1% 금리(공저)>, <누구나 노후월급 500만원 벌 수 있다>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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